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생이 좋지. 오래오래 살거라
나는 지난 목요일 '나의 중년은 청춘보다 아름답다' (바른 북스) 북토크를 하고 왔다. 이 책은 호프맨, 쥬디. 메이퀸, 채코, 숨숨북, 도우너킴, 이미루 그리고 할수 내가 함께 썼다. 호프맨 작가님은 베트남에 살고 계셔서 인스타 실시간 방송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서울 혜화역 부근 예술가의 집에서 북토크를 했다. 내가 서울행 KTX를 타러 동대구역 플랫폼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비둘기 몇 마리가 날아왔다. 카지노 게임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순간이동을 했다. 내가 내려 선 곳은 수십 년 전 부산역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간이의자에 앉아있었다. 비둘기들이 간이의자 사이로 돌아다녔다. 비둘기들은 사람들이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콕콕 집어먹고 있었다. 나는 숲이 아닌 시멘트 바닥에서 모이를 먹는 비둘기들이 좀 불쌍해 보였다.
내 시선이 카지노 게임를 따라 움직이다가 한 카지노 게임 발가락에서 멈췄다. 카지노 게임의 발가락이 하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눈길을 돌려, 다른 카지노 게임들을 살펴보았다. 발가락이 성한 카지노 게임눈 몇 마리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카지노 게임들의 발가락이 하나 혹은 두세 개씩 없었다. 나는 카지노 게임의 발가락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동대구역 서울행 플랫폼에서 카지노 게임 다리가 한 개 보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간이의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한 사람이 두 손으로 간이의자를 잡고 움직였다. 옆에서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 먹던 카지노 게임 놀라 퍼덕거렸다. 나는 비둘기 발가락이 없는 이유를 알아챘다. 사람들이 의자를 움직일 때 발가락이 의자다리에 찍혀 잘려나간 것이었다. 금방 간이의자를 들고 움직이던 사람은 비둘기를 못 본 듯 무심히 의자에 앉았다.
나는 눈길을 이리저리 돌리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비둘기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의자를 움직일 때마다 옆에 있던 카지노 게임 퍼덕 날갯짓을 했다. 사람들은 무심히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기도 하고 뒤로 빼서 일어서기도 했다. 비둘기의 존재에 대해 무심한 사람들의 모습은 귀신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도 혹은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영화 속 사람들 같았다.
카지노 게임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발가락이 잘려 나갈 뻔한 일이 일어났고 또 언제든 발가락이 잘릴 수도 았는데. 이곳이 도시 카지노 게임들의 삶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숲에 살면 천적에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이곳은 먹이를 구하다가 발가락을 잃어도 목숨은 잃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이었다. 어쩌면 카지노 게임에겐 숲보다 이곳이 더 안전하기는 할 것 같았다. 나는 부산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발가락이 잘려 나간 카지노 게임들을 잊을 수 없었다.
내가 언제 부산역 광장에서 동대구역 서울행 기차 플랫폼으로 순간이동해 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기차역 플랫폼에서 걸어 다니는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비둘기가 까치처럼 콩콩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부산역에 있던 사람들처럼 비둘기에 관심이 없었다. 다른 비둘기와 달리 까치처럼 통통 뛰어다니는 비둘기에게도 역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비둘기가 왜 까치처럼 콩콩 뛰어다니는지 그 까닭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쭈그려 앉았다. 비둘기가 학처럼 한 다리로 서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내가 앉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건 비둘기는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비둘기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비둘기 다리 하나가 빠르게 내려와 땅에 닿는 것 같았는데, 바로 그때 동영상을 4배속 돌려 감기 하듯 내려오던 다리가 도로 위로 올라가 버렸다.
나는 헛 것을 본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 본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비둘기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비둘기 다리의 상태가 궁금했다. 나는 눈을 깜박이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고 기다렸다. 이윽고 비둘기가 움직였다. 비둘기가 보이지 않던 다리 하나가 아래로 쑥 내려오는 가 싶었는데 재빨리 위로 도로 쑥 올라가 버렸다. 이때 나는 보았다. 비둘기의 발목 아래가 잘려나가고 없는 것을. 비둘기가 한 발로 통통 뛰어다닌 이유는 한 다리의 발목 아래가 잘려 나가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비둘기는 다른 비둘기에 비해 서 있는 시간이 길었다. 비둘기가 까치처럼 먹고 살려니 힘든 모양이었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일찍 일어났다 해도 정신이 맑지 못해 뭘 해도 효율적이지 않다. 말하자면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닌 것이다. 결혼 전 직장에 다닐 때 아침마다 할머니가 나를 깨웠다. "정희야 빨리 일어나라. 또 밥 못 먹고 가겠다." 나는 이불속에서 누워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미적거리다가 아침을 거르고 나간다. 할머니가 한 숟갈이라도 먹여 보내려고 애써 나를 깨웠지만 나는 아침마다 끼니를 거른 채 출근했다.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였다. 저녁형 인간이 도시락 반찬을 저녁에 만들어 놓으면 좋을 텐데. 나는 아침형 인간처럼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새로 반찬을 만들어 도시락을 사줬다.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밥을 먹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었다. 아이들이 자라 집을 나갔고 남편과 나는 각자 아침마다 과일을 준비해서 아침 식사로 먹는다. 아침에 내가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 나는 저녁형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아침에 늦게 깨어나고 미적미적 누워있는 것이 마냥 좋다.
근데 자신으로 살면서 뭔가를 해내려면 새벽 기상이 좋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4시 30분이나 5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도 이렇게 해보려고 최근까지 애써보았다. 나는 4시 30분에 일어나 보기도 하고 5시에 일어나 보기도 했다. 온종일 몸이 괴로웠다. 나는 6시에 일어나도 힘겹다.
발목 하나가 없는 비둘기를 보고 난 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몇 년 동안이나 새벽에 일어나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사람은 분명 나와는 다른 종족일 것이다. 아니, 그렇데 믿기로 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지 않나. 나는 뱁새인데 황새를 따라 살려고 한 것이다. 뱁새가 가랑이 찢어지면 죽게 될 것이다. 황새처럼 살기 보단 그냥 뱁새로 살면서 오래오래 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발목 아래가 없는 비둘기는 까치처럼 살 수밖에 없지만, 나는 아침형 인간처럼 살지 저녁형 인간으로 살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아침형 인간처럼 살기로 선택해서 아침형 인간처럼 살아 낼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내지 한다. 그래서 자책하며 살 바엔 차라리 저녁형 인간으로 사는 게 낫겠다고. 나는 저녁형 인간으로 살기로 한다. 아침형 인간처럼 살기를 버리고 나니 한결 삶이 가볍다. 삶에서 자책하는 일 하나가 줄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인해서 발목이 잘려나간 비둘기 덕이다. 비둘기야, 미안하고 고맙다. 넌 까치처럼 살아도 이생이 좋지? 그래 오래오래 살 거라. 나도 오래오래 살 게. 나는 아침형 인간처럼 말고 저녁형 인간으로 오래오래 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