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은 사람입니다.
걔는 어쩌다 그랬대?
빈자리 하나 없는 카페. 카페가 위치한 곳은 적당한 번화가였다. 번화가 길거리는 통행에 불편함이 없으며 깔끔해 좁은 지역 특유의 오래된 싼 티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들어온 카페는 요즘 트렌드에 맞게 책상과 벽, 의자까지 회색 벽 색깔로 맞추어 사장이 의도한 무드를 끌어내고 있는 곳이었는데 영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떤 건 연한 회색, 어떤 건 진한 회색. 노란 무드 등이 각각의 테이블 위에 하나씩 있고, 무드 등 사이에 은근한 어둠은 경계선을 만들어냈다. 앞과 뒤에 위치한 테이블에서 들리는 이야기 소리는 어둠이 마치 벽이라도 된 듯 웅얼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 비밀을 터놓기에 완벽한 수다의 장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무드 등 아래 오래 앉아 있으면 눈이 아파서 이 시간이 좀 빠르게 지나가길 바랬다. 두세 달에 한 번꼴로 모이는 우리는 중학교 동창이었다.
구성은 4명으로 중학생 당시의 나는 5명 이상의 무리를 선호하지 않아 지금까지 이 구성을 고수하고 있다. 알고 지낸 지 8년이나 지난 애들은 이제 스물 중반에 접어들고 있어서 그런지 각자 제 나이대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눈, 코, 입은 그대로인데 나이가 든 것만 같은 그 느낌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젊은 청년들의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동창 멤버 중 평소 가장 연락이 뜸한 2년 차 휴학생 소라가 나를 향해 대뜸 질문을 던졌다. 어쩌다 그랬냐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고 세세하게 풀어보라는 암묵적인 신호였다. 소라는 이럴 때면 눈에 은근한 호승심을 빛 추었다. 왠지는 몰라도 나에게 열등감을 품고 있는 소라였기에 그 질문에 어떤 것이 내포되어 있는지 분석하려 들지 않았다.
나를 향한 질문에 '걔'에 대한 일종의 연대기를 몇 초 사이에 머릿속의 파노라마처럼 흘려보냈다. 몇 년이 지났지만 굵직굵직한 일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잊을만한 것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걔'는 일종의 내 사건이 맞았다. 부러 내 침묵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고민하는 얼굴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내가 말을 고민하는 그 시간이 이들에게는 예고편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하지만 내 침묵은 나에게 다른 예고를 두었다. 이야기를 하면 내 치부까지도 들출 수 있고, 다른 애들은 몰라도 소라는 그걸 말할만한 애가 아닌지라 후에 후회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람과 대화할 때 드는 특유의 무력이 들었다. 턱 막히는 느낌이 사람 사이 넘나드는 침의 무게인가 하고, 고민한지 오래였다. 더불어 소라의 뒷마디도 한 덕온라인 카지노 게임.
걔 퇴학하기 전에 너 싸웠다고 하지 않았어?
아하, 그게 물어본 이유다 이거지. 그렇게 머릿속에선 그 애의 연대기에 대한 시나리오가 정리는 됐으나 소라의 반짝거리는 눈을 마주하며 한 구절만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내 무의식들이 가미된 나의 구절은 투박하고도 냉정한 듯 안 한 듯.
그냥 재밌는 걸 찾은 거야, 유혜는
나는 간편하게 이 대화를 마무리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러자 꼬치꼬치 물으려 소라의 고개가 앞으로 향했는데, 마치 빠르게 먹이를 탐하려는 거북이 같았다. 다행히 그사이에 있던 눈치 빠른 효정이 다른 주제를 꺼냈다. 우리 중 가장 먼저 취업해 월급을 받는 효정은 곁눈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고 우린 눈 너머로 암묵적인 대화를 나눴다. 나와 ‘걔’의 사건에서 효정의 역할은 대나무숲이었다. 나의 대나무숲. 효정은 웃으며 다른 주제를 꺼냈다. 비밀에서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는 주제는 더 막 나가는 비밀이었다. 효정이는 조용히 청자를 자처하던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류원의 어깨를 툭 치며 자연스럽게 말온라인 카지노 게임. 효정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고, 그건 효정의 비밀 무기인 가면이었다. 저 속에는 아마도 소라에 대한 불만이 한가득할 것이다.
너희 그럼 걔는 기억나?
누구?
가오 심하던 애. 담배 뻑뻑 피고, 그 조준우가 꼬봉으로 따라다니면서 라이터로 담배 붙여주던 애 있잖아
아, 기억나. 김치수. 조준우 대들었다고 교실에서 주먹 갈긴 양아치
류원의 완벽한 소개 이후 효정은 말온라인 카지노 게임. 조준우가 모시던 그 일진이 완벽한 탈선의 길을 걷게 되어 구치소에 갔다고. 이미 효정에게 며칠 전 전화로 생생하게 전해 들었지만, 다른 애들에게 내가 먼저 들었다는 소외감을 주지 않기 위해 모른 척 놀라는 연기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나저나 ‘완벽한 탈선’이라니, 다시 들어도 재밌는 단어 조합이었다. 슬쩍 엇나간 것과 완전히 엇나간 것. 어차피 엇나간 것인데. 이상한 말이다. 소라는 유혜보다 김치수의 이야기가 더 재밌었는지 거북이 같던 자세는 이제 토끼처럼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한차례 안심온라인 카지노 게임.
