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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이봉희 May 01. 2025

[그건 누구의 '한 카지노 게임'이었을까?]

-카지노 게임은 어디까지의 보호인가


음표 하나로 마음이 설레고, 붓질 한 번으로 풍경이 살아난다. 누군가의 말 한 줄이 수많은 이의 마음을 바꾸고, 발끝으로 튄 움직임이 예술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진다. 이 조각들—한 단어, 짧은 멜로디, 하나의 동작, 숫자의 배열—이 다 카지노 게임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창작을 말할 때, 언제나 ‘전체’를 떠올린다. 한 편의 노래, 완성된 그림, 장편 소설이나 공연. 하지만 창작은 종종 '부분'에서 시작된다. 마치 하나의 벽돌이 전체 건축물의 무게를 지탱하듯, 창작의 세계에선 작은 조각들이 거대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작은 조각들이 바로 카지노 게임의 회색지대를 만들어낸다.


1초짜리 멜로디, 보호받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럴 수 있다. 휘파람처럼 짧은 멜로디도 독창성이 있다면 카지노 게임 대상이 된다. ‘드르륵~ 짠!’ 하고 시작하는 영화의 사운드 로고도 보호된다. 중요한 건 ‘길이’가 아니라 ‘창작성’이다. 단 1초라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처음 떠오른 창의적인 조합이라면, 법은 그것을 존중한다.


미술의 점 하나는?

여백 속에 ‘콕’ 찍힌 점 하나, 얼핏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이 전체 맥락에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역시 카지노 게임의 우산 아래 놓인다. 미술은 ‘선’이나 ‘색’ 하나가 정체성을 결정짓기도 하니까.


체육 동작도 보호될까?

흥미롭게도 스포츠 동작은 카지노 게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호된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독창적인 동작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그 움직임 자체에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순 없다. 하지만 그 동작이 공연(예: 피겨스케이팅의 안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건 카지노 게임 보호 대상이 된다. 예술로 승화된 동작엔 권리가 따라붙는다.


수학 공식은요?

아쉽게도, 숫자의 배열이나 수학 공식은 카지노 게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수학은 ‘발견’의 영역이지 ‘창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식에 이르는 설명 방식, 문제를 푸는 스토리텔링은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 누가 문제를 어떻게 설명했느냐가 중요해진다.


국어의 문장은?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시적인 표현은 보호된다. 하지만 “날씨가 맑다”는 너무 흔한 표현이기에 카지노 게임을 주장할 수 없다. 한 문장이 창작자의 개성이 담겨 있는가, 그것이 기준이다.


사회과 행동은?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시위 구호’나 ‘퍼포먼스’처럼 특정한 맥락 속의 행동은 퍼포먼스 아트로 분류될 수 있다면 보호받는다. 하지만 단순한 행동이나 제스처는 카지노 게임 대상이 아니다. 다만 영상으로 만들어 퍼포먼스 예술로 제출되면 또 다른 기준이 생긴다.


결국 중요한 건 **‘창작성’**이다.

창작의 세계에선 길이도 장르도 문제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유한 아이디어로부터 비롯되었느냐, 바로 그것이 카지노 게임의 핵심이다.


이쯤에서 ‘아하!’ 싶은 포인트는 이것이다.

카지노 게임은 창작의 '완성품'이 아니라, '창작의 흔적'을 보호한다는 점이다.

그 흔적은 짧은 멜로디, 독특한 붓터치, 낯선 동작, 색다른 설명 방식, 그리고 개성 있는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카지노 게임은 ‘너무 작아서’, ‘너무 흔해서’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할 영역을 구별해 낸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보호하면, 아무것도 공유할 수 없게 되니까. 창작은 개인의 것이지만, 동시에 인류의 것이다. 카지노 게임은 이 경계를 세심하게 관리하는 문화의 교통경찰 같은 역할을 한다.


당신의 한 카지노 게임이 언젠가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카지노 게임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다면, 더 많은 이들이 또 다른 카지노 게임을 들고 세상에 나올 용기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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