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의 피눈물, 그물을 든 민초들
1931년 봄, 금당도의 바닷바람은 이전과 달랐다.
그 바람엔 비릿한 소금기가 아니라, 억눌린 분노와 고요한 울분이 섞여 있었다.
두석은 봉강학당 교실 앞마당에 고기 그물 몇 폭을 펴놓고 앉아 있는 동네 어르신들을 바라보았다.
“며칠째 그물질을 못 했다고요?”
“카지노 게임를 막아놨네. 조선수산조합 완도지부에서 새 허가증을 받지 않으면 어장에 나갈 수 없다는 거야.”
“우리가 어장세를 안 냈답디까. 그게 무슨 말이오. 카지노 게임는 우리 것이었는디…”
지금까지 조상 대대로 써오던 마을 앞 어장.
이제 그 카지노 게임는 ‘니시모토 상회 금당도 분소’의 이름으로 갈라지고,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허가 구역’으로 구획되어 있었다.
물고기를 낚는 일이 아니라, 카지노 게임에 나가는 일 자체가 허가받아야 하는 시절이 된 것이다.
카지노 게임를 빼앗긴 어부들
하루 종일 김 채취에 나섰던 복돌 아재가 상처투성이 손을 부여잡고 돌아왔다.
“이게 다 왜 이러냐면, 저 니시무라란 놈 때문이야.
일본 사람들, 조합이란 이름으로 우리 어장을 뺏었고,
이젠 우리가 낚은 멸치, 김, 미역도 ‘공출’로 바치게 생겼단 말이야.”
두석은 기초 조사 노트를 펴 들었다.
‘조선수산조합 완도지부 — 어장세 월 20전,
김 채취권 수수료 15전,
어획물 강제출하 — 니시모토 상회와의 계약에 한함.’
민초의 언어로 풀면,
“우리 카지노 게임에서 일하고, 우리 물건을 잡았는데도 우리가 팔 수 없다” 는 뜻이었다.
봉강정의 분노
두석은 봉강학당 수업을 마친 뒤,
그날 저녁 마을 주민 20여 명과 함께
작은 마루회의를 열었다.
“이건 단지 세금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카지노 게임, 미래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제 이 땅의 어부가 아니라, 일본 회사의 삯꾼이 되라는 겁니다.”
“근데…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늙은 어부가 중얼거렸다.
그때, 조용히 앉아있던 송창훈 청년이 말했다.
“우리가 카지노 게임를 그만둘 순 없어요.
그물이 아니면, 우린 굶습니다.
그물이 죄가 아니라, 생명이지요.”
갈매기 떼가 일어서다
며칠 뒤, 두석은 동네 청년들과 함께
마을 앞 바닷가에 간이 비닐판자 집 한 채를 짓고
‘자주어민조합 금당지부’라는 팻말을 내걸었다.
그곳에선 조합원끼리 서로 어획물을 나누고,
‘니시모토 상회’에 내지 않아도 되는
직거래 장터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카지노 게임의 주인임을 잊지 맙시다.
허가를 받는 게 아니라,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겁니다.”
두석은 굳은 어조로 외쳤다.
#작가의 말
카지노 게임는 금당도의 생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카지노 게임조차 일제의 수탈 시스템 안에 편입되었습니다.
동양척식회사가 땅을 삼켰다면,
조선수산조합과 일본계 회사들은 카지노 게임를 삼켰습니다.
두석과 민초들이 만든 작은 조합은 미약했지만,
그 작은 물결이 뒷날의 자주독립과 민주적 협동조합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자산이 빼앗기는 일’은 다르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바닷가 마을의 작은 외침이 지금 우리의 질문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물은 죄가 없고, 카지노 게임는 누구의 소유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