류원은 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젓곤 남 일이라며 손을 저었다. 김치수의 일화를 떠들다 보면 진유혜는 저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 어둠의 벽에 버려졌다. 벽에 부딪혀 웅얼거리는 소리조차 되지 못한 유혜는 오로지 내 머릿속에서 지금의 대화와 함께 재생되고 있었다. 애초에 조준우가 뺨을 맞은 이유부터가 김치수의 여친이었던 유혜에게 찍쩝거려서 라는 건 이 자리에서 나만 아는 사실이었다. 재밌는 건 조준우도 몰랐다. 며칠간 오른뺨에 푸른 멍을 달고 살던 조준우는 그저 제 대장이 뭐가 마음에 안들었구나 하는 완벽한 꼬붕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종합해보면 이 이야기는 B급 독립영화의 시나리오 정도는 됐다. 그런 영화의 주인공들은 튀고, 윤리의식이 흐릿하고, 남과 다르길 바란다는 공식이 있고, 김치수와 진유혜는 모든 걸 충족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래서 이 둘은 사랑까지도 했나 보다. 은밀까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 전교생이 모르는 걸 나만 안다니, 참으로 보잘것없는 부담감이다. 진유혜는 나를 조연으로 지정해 뒀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진유혜의 대나무숲이었고, 내 시선에 둘의 사랑은 단지 진유혜의 연극일 뿐이었다. 유혜의 인생은 모두 타인이 쓴 거지 직접 쓴 건 없었으니까. 효정의 말 뒤로 소라가 열불을 내며 마치 모든 모범 시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온라인 카지노 게임.
진짜!! 한심해. 왜 그렇게 사는 거야?!
글쎄, 길거리에 침 뱉고 술 먹고 노상 방뇨하는 네가 할 말은 아닌데. 소라의 말을 들으니 얼마 전 인스타그램 비밀계정에 소라의 술친구가 ‘소라가 지나간 자리’라는 멘트와 함께 전봇대의 물 자국을 찍은 사진이 올라왔던 게 떠올랐다. 그 사진은 오래된 번화가 어디 골목길이었다. 이 카페 주변 어디일까.
사진 속 아스팔트는 색이 바래있었고 전봇대도 옅은 회색으로 색이 바래 물이 묻는 대로 티가 나는 돌이었다. 아스팔트에는 넓게, 전봇대의 측면에는 물줄기가 부딪혀 틔어있는 모양새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물의 출처가 소라의 방광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 술친구는 제 비밀계정을 소라한테는 안 알려주고 나한테만 알려준 듯온라인 카지노 게임. 사람 심리의 신비였다. 내가 분명 계정에 친구가 되어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사진은 소라가 망신당하길 바라는 마음이 다분히 담겨 있었다.
그러는 너는 술이나 줄여라, 라는 말이 목구멍 언저리까지 차올랐다. 소라의 얼굴이 아무 말도 없는 나에게 갑자기 향온라인 카지노 게임. 아차, 이 이야기를 못 들은 척 계속 반응해야 했는데 아스팔트 사진이 떠올라버려 나도 모르게 멍해 있었다. 소라는 왠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류원은 소라를 한 번, 나를 한 번 보고는 소라 모르게 옅게 한숨을 쉬었다. 늘 그렇듯 소라는 류원이 한숨 쉰 걸 눈치채지 못온라인 카지노 게임.
넌 어떻게 생각해?
어?
아니. 너도 김치수 존나 한심할 거 아니야. 그런데 아무 말도 없길래
어…. 나중에 정신 차려서 후회하던가, 아니면 늙어서 생각 없이 길거리에 침 뱉고, 사람들 툭툭 치고 다니겠지 (그러든 말든 내 알빠는 아니지만)
소라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아, 또. 소라의 열등감이 내 앞에 출몰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래서 2주에 한 번은 만나던 약속이 두세 달에 한 번이 된 것이고 가끔 하던 둘만의 카톡방도 완전히 닫힌 것이다. 소라는 내가 이런 식으로 애늙은이 흉내를 낼 때면 재수 없다는 얼굴을 지었다. 소라의 장점이자 단점인 투명한 표정이 그랬다. 얇고 짧은 눈썹이 이렇게 욕심이 많아 보일 수 있구나, 했던 것도 소라의 첫인상이었다. 나는 소라보다 먼저 대화의 주도권을 채갔다. 소라의 준비된 태도가 주도권이 이탈되어 잔뜩 힘이 빠졌다. 그리곤 다시 한번 더 안 그래도 올라간 눈썹을 더 올렸다.
이제 남 애기 그만하고 우리 애기하자. 류원이는 공시 준비 어때?
류원은 시선을 돌려 나를 향해 요즘 공부의 현황에 대해 말온라인 카지노 게임. 효정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소라를 한 번 힐긋 보곤 경청을 취온라인 카지노 게임. 아무래도 소라와의 만남은 오늘 이후에 또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웃는 얼굴로 대화를 이어갔다. 제법 무심하고 냉정한 생각인데도 나는 또 이랬던 나를 아주 나중에 깨닳을 것이다.
소라는 그 뒤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우리가 재미없었는지 휴대전화를 켜고 누군가와 열심히 카톡을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작은 화면의 백라이트를 얼굴에, 무드 등의 노란빛을 정수리에. 양쪽의 조명을 완벽하게 받았다. 결국 소라의 이야기도 테이블 사이 어둠에 버려져 웅얼거림조차 되지 못온라인 카지노 게임. 취업을 위해 갈색과 검정으로 염색한 우리와 다르게 휴학 이후 2년째 고수하고 있는 탈색한 샛노란 머리가 무드 등에 더욱 노래 보였다.
* * *
성소라 진짜 왜 그래? 너 취업 된 거 미루고 일 년 쉰다고 할 때부터 더 심해졌어
뭐…. 매번 만나고 나면 연락이 점점 줄었으니까 이제 거의 안하겠지
그래. 우리도 아쉬울 거 없어!
