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민 카지노 게임, 살아져
우짜는 둥 버티라, 버티는 게 남는 기다
안 됐다고 묻는 저녁
-고명호-
아직도 고향에 사냐며 안 됐다고 묻는 저녁
목을 축이던 사발그릇 탁, 놓아버리고 싶지만
나에게 수당으로 지급된
푸근한 놀빛이 고여
순종을 거역하기엔 쓸쓸한 나이가 되어
실눈 뜨고 쳐다본 하늘이
목덜미로 내리고
이 저녁 침묵 깨뜨리는
낯익은 미소가 보여
약 치고 돌아온 귤밭
섬길 것은 하늘 한 장
돌담에 기댄 그림자 화석처럼 박혀있다
딴생각에 헤픈 나를 향해
다독이는 사투리 나라
화창한 토요일 낮에 칠십리시공원을 찾았다. 시공원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산책 코스 곳곳에 서귀포와 관련된 시가 아로새겨진 시비들이 보인다. 그중 눈길을 붙잡은 것은 산책길 보도 박석에 새겨진 시였다. 수많은 방문객들의 발자국에 닳기도 하고 흙먼지에 뒤덮여서 또렷이 읽어내기가힘들다. 우뚝 선 기념비에 굵직한 궁서체로 새겨진 시들은 네가 나를 안 읽고 배기냐고 웅장한 존재감을 뽐내도 눈에 들어오질 않던데, 왜 하필 땅바닥에 새겨진 시에 고개를 박고 사진을 찍고 있는지.
"카지노 게임에 언제까지 있을 거야?"
나는 아직도 제주에 산다. 시간이 나를 쫓아오는지, 내가 시간에 이끌려 가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을 살아내다 보니 벌써 카지노 게임살이 12년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육지와 도민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고,카지노 게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카지노 게임어를 자막 없이 들을 수 있다. (제주 토박이들은 코웃음 치겠지만 12년 차 제주도민의 한 톨 자부심이겠거니귀엽게 봐주라)
"언제 올라올 거야?"
오랜만에 육지에서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질문이다. 글쎄요.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직장 때문에 내려온 거라서요. 대답하는 나조차 늘 망설여졌다. 처음에는 한 4년쯤이라고 답했던 것 같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아마 유치원 갈 때쯤 올라가지 않을까'라고 했었고, 막상 어린이집에 들어간 이후로는 '초등학교 입학 전엔 갈 거 같아'라고 했다. 이제까지의 답들이 머쓱하게도 지금은 중학교 입학이 머지않았다. 나라고 12년을 있게 될 줄을 알았을까. 더군다나 연고도 없는 카지노 게임에서 직장을 세 차례나 옮기며워킹맘으로 살아가는 현실은 어릴 때부터 나를 지배했던 고정된 자아상을 깨부수는 일이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책 <밤은 책이다에서 비롯되었고, 꽤 오랜 시간 그의 네이버 블로그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문구다. 그래, 맞아! 이를 듣고 얼마나 감명이 깊었으면 타고 있던 버스 안에서 옆좌석 사람이 움찔할 정도로 감탄사를 내지르고 말았다. 마흔 해를 지나오는 동안 차곡차곡 누적된 경험들을 단 하나의 명료한 깨달음으로 응축시켜 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나 역시 저렇게 말할 것이다.날마다 의지대로 사는 것 같아 보여도, 곳곳에 도사린 변수들은 우리를 종종 예기치 않은 삶의 종착지로 데려다 놓곤 한다.그럼에도 묵묵히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다 보면 고속 직진으로 오든, 저속 우회로 오든 언젠가는 기회가 제 발로 오긴 오더라.
비애는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고,
나약한 마음은 수시로 고개를 들이민다.
일하는 엄마
일과 육아는 늘 계획된 방향으로만 흘러가주지 않았다. 일이 수월할 때는 아이가 아프고, 아이가 무탈할 때는 일에 문제가 생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금요일의 오후 2시,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웬일로 집에 있지 않은가. 아이가 열이 38도까지 오르고 몸살과 오한에 힘들어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서둘러 조퇴했으니까. 죽과 약을 먹고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를 곁에 두고 오늘 발행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깨닫는다. 온전한 내 뜻대로 이뤄지는 하루가 얼마나 귀중카지노 게임 감사한지를. 단조로운 일상이라고 폄하했던그간의 교만함을 반성하라고 간간이 변주를 주시는 건가라는 의문을 품으면서.
