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럴까?
잘 난 사람 많고 많지
누군 어디를 놀러 갔다지
좋아요는 안 눌렀어
나만 이런 것 같아서
저기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속엔
- DEAN, instagram
이 글을 쓰는 지금 2025년 상반기, 당장 내일 세계 경제질서가 아작나도 아무 감흥이 없을 것 같은 시점에 2021-23년대를 돌아봅니다. 돈은 풀렸고 금리는 낮았으며 인스타에는 연일 골프 라운딩, 오마카세, 명품 오픈런 컨텐츠가 올라오던 시절입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인스타 때문에 우리가 불행하다는 비관론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저는 2023년 글에서 이렇게 논박했습니다:
1) 인스타는 전 세계인이 모두 하고, 카지노 게임은 오히려 평균 사용시간 하위권에 속한다.
2) 사회의 계층화가 앞서 고착된 미국, 유럽, 라틴아메리카 같은 곳은 빈부격차가 훨씬 극심하고 금수저 컨텐츠의 급도 높은데, 한국만큼 불행해하지 않는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동일하게 생각하며, 인스타가 없어도 한국에 인터넷 커뮤니티는 차고 넘칩니다. 특히 디씨인사이드, 에펨코리아, 블라인드 등의 국산 커뮤니티는 수백만명의 이용자가 들락거리고 정치, 사회까지도 좌우하는 힘을 가졌으며 디씨 하나에만 2,000개 이상의 갤러리가 존재합니다. 인스타가 없었더라면 이런 커뮤니티들이 동일한 역할을 했을 것이며, "평균 올려치기"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더 심하다 볼 수도 있습니다. 단 오늘은 이에 대한 흥미로운 반론이 있어 한번 들고 와봤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디씨, 보배드림 같은 커뮤니티들의 특징은 초창기 인터넷에서 발전한 텍스트, 데스크탑 기반 사이트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인스타, 유튜브는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 영상매체이기 때문에 비교를 증폭시킨다.
십계명에서는 "네 이웃"의 집, 아내, 가축을 탐내지 말라고 콕 집어서 얘기했지만 현대인들에게 "네 이웃"이란 핸드폰에 뜨는 모든 사람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를테면 학창 시절 짝사랑의 카톡 프로필이 어느 순간 결혼식 사진으로 바뀌었을 때 우리는 고대 인류는 경험해보지 못한 21세기의 감정을 접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영상매체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주장하는 이론은 이미 1960년대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을 포함한 몇몇 미디어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인터넷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코페르니쿠스적 충격이었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패닉했고 "텔레비전이 우리 사회를 망친다"는 주장이 꽤 설득력 있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영상매체가 우리 불행의 원천이라고 한다면, 텔레비전 도입 시점부터 연애, 결혼, 출산율이 급감했어야 하나 그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인스타와 유튜브의 도입 역시 전 세계적으로 같은 효과를 냈어야 하지만 유독 카지노 게임만 내전국가 수준으로 연애, 결혼, 출산율이 망가져있는 현실을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는 계속해서 이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왜 카지노 게임에서만 나타나는가?"사실, 카지노 게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스토아 철학의 대표자이자 로마제국 황제의 최측근까지 갔었던 철학자 세네카는 다음의 명언을 남겼습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왜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지 아는가? 여행하면서 당신 자신을 같이 데리고 가기 때문이다.
- 세네카, <XXVIII. 여행으로 불행을 치유하려는 데 대하여
이 말은 커뮤니티 등지에서 흔히 인용되는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와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새가 깃털 색을 임의로 바꿀 수 없듯이, 특정 문화 속에서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문화권에 들어가도 본인들의 장단점을 그대로 들고 갑니다. 그리고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해외로 간 카지노 게임인 주재원/이민자/외교관들입니다.
대표적 정착지인 미국을 보더라도 카지노 게임인들은 본토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내는데, 가장 학업성취도가 높고, 고연봉을 받으며, 가장 늦게 결혼하고, 아이를 적게 낳는 것으로 미국사회 내 동아시아계에서 탑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들은 2세대로 갈수록 완화되기는 하나, 주재원이나 외교관들처럼 임시로 살러 간 경우 그들은 대체로 한국에서 하던 비교를 똑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인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다면 다들 공감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 교육 이대로 괜찮은지
남편 커리어가 뒤처지지 않는지
동기들 가구, 차는 어떤 걸 사고 옷은 뭘 입는지
주식, 부동산 재테크 다들 어떻게 하고 있는지
즉 카지노 게임인들은 카지노 게임 밖에 나가서도 여전히 비교를 하고 걱정을 합니다. 인스타를 적게 하든 많이 하든 안 하든 별 의미가 없습니다. 카지노 게임인이 있는 그곳이 국장이기 때문입니다.이것은 매체를 떠난 근본적인 문제이며 해외로 나가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인스타 삭제가 아니라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1) 나에게 비교문화가 디폴트값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2)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온라인/오프라인에서 멀리한다
사실 한국에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높은 확률로 부모님이 비교를 주도할 것이며 직장, 사회에서 사람을 가려 만날 수 있는 여유가 초년생일수록 없습니다. 그럼에도 시도는 해볼만하다 생각합니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많이 할수록 초라함만 느낄 것입니다. 오프라인을 바꿀 수 없다면 온라인이라도 줄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