그래그래. 너도 오늘 고생온라인 카지노 게임. 대신 화내줘서 고마워. 잘 들어가고 쉬어
어 ~ 오늘 잘 들어가
카페에서 헤어지고 집에 가려 버스를 탈 때쯤 효정이 소라 때문에 기분 상한 건 아니냐며 걱정스레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웃으며 아니라고 했고 동조하면 길어질 것 같아 타이밍에 맞게 마무리 멘트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 뻑뻑한 눈을 비비적이며 효정의 전화를 끊고 버스의 창가에 고개를 기대었다. 역시 중간에 집에 가는 게 답이었나. 자리를 비우자마자 ‘솔직히 쟤 있지’라는 말이 들릴 게 뻔온라인 카지노 게임. 밖에 바람이 차서 그런지 고개를 기대자 창가의 차가운 기운이 두피에 전해져왔다. 소름이 자칫 돋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난 뒤 특유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집까지 내 옆으로 누가 앉지만 않으면 좋겠네. 그러곤 방금까지 카페에서 했던 이야기들, 상황, 표정들을 하나둘 차가운 두피를 느끼며 회상온라인 카지노 게임. 과거의 나에게서 비롯된 이상한 강박이다. 나는 둘이 앉을 수 있는 버스의 뒷자리, 왼쪽 첫 번째 지정석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며 소라의 물음 뒤 내 대답을 상기온라인 카지노 게임.
재밌는 걸 찾은 거야.
그러다가 무심하게 말했던 나를 느끼고 스스로에게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한때 후회한 시간이 있고, 우울한 감정에 휘말린 적도 있다. 혼자 그 감정에 승리했고, 승리한 후 정당한 성찰들을 얻어 내었으며 단 한마디의 단순한 말로 그 당시의 모든 것을 결론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무심한 말보다 유혜를 추억할 수 있던 말은 없을까, 하다가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모순적인 감정 끝에 착한 위선을 내려놓고 나면 결국 유혜는 놓은 애였다. 이러한 나의 면이 소라의 호승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 철이 든 척하며 최대한의 정답에 가까운 답을 꺼내는 나를,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는 나를, 소라는 그렇게 보고 있다. 아, 어디 등산 브랜드 로고가 작게 적힌 파란 패딩을 입은 아저씨가 내 옆에 앉았다. 내 고독이 침범당해 더 이상 생각이란걸 할 수 없었다. 뒷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유혜는 예뻤다. 후에 구치소행이 마지노선일 정도로 막 사는 김치수가 다정해지고, 김치수가 관심 있는 걸 알면서도 조준우가 겁을 상실하고 껄떡거릴 정도로. 모든 상황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만큼 유혜의 형용사는 강력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 예쁨은 모든 행동에 안타까움이 정당하게 붙는 데에도 한몫온라인 카지노 게임. 같은 고등학교 동창 중에서도 더러 유혜에게 안타까움과 동정을 느끼는 이들도 많았다. 분명 유혜는 이름조차 모를 이들인데도, 동정을 보내는 것을 목격했었다.
필로폰을 맞고 어디 클럽 지하에 이불처럼 널려 누워 있던 아이돌의 모자이크 사진이 떠올랐다. 그 사진 아래 댓글로 걱정을 보내던 무언가와 닮아 있었다. 저렇게 예쁜데, 왜 그랬대? 라는 게 타인들의 결론이었다. 예쁘면 그러면 안 돼?
‘모르겠다. 안 예뻐 봐서’라는 식으로 타인을 이해하려던 내 노력은 대부분 마무리온라인 카지노 게임. 집에 도착하니 따뜻하다 못해 습한 정적이 나를 맞이온라인 카지노 게임. 미적미적 이며 방으로 향하던 걸음은 멈칫하다가, 부엌으로 향해 무의식적으로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에 잠깐의 절망을 맞이하다가 ‘아까 카페에서 케이크 먹었으니까 참자’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세게 먹곤 어깨를 늘어트렸다. 살 빼야지. 그래, 몇 년이 지나고 깨달은 건 그냥 이건 세상의 이치였다. 그렇기에 끝까지 유혜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작 가장 가까웠던 나는 단 한 톨도 안타까움이라는 동정을 가진 적 없다.
없는 감정에서 이유를 찾자면 보기 좋게 마른 유혜와 달리 살집이 있는 나에 있다. 유혜와 다닐 때면 스쳐 지난 저 뒤쪽 어딘가에서 나의 살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일어났다. 신나 떠드는 입 사이 그 침의 얼룩은 오래 남았다. 얼룩이지만 지워지지 않아 흉터와도 같은 것이었다. 시끌시끌한 말소리 사이에 감탄사는 누구의 것인지, 내가 더 잘 알았다. 이렇듯 유혜는 같이 있으면 내 환경과 처지를 상기시켜 주는 애였다. 태초 탄생의 모습을 가진 그녀와 달리 생활의 풍파를 그대로 맞아온 나의 것들은 어김없이 한눈에 보였다.
집 뒤에 큰 밭이 있어 7살이 되고서부터 쨍한 해 아래에서 밭일을 도와드리다 보니 어린 흰 피부가 탔다. 골고루 보기 좋게 탄 게 아니라 어쩌다 토시를 하던 팔뚝만 좀 덜 탔다. 맨손은 새까맸고 선크림이라는 고상한 현대 물품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 우리 가정에 머나먼 것이었다. 고생의 흔적이 보이는 나와 다르게 유혜는 하얬다. 태어나서 밭을 보기만 하고 걸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곱슬로 더벅머리인 나와 달리 유혜는 찰랑이는 생머리를 가졌다. 대대로 내려오는 곱슬은 할머니가 파마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력했고 우리 집 곱슬을 부러워하는 건 동네 할머니들뿐이었다. 1990년대 소설 속 어디 촌년들이 도시 아가씨들을 부러워하던 마음이 뭔지, 어린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유혜의 행동들은 또래들과 꽤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성의 관심에 대한 그 애의 태도는 특이온라인 카지노 게임. 유혜는 이성의 관심을 단지 ‘관심’ 그 이상 그 이하로 보지 않았다. 14살은 분명 이성에 눈을 떠 짐승만큼 서로를 탐구하는 때여야 하는데, 유혜에겐 전혀 그런 흥분과 우월감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두고 친구 사이인 두 명의 남자애들이 다퉜다는 놀라운 이야기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던 무심함에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걔랑 걔 싸웠대
지금 생각해 보면 이슈의 중심이 고요하다면 그건 이슈가 아닌, 일상이었다. 그래서 당연했던 것이었다. 남에겐 이슈, 유혜에게는 일상.
