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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Dec 24. 2021

‘카지노 쿠폰’의 원조가 말하는 최고의 처세술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은 거둬들이기 마련이며, 토끼 사냥이 끝난 사냥개는 주인에게 잡아먹히기 마련입니다. 구천은 고난은 함께 견딜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벼슬을 내놓고 그를 떠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참혹한 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 중에서



‘카지노 쿠폰(兎死狗烹)’의 유래이기도 한 이 말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많은 사람이 토사구팽하면 한신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말은 이미 3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카지노 쿠폰(范蠡)’다.


장량과 함께 현명한 처신으로 중국인이 가장 자주 칭송하는 인물인 범려는 월왕 구천의 22년에 걸친 복수극을 성공할 수 있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니 그의 앞날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즉시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볼 때 구천은 고난은 함께할 수 있을지언정, 기쁨은 함께 나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복수심에 불타올랐던 그가 모든 것을 이룬 후에는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아는 이들을 모두 죽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그의 염려대로 구천은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린 후 공신들을 차례대로 토사구팽했기 때문이다.


명철보신, 공성신퇴(明哲保身 功城身退).

“공을 이루면 그 자리에서 즉시 물러난다”라는 뜻으로 범려의 카지노 쿠폰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말은 없다.


그만큼 범려는 때를 잘 알았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물러날 때를 잘 알았고, 장사할 때는 물건을 사고팔 때를 잘 알았다. 그러니 어려움은 피하고, 큰 부를 이룰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부를 오래 누리려면 넘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 역시 잘 알았다. 그 때문에 자신의 부와 명예가 지나치다 싶으면 그것을 주변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었다.


이런 범려의 삶을 두고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범려는 세 번 자리를 옮기고도, 세 번 모두 정점에 올랐다. 자신이 모시던 군주, 구천을 춘추오패의 맹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상인(商人)으로도 큰 명성을 얻었다. 범려야말로 재산으로써 은덕을 널리 베푸는 군자다.

― 《사기》 〈화식열전〉 중에서


만물은 정점에 이르면 곧 위험에 처한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대학자 귀곡자(鬼谷子)의 말이다. 범려는 그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스승의 이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했다. 삶의 최고점에 섰을 때 미련 없이 내려왔고, 힘들게 모은 재산 역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썼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범려야말로 지(智)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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