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업무도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지만 서브로 하고 있는 일도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그래서 스터디카페 고정석을 끊어 대형 모니터와 키보드를 놓고 다닌다. 퇴근 후 3~4시간과 주말 동안만 좌석을 쓰지만 문서작업 안정성과 나를 위해 고정석을이용하고 있다.
오늘도 60대 후반의 스터디카페 여사장님은 로비로 잠깐 물 마시러 나온 나를 붙잡고 쇼핑백 하나를 건넨다. Dior라고 쓰여있다. 저녁마다 휙 가버려서 만나기 어려우니 얼굴 볼 때 줘야 한다며 냉장고에 넣어둘 테니 꼭 집에 가져가라 하신다. 할머니 피해 쥐도 새도 모르게 휭 나갔는데 눈치채셨나 보다. 집에 와서 Dior가방을 열어봤더니 역시 고구마 샌드위치다. 농사지은 고구마를 으깨 만드셨는데 자주 주신다.
"저는 빵을 싫어합니다"라고 맨 처음 말했어야 하는데 그걸 놓쳐서 계속 받고 있다. 엊그제는 잠깐 나를 부르셨는데 그 찰나에 기침을 했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니고 그냥 물먹다 사레가 들려 기침한 것뿐이다. 다음날 카지노 게임를 팔팔 끓여 내 자리에 놓고 지나가신다. 먹어도 되나 싶었지만 손수 끓이신 게 감사해서 마셨다. 아주 진한 카지노 게임다.
중1 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딸아 혹시 엄마가 불쌍해 보이니? 밥도 못 먹고 굶게 생겼니? 스터디카페 할머니께서 먹을 것을 계속 주시는데 부담스럽다고 했다.
팩폭장인 딸 왈 "그 할머니는 얼마나 엄마가 불쌍하겠어. 대학생도 아닌 것 같은데 매일 스터디카페에 오니 취업준비하는 아줌마인줄 알겠지. 근데 엄마 그 스터디카페 다닌 지 오래되었잖아. 아무리 공부해도 취업이 안 되는 아줌마인가 싶어 불쌍하겠지"한다. 딸답다.
"나는 빵을 좋아한다." "빵을 좋아한다" 최면을 걸어본다. 냉장고에서 잊혀지기 전에 꼭 하나씩 먹어야겠다. 꼭.
그 스터디카페 참 작업환경 좋은데.. 앞으로 그냥 빵을 좋아한다고 세뇌를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