하지만 이슈가 아닌 일들을 나에게 그렇게 떠들어 댔던 건 다른 이유에 있었다. 유혜는 마치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 제 일상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왕따 출신인 걸 들켰을 때도, 유혜는 그런 건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자신이 어디 중학교의 선배에게 고백받았다고 이야기온라인 카지노 게임. 유혜의 이야기들은 특별해 보였으나 내 이야기도 특별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런데 남들의 시선에는 그러지 않은 듯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 특별함을 숨겨야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남보다 더 먼저 고독을 배웠고, 겸허히 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특별한 건지는 좀 뒤에 깨닳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유혜의 특별한 일상에 열등을 느끼지 못한 건, 나도 특별해서 일지도. 본인이 우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유혜처럼, 나도 내가 우월하다는 걸 몰랐던 거라고 생각하자.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때 배운 거니까.
유혜와의 관계는 건강하지는 않았다. 우위 관계가 없다 뿐이지 그 애에게는 다른 애들이 눈치채지 못할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유혜의 흠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그 사실을 남에게 말을 하고 싶다거나 유혜의 그런 점을 고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누구나 사람에겐 단점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건 배려이기도 했고, 그 애의 배려 아닌 배려에 대한 보답이었다. 물론 내 과거에 눈감아준 건 내가 너무 많은 걸 알아서이기도 했고, 나 같은 대나무 숲이 없을 거라는 사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문제라 느낀 건 언제였더라. 17살, 같은 중학교에서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던 때였다. 중학교 3년 중 2년은 내내 붙어 다녔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같은 반까지 되었다. 내 옆자리는 너무나도 당연히 유혜였다. 누구의 동의도 필요 없었으며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 또한 유혜가 내 옆에 앉는 것에 전혀 의문 갖지 않았다. 유혜는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너 친구 너무 많아졌어. 서운해
고등학생 1학년, 같은 자리에 앉았을 때 유혜는 엎드린 채 나를 올려다보며 말온라인 카지노 게임. 큰 눈이 나를 향해 깜빡이고, 붉은 입술은 선생님 몰래 색깔 있는 림밥을 바른 듯온라인 카지노 게임. 다른 반 중학교 동창을 만나고 자리로 돌아온 나에게 유혜는 최대한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1년 만에 옆자리에 앉아 본 유혜는 여전히 예뻤다. 웃으며 별걸 서운해한다고 말하며 넘겼다. 어쨌든 지금 너는 나의 가장 친구였고,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게 반에서 우리의 역할이니까. 내가 다른 무리의 친구들과 놀아도, 더 즐겁게 이야기해도 너는 내 가장 친한 친구니까. 그럼에도 유혜는 무언가 불안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알면서도 아주 쉽게 무시를 택온라인 카지노 게임.
와 노. 그애서 -
어눌히 말을 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유혜의 눈과 마주쳤다. 유혜의 눈이 미동 없이 멍온라인 카지노 게임. 저 눈은 어디 큰 서점에서 돈 주고 코팅했나 싶을 정도로 반짝였다. 투명하지 않은 흑진주. 미간을 어그러트렸다. ‘께름칙하다’ 였을 것이다. 배불리 밥을 먹고 매점에 가서 피스타치오 맛 월드콘을 먹으려던 단순하고도 완벽한 계획이 무너졌다. 애 때문에. 밥 먹으면서 내가 했던 말이었다. 환호. 그래서. 어제 드라마 보다가 환호를 질렀어, 그래서 오늘도 너무 기대돼. 단순하고도 단조로운 말이 이렇게 소름 끼치게 바뀔 수 있는 것도 상황과 사람의 힘이구나. 한 번 더 유혜는 뱉었다. 와노. 그애서
.....너 지금 뭐 해?
어조, 어투, 발음의 뭉개짐, 뭉개는 속도, 그 속도의 느낌까지 따라 하려는 듯. 마치 본인의 시간에서 여러 번 있었던 일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멍한 눈, 움직이는 입술. 내가 한 말에 대한 대답과 내가 자신을 보는 표정보다도 그게 중요한 것처럼. 손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가슴이 턱 막혔다.
어? 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도 지금 자기가 뭘 했는지 모르는 듯한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 애의 무의식이 내 앞에 등장하고 만 것이다.
혼자 존재하지 못하는 그 애의 본심이.
* * *
지금으로부터 3년 전. 21살. 첫 손님이 왔다. 내 인생에 들어온 첫 손님은 많은 걸 줬고, 받았고, 언제 떠날지 모르고 또 올지 모른다. 멍하니 녹색, 흰색 격자무늬의 시트가 깔린 싱글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마지막으로 언제 씻은 지를 새어 봤다. 이 손님이 온 이후로 내가 가물가물해졌다. 부모의 이름까지 가물가물해질 때쯤이었나. 정확히 안 씻은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떡진 머리로 두피가 쓸려 은근히 당겨 아팠다. 이유를 찾았다.