워킹맘 초창기라면아기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오후에 끝마쳤어야 할 업무를 다음 주로 미룬 불안함과 주말 꽃놀이를 취소한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고 죽상을 하고 앉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평일 낮에도 엄마 껌딱지와 정말 껌처럼 붙어 있을 시간이 주어져서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아이의 봉긋한 이마와 연두부 같은 볼따귀에 얼굴을 부비면서 생각한다. 두 개의 촛불을 동시에 밝히기엔 체력도 부족하고, 마음도 하나뿐이라 너의 요구에 자주 한 박자 늦게 답하는 게으른 엄마지만, 다정한 말 몇 마디와 스킨십으로 허전함을 적당히 메꾸려는 엄마지만, 그래도 바르고 밝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가끔은 생전에 멀티가 불가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 내린 내가 두 가지 역할을 병행카지노 게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지만,대체로 둘 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안달복달하는 게 일상이다. 두 마리 토끼는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화두였다. 한 마리를 잡았다 싶으면 다른 한 마리는 저만치 달아나버리는 무한 쳇바퀴 속에 산다. 그렇게불안해하면서,욕심만으로 될 일이냐고, 깜냥이 안 되면 한 가지는 내려놓으라고 자문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직 활동을 할 때 느꼈던 막막함과 초조함을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거니와, 솔직히 털어놓자면 전업주부로 돌아갈 자신이 없어서 일을 놓을 수가 없다. 살림과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전업맘들을 경외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자신 없는 부분을 척척 해내는 모습들이 부럽기도 하고,부족한 부분을 거울로 비추는 것 같아 작아진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책도 읽고, 운동도 해야 하고, 이제는 글까지 쓴단다. 두 마리였던 토끼가 다섯 마리로 늘어난 셈이다. 추가된 세 마리는 일과 육아라는 대장 토끼를 잘 잡기 위해 본체인 나를 아끼고 단련하는 도구라 여긴다. 어느 한 가지에 진득하게 몰입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이러다 다섯 마리 다 놓치는 거 아닌가 조바심을 낸다. 한 마리조차 잡힐 기미가 없을 때는 영 갑갑하다. 그럴 땐 산책을 한다. 산책을 하다 보면 엉킨 실타래 같던 고민들이 하나씩 매듭이 풀리는 느낌이다.
'두 마리 토끼, 아니 다섯 마리 토끼를 꼭 동시에 다 잡으라는 법이 있나? 그건 과욕이야. 일단 한 마리는 집중해서 쫓아가자. 쫓아가는 길목마다 토끼굴을 파고 부지런히 덫을 놓는 거지.여기서 포인트는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거. 한 마리를 집중 포획하는데 몰두하다 보면 나머지 토끼들도 덫에 걸려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상적이지만 발랄한 결론을 내리고는 사뿐하게 산책을 마친다. 심란함과 정신 승리를 오가는 이 루틴도 정말이지 무한반복이다. 지긋지긋하리만치 반복된다고 해도, 이것은 욕심을 따라주지 못해 서글픈 내 노력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딸과 며느리
"언니야, 어제 새벽에 엄마 응급실에 입원했었다."
코로나19 백신의 부작용 사례가 뉴스에 자주 등장하던 시기에 친정 엄마의 알레르기 반응은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천만다행으로 가벼운 두드러기에 그쳤지만 놀랄 일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추석 때 시어머니와 단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시아버지가응급실에 실려가신 전모를 듣게 된 것이다. 왜 꼭 우리 속 깊은 부모님들은 한바탕 일이 치러지고 난 뒤에야 편안한 얼굴로 소식을 전해주시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생업과 육아에 쫓기는 자식들이 애가 쓰일까 봐 한 시름 덜어주시려는 건지 그 깊은 속을 다 헤아릴 순 없다만, 감사함보다 죄송함이 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바다 건너 섬에 사는 아들과 딸은 이렇게 본의 아니게 불효를 한다.
그리고 아내
연애시절줄곧 '나 제주로 가게 될지 몰라'라고 얘기했을 때는 흘려들었다. 이 사람과 결혼해서 카지노 게임살이를 하고 있을 부인이 내가 될 거라고 미처 생각을 못했던 건지, 현실 감각이 없었던 건지. 결국에 제주까지 데려와 놓고선 일 년 중 삼분의 일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니까 배신감이 들 때도 있었다. 왜 꼭 그놈의 출장을 떠나고 나면 아이가 아픈 것인지, 내 연차는 아이의 병가와 맞먹었으니까.그런데도 정 힘들면 육지로 나와서 주말부부를 하라는 친구의 조언을 새겨듣지 않았던 건, 아이를 낳은 이상 우리 셋은 한 세트라는 공식이 콕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남편은 좋은 아빠다. 아이에게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남동생처럼(?), 때로는 호랑이 같은 팔색조의 매력을 펼쳐 보인다. 나랑 손발이 잘 맞는 육아 메이트임을 인정한다. 아이에게 항상 웃는 모습,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는 남편도 요즘은 속으로 부침이 상당할 거다. 위암으로 투병 중이신 시아버님의 항암치료를 도우러 육지에 수시로 다녀오고 있으니까. 그 와중에 노후 대비를 위해 틈틈이 공부도 하고 있다. 바람 잘 날 없어도 흔들림 없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다. 뿌리 깊은 나무 같은 그에게 나는 일희일비와 부화뇌동의 카지노 게임콘일지도 모른다. 그가 중심을 잡아주기에 "하루하루 성실하게"를 성실히 유지할 수 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나온 수많은 명대사들 중에 유독 여운이 남는 대사가 있다.
"살민 살아진다. 살아져."
경상도 버전으로 바꾸자면,
"우짜는 둥 버티라, 버티는 게 남는 기다"아닐까.
아직까지 나는, 아니 우리는 카지노 게임에서 잘 버티고 있다. 성에 안 차고 속상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잔잔한 일상에 돌을 던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진다. 살아간다. 결혼 생활의 안정감은 서로의 인내와 양보가 켜켜이 쌓여야 유지될 수 있다고 누가 그러더라. 누군지 몰라도 무한의 긍정을 보낸다. 남편은 그 대로, 나는 나 대로, 아이는 아이답게 귀찮음과 피곤함을 무릅쓰고 자기의 역할과 도리를 다 한다. 서로의 노력을 존중하며 버티는 하루하루의 배경이 제주일 뿐, 배경이 육지로 바뀐다고 해도 이 애씀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 가족은 서로의 노력을 존중하며 버티는 중이다. 오늘은 매일 반복되니까, 그러므로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