할 일이 없어서 이런가? 매일 대학 가고 과제하고 공부에 쫓겨 살다가 할 걸 잃어버려서 목적을 잃고 이렇게 정지된 건가? 로봇이 주인의 명령이 없어서 전원이 꺼진 채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는 것처럼 나도 그런 건가? 아니 난 로봇이 아닌데. 명령을 줄 주인도 없는데. 애초에 내가 문제인가 봐. 손님, 왜 온 거야. 온 이유는 나밖에 없잖아.
마냥 좋지는 않은 어릴 적. 어리숙하기만 했던 어린 나. 나이만 먹은 나.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나. 외로운 나. 씻지도 않고 하는 것 없이 앉아 있는 지금의 나. 좋지 않은 누군가. 좋지 않은 언젠가. 좋지 않은 지금. 좋지 않은 어떤 때. 좋지 않은. 완벽하지 않은. 덜 떨어진.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 없는.
멍하니 5평짜리 내 공간에서 허공을 보면 바로 문이 보인다. 그 문밖을 바라보았다. 왕따였던 어린 나. 나는 항상 그 과거에 납득했다. 남보다 말 수도 없었고,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아니었고 옷도 촌티가 났다. 어디 시내에서 샀지만, 시내도 시내 나름이었다. 나에게 시내는 대형마트였고, 다른 애들한테 시내는 아울렛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왜 1990년대 소설 속 어디 촌년들 고민을 해야 하냐고. 나는 다시 한번 앉아 있을 힘을 잃었다. 누워야 앉고, 앉아야 일어날 수 있는데 언제 일어날 건지. 또다시 미지수가 됐다.
왕따를 당한 과거에 새로운 환경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온라인 카지노 게임. 하지만 나는 어디서 내면의 힘을 얻은 건지 나를 바꾸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아마 그때일 수도 있다. 일어날 에너지를 그때 다 써버린 걸 수도 있다. 축 처진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작은 목소리를 키우고. 그 피로가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야 손님과 함께 온 걸지도 모른다. 나는 풀썩 어깨가 무거워지자 이기지 못하고 다시 드러누웠다. 실은 대답을 알고 있다.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라서. 내가 나조차 자랑스럽지 못할 정도로 지루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란 거. 그게 내 탓이란 거.
남들이 아름다워질 때, 머물러 있는 거. 이미 3년 전, 나는 유혜에게 들켰다. 유혜는 그 사실을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 * *
유혜는 한 학년 간 자신이 붙어 다니기로 결정한 친구의 모든 것을 복사온라인 카지노 게임. 걸음걸이, 말투, 말의 속도, 웃음소리까지. 어떨 땐 내 눈썹을 깜빡이는 속도까지도 가만히 관찰하는 것 같았다. 내 어눌함까지도. 내 어눌해지는 단어들을 기억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따라 말하곤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같이 다니는 짝지로 확정이 되고부터 카톡의 상단에 고정되어 아래로 추락하지 않은 이름을 보며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친구인가. 좋은 거리감이라는 성숙한 표현을 그 당시에 알 리 없었다. 하지만 유혜는 도저히 따라 하기 싫은 내 행동들에 대해선 여지없이 비난온라인 카지노 게임. 지금 생각해보면 모순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 행동 중 하나로 학교 안 매점에서 파는 300원짜리 초콜릿을 매일 같이 사 먹는 것이었다. 어린 나에게 당시 삶의 낙중 하나였다. 초등학생 때 모아두었던 동전 저금통 안을 뒤져 매일 600원씩, 900원씩 교복 치마 주머니 안에 넣었다. 짤랑거리는 치마 주머니 안속 동전의 감각은 천을 넘어 차가웠다. 그런 차가운 이질감을 참고 입안에 초콜릿을 넣고, 그 안에 부서지는 토핑된 과자와 밀크 초콜릿의 분수를 느끼던 때가 내 스트레스 해소의 첫걸음이었다. 그럴 때면 유혜의 짜증이 나에게 넘어왔다. 값싼 초콜릿을 매일 같이 사 먹는 내 모습이 촌티가 났던 것 같다. 편한 사이에선 그냥 막 짜증 내도 괜찮다고 하니까, 인터넷 소설 속 친구 사이에서는 욕도 막 하던데. 애도 내가 편해서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멍청하게.
왜 몇백 원짜리만 먹어? 용돈 없어 보이게.
짜증을 보이기만 했지 말한 적은 없었는데, 대놓고 묻는 말에 당황한 채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창피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 말은 내 치부를 들킨 것 같아서 창피온라인 카지노 게임. 돈을 그렇게 썼다는 사실이 치부가 됐다. 그 이후 초콜릿을 사 먹던 빈도는 줄었다.
그런 중학생의 내가 지나고 고등학생 시기엔 제법 미래가 있었다. 자신을 위한 미래에 얼마나 심장이 뛰는지, 꿈을 품었다. 내 진화에 맞춰 유혜도 꿈을 가졌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 생기자 유혜도 좋아하는 과목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생기자 유혜도 좋아하는 선생님이 생겼다. 자주 쓰는 단어, 자주 쓰는 물건들까지. 유혜는 점점 누군지 모를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보기 싫었던 행동들이 사라진 나도 아니었다. 분명 나는 아닌데, 유혜도 아니었다. 이상한 정체성이 되어버려 그것에 발목이 잡히거나 하지 않았다. 유혜와 나는 겹치는 부류가 아니었다. 이것은 또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 유혜에게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던 날, 내가 앉은 자리 옆에 쪼그려 앉아 환히 웃으며 말하던 얼굴이 그랬다. 나 수학 3등급 나왔어! 놀라 눈이 커져선 같이 기뻐해 줬다. 더불어 난 수학 2등급이 나왔기에 한차례 잠시 안심하곤 축하온라인 카지노 게임. 조금 치졸한 마음이지만 애써 숨겼다. 그 애는 말온라인 카지노 게임. 너 덕분이라고. 그러고는 내가 목표하던 학과를 입에 담았다. 나도 그 학과 갈 수 있겠지? 이제 막 희망이 생겨, 라고 말하던 말간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에서 진심을 읽었는데, 잘 모르겠다. 다행히 그 뒤로도 유혜는 나보다 성적이 높게 나온 적이 없었다.
* * *
유혜가 나에게서 떨어지게 된 것을 이렇게 표현해도 되나. 갈아탔다. 나에서 다른 애로.
너 너무 재미없어.
18살의 4월, 따뜻하다 못해 먹먹하다 싶을 정도로 습한 봄 언제. 유혜는 점심을 먹고 학교로 가던 다리 위에서 그런 말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도 잊지 못할 한마디였다. 아마 나는 상처받은 거겠지. 나를 4년간 열심히 따라 한 애는 나보다도 먼저 나에게 싫증을 느꼈다. 그건 후에 손님이 방문하는 길을 안내해줄 안내판이 되었다.
갈아탄 친구는 같은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이름은 희소라고 혼자 다른 고등학교로 간 애였다. 다른 고등학교로 갔지만 유혜와 자주 연락하며 밖에서 만나는 듯온라인 카지노 게임. 요즘 자주 만난다더니,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희소의 고등학교 애들은 기가 세고, 매일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공부와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렸다. 그리고 걔도 이제 그런 삶을 산다고. 하지만 나는 친구의 탈선에 대한 소식에 크게 걱정을 표하지 않았다. 남 일이니까. 물론 주위에선 가격이 어떠하던 의도는 옳은 동정을 표온라인 카지노 게임.
기센 애들 사이에 있을 희소를 떠올리며 동정하는 애들 사이에 다른 생각을 가진 나처럼 유혜도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 일이라 생각하는 나와 다르게 유혜는 특별함을 느낀 것 같았다. 본인이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유혜에겐 특별한 일이었다. 그렇게 따지만 내 일들도 특별한데, 이런 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사건이겠지. 유혜에게 탈선은 신화이고 특별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 이야기를 하던 표정은 마치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던 두더지가 찰나의 햇빛을 보며 경의와 함께 밝아지던 얼굴과 같았다.
그래서 걔 소개로 오빠들을 만났거든? 25살, 26살이래. 그 오빠들이 우리 드라이브시켜 준다고 차도 태워줬어. 진짜 그때…. 내 인생에서 제일 재밌었어. 밤에 밤바람 맞고 가니까 속이 뻥 뚫리는 거야
진심이었다. 내 앞에 하는 말들 모두 진심이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의 말에선 여전히 우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에게 모든 일상을 말하고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번 일만큼은 유혜에게 일상이 아니라 ‘이슈’라는 것. 그리고 모든 게 진심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나를 따라 하던 발음도, 어투도 지워졌고 행동과 걸음걸이도 바뀌었다. 욕을 쓰는 빈도가 늘었고 묘하게 말꼬리를 늘렸으며 말소리를 가늘게 하려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웃을 때 앞 이가 보이게 벌려지던 입술은 항상 손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술도 마셔보라 해서 처음으로 술도 먹어봤는데. 처음에 존나 썼거든? 근데 씹, 한 2병 먹고 나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 거야. 어지러운데 기분 좋고, 내가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기분 좋고. 인생에서 그렇건 처음이었어
술? 왜 나한테 이야기해서 날 심란하게 만들지.그런 생각 뒤로 화를 내지도 않았고 짜증도 내지 않았다. 그저 듣고, 듣고, 듣고. 유혜에게서 중요한 건 대답이 아니었으니 망정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몇 번 반복되더니 갑자기 사랑을 한다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김치수였다. 남한테는 개망나니인데 저한테는 그렇게 따뜻하다던 개망나니. 사귀는 거 너만 아니까 비밀로 하라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알았다고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부에 몰두하다 보면 그런 비밀들 따위는 사라질 무게였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한적한 교실, 밥을 먹으러 가서 아무도 없는 빈자리들. 분명히 사람의 기척도 없는데 공부하는 내 옆에 바짝 붙어 비밀스레 제 사랑의 역사를 나열온라인 카지노 게임. 비밀스럽게 이야기할수록 재밌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랑도 비밀스럽고, 사건들도 비밀스럽고. 결국 뭐든 간에 어디 B급 영화 시나리오나 될 텐데.
유혜는 고작 2주 사귄 남친이랑 싸웠다고 그랬다. 다시 사귈지 말지 고민한다고. 유혜에게 그 2주가 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해 본 적 없다. 단지 2주 사이에 많은 일들이 생긴 건 알고 있다. 유혜의 연애 2주는 희소의 연애 3개월과 비슷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래서 새벽 3시인가? 속이 너무 심란한 거야. 나한테 ‘씨발년’이라고 하는 애하고 다시 사귈 수 있을까? 근데 난 여전히 걔가 좋단 말이야. 그래서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웠어. 고민하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까 내 발 앞에 담배꽁초가 산처럼 쌓여 있는 거야. 그 자리에서 무려 두 각을 다 핀 거 있지? 하....
마치 가련한 주인공의 말 같았다. 옛날 내가 5,000개나 넘게 읽을 정도로 푹 빠져 살던 인터넷 소설의 대사 같은 말을 처량하게도 했다. 친구가 없어서, 또래들의 세계가 인터넷 속과 같을 거라 생각하며 대리만족하던 때가 떠올랐다. 저 말 사이에 과한 표정 이모티콘들이 끼어든다면 완벽할 텐데. -_-♨ 이 임티가 저 ‘하...’ 뒤에 붙은 딱이다, 같은 우스꽝스런 생각도 잠깐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디서 화가 난 건지 모르겠다. 내 가슴 저 깊은 아래에서 무언가 치솟아 올랐다. 깊은 심해에 있던 상어 한 마리가 뭍 위에 있는 갈매기 떼를 향해 전투적으로 헤엄쳐 오르는 것만 같은 파괴력이었다.
유혜의 독백이 시작된 이래로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그 애의 얼굴을 마주온라인 카지노 게임. 시나리오 속 주인공의 비장한 독백에 고작 조연이 끼어들다니, 안될 일이었다. 그제야 그 애의 말은 대화가 되었고, 나는 화난 얼굴을 감췄다. 대답을 위해 준비온라인 카지노 게임. 내뱉으려던 한 마디, 한 마디에 내 4년의 배려들이 숨어 있었다. 4년간 내 흠을 참아 준 유혜를 위해 유혜의 흠을 받아들인 배려가.
이런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준비를 하는 이유가 뭔지. 훗날 생각온라인 카지노 게임. 며칠 전 희소가 일짱인 제 남자친구에게 뺨을 맞았다며 걱정된다고 유혜가 이 욕, 저 욕 다하면서 난리 치던 때가 떠올라서일까. 그때 유혜는 희소를 진심으로 생각하듯이 말온라인 카지노 게임. 울고 있는 희소를 다독여 줬다고. 폭력을 쓴 그 새끼를 찾아가서 헤어지라고 노발대발할까 고민 중이라고. 전형적인 정의로운 주인공의 대사였다.
그런데. 그래 놓고. 이번에는 네가 네 남자 친구한테 욕을 들었다고. 심지어 담배를 아래 산이 쌓일 정도로 피웠다고. 내 얼굴이 어땠을지 상상해봤다. 기억은 안 나는데 분명 미간을 미묘하게 일그러트렸을 거고, 미간과 함께 눈도 묘하게 가늘어졌을 것이다. 그 외에는 딱딱하게 굳어 입술만 움직였겠지. 굳은 근육들 사이 사이에 혐오감을 숨길 수 없었을 거다. 어리니까.
재밌어? 희소가 맞고 헤어졌다니까 이제 너도 맞고 헤어지게?
내 말에 유혜는 표정을 굳혔다. 표정에서 읽혔다. 뭐라고, 미친년아. 딱 그 얼굴이었다. 희소도 뺨을 맞고 집에 돌아가서 헤어질 거라 다짐하며 담배를 그렇게 피워댔다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근데 너도 그랬구나. 독백들이 그 애에게 처음으로 진심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역시나 아름다운 감정도 아니고 드라마 같은 감정도 아니었다. 숨겨진 이질감과 혐오, 애증이 섞인 우정. 그런 느낌이었다. 현실적인 감정이었다.
씨발 - 넌 뭔 말을 그렇게 싸가지없게 해?
희소가 싸울 때 이런 어투, 이런 어조로 말하나. 아니, 원래 애는 이런 애였나. 남들을 따라 하다가 그제야 본인에게 맞는 옷을 찾은 걸까. 이건 고민이 아니었다.
내가 그런 말 들으면 노발대발하면서 씨발년이라 한 네 남친한테 따지기라도 바라는 거야? 희소 남친이 희소 때렸을 때, 너처럼?
보이는 것만이 네 세상인 건 내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내 세상이 그러길 바라는 네 마음도 얼마나 무지하고 이기적인 건지. 나를 무섭게 째려보던 눈은 내가 기죽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희소가 자신을 이렇게 볼 때면 기가 죽었나? 행동 모든 게 다른 사람이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특유의 버릇이라도 보이던 중학생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차라리 나를 따라 하려다 이도 저도 아닌 게 나았다.
지금 씨발 싸우자는 거야?
됐다. 그냥. 내 눈 주위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잔뜩 힘이 들어갔던 눈 근육 어디에 감정이 숨어들었던 것 같다.
하.... 아니. 내가 말이 심했어. 이제 그 이야기 나한테 그만해.
분위기는 서먹해졌다. 눈앞의 문제집 속 글자들이 흐릿해졌고, 거기서 내 감정을 참고자 한 차례 더 요동쳐야 온라인 카지노 게임. 너 때문에 풀 수 있는 문제집 분량을 너와의 대화로 인해 버려야 한다는 것, 집중하기 위해 다시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게 나의 문제였다.
하지만 다음날. 유혜는 참을 수 없었는지 똑같은 전개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것 봐, 애한테 중요한 건 대답이 아니라니까. 단지 자기가 누군가로 존재한다는 확인인 거지. 침묵이 화해가 되어버렸다는 건, 이제 우리는 친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때의 나에겐 그랬다. 이 화해가 유혜를 미련 없이 놓아주는 것에, 포기하는 것에 한몫온라인 카지노 게임. 유혜의 말과 행동들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한 발버둥이나 결핍이라 생각온라인 카지노 게임. 존재하고자 하는 연극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애는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는 알까.
그 후 유혜에게 나는 완전한 조연이 되었고, 대나무 숲이 되었다. 유혜의 조명 밖으로 완전히 밀린 나는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오래됐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간에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라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오늘 목표 공부량이 너무 많아서 버겁다든지, 수업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힘들다든지. 고작 그 정도였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초라해지지 않았다. 언젠가에 몰아서 초라해질 거니까.
말이 없는 점심 식사가 몇 번 지속되었다. 횟수가 열 손가락을 넘어갈 때쯤 돌연 유혜는 자퇴를 선언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 자퇴할 거야. 밥을 먹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던 낮은 계단 앞에서. 나에게 재미없다고 비난했던 곳, 혼자 존재하지 못하는 본심을 들킨 곳. 그곳에서. 나는 놀람을 숨기지 않았다. 이제 이 어색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이상하고 텁텁한 시간이 끝났다는 이상한 해방감까지 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란 말도 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유혜의 시나리오를 써주는 누군가가 자퇴를 한 거라면 결단코 애를 막을 수 없었다.
자퇴 이후, 유혜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 * *
소라, 효정, 류원과의 만남 뒤 피로감을 풀기 위해 멍하니 싱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하던 나는 멈칫온라인 카지노 게임. 소라였다. 소라의 인스타 피드였다. 소라가 올린 사진에는 술잔들이 가득온라인 카지노 게임. #오늘도alcoholic. #외로울때는한잔. #진정한. #friends. 우리와의 약속 이후에 술친구들을 만난 건가 싶었다. 이걸 ‘겹 약속’이라고 어디 유튜버가 그랬던 거 같다. ‘겹 약속 연달아 잡는 친구, 회식 왕따시키기 참교육!!!!’이 적힌 유튜브 영상 제목이 떠올랐다. 다소 수위 높은 장난과 선 넘는 발언들이 웃기긴 했지만 약속을 연달아 잡는 걸로 이렇게 괴롭히나 싶었는데. 사진 속에는 우리의 점심 약속이 빠르게 마무리될 거라는 은근한 무시가 섞여 있다. 그리고alcoholic은 알코올 중독자라는 뜻인데 그걸 알고 쓰는 건가. 자투리 전공지식을 떠올리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요즘 그 전 단계긴 하지, 소라가. 매일 비슷한 피드가 올라왔기에 근거 있는 비웃음이었다.
2년 전 돌연 휴학을 선언했던 소라는 그 당시엔 장황히 나에게 어떤 계획들을 설명온라인 카지노 게임. 대학생이었던 나는 웃으며 넌 잘할 거라고 다독였다. 하지만 내 격려는 그저 격려로 끝났고, 소라의 미래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 대학에서 만난 두 살 위 선배와 사귀고, 남친의 술친구들과 친해진 이후부터 소라는 휴학의 목적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소라는 이제 노는 법을 좀 알 것 같다며 신나게 말온라인 카지노 게임. 너도 이제 좀 놀자고. 술 먹고, 클럽 가고, 밤새도록 놀자고. 남자들도 소개해 주겠다고. 이제 수다만 떨지 말고 남들처럼 춤추고 꾸미고 화려하게 재밌게 놀자고. 그때 알았다. 유혜도, 소라도. 다른 애들도. ‘재밌다’가 보편화되었단 걸. 보편적인 화려함이라는 게 이제는 예쁜 틀이 되어 사람들을 끼워서 맞추려 한다는 것을. 나는 그 ‘재밌다’와 ‘노는 법’을 단 한 번이라도 재밌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한 10분 정도 지나자 소라의 술친구 비밀 계정에 피드가 올라왔다. 때 탄 캔버스 측면 사진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오늘 점심때 봤던 소라의 것이었다. 아래에 적힌 한 문장은 역시나 좋지 않은 감정이 다분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 캔버스 사진을 보기 만해도, 소라의 신발이 하나란 걸 알 수 있었다.
이 년 또 눈치 없이 낌;;; 오빠 도대체 언제 헤어질 거? 존나 가난 냄새 옮을 듯
무시, 혐오, 우월감 등등이 섞인 문장들을 보던 입가는 옅게 한숨을 내뱉었다. 읽고 든 감정은 후회였다. 이 감정들을 읽어버린 내 뇌를 지우고 싶었다. 억지로 그 자리에 끌고 갔을 때 가지 말걸 그랬나. 소라와 소라의 남친이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비울 때 그곳에 있던 애들의 대나무 숲에 자처하지 말걸 그랬다. 격려하지 말걸. 그 자리의 공기와 한탄의 돌림노래 사이에서 답에 가까운 나의 태도가 여지없이 튀어나오고 만 것이다. 울며 말하던 소라의 술친구는 가볍고 가벼운 한마디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제 정신 차릴 거라고. 그러곤 연락하고 지내자며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 뒤로 부르는 술자리를 피했고, 그 친구에게서 디엠은 오지 않았다. 소라가 매일 한 장씩 술자리 피드를 올리면, 애도 매일 같은 배경으로 피드를 올렸다. 달라진 거라곤 소라의 술친구가 제 비밀계정에 내가 친구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소라의 치욕스러운 사진들을 올린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사진들을 보고도 그저 모른척한다는 것이었다.
피드 아래 바로 보이는 댓글 상단에는 소라의 두 살 위 남자친구의 아이디가 보였다. 군대를 다녀왔고, 소라와 같은 ‘컴퓨터 공학과’로 소라가 휴학하기 직전에 복학했다고 했다. 등록금 내고 복학했으면서 졸업하면 제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애견숍을 차릴 거라고 술자리에서 장황하게 말했던 게 기억났다. 소라는 맞장구치며 그 아래에서 공동 경영을 하기 위해 애견 미용을 배울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은근한 우월감을 보였다. 후에 이야기를 들은 효원은 나와 통화하며 대책 없는 수준이 아니라 뇌가 없는 거 아니냐며 한심함을 퍼부었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나는 알아서 할거라며 다음 주제로 넘겼다. 그 전화 통화가 떠올랐다. 소라의 술친구가 올린 피드 바로 아래 소라 남친의 댓글을 보면서.
ㅋㅋ진유혜 소개해 줄 때까지
미간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었으며, 눈도 묘하게 가늘어졌다.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떠올리지 않았다. 알았다. 지금 이 느낌을.
하.
이번에도. 나는 그럼에도. 방관을 선택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들의 시나리오에 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소라도 놓은 것같다. 이어 소라의 피드가 올라왔다. 아까와는 다른 배열의 술잔들 사진 아래 제법 감성적인 태그였다.
#고마워친구들 #너네가있어서내가특별해
다 읽어준 사람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