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마지막 주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1999년에 다니던 한국예술종합무료 카지노 게임 생각이 났다. 비록 한국예술종합무료 카지노 게임를 1학년만 다니고 그만두게 되었지만, 성적으로 전액장학금도 받았던 데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웠던 시기라 그 의미는 남다른 곳이다. 만화만 그리던 오타쿠를, 예술가의 감성을 갖도록 기초를 쌓아준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무료 카지노 게임의 미술원 1학년 과정인 파운데이션 과정은 국내 대학에선 처음 시도되는 것이었지만, 학생들이 기존에 가진 것들을 무너트리고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좋은 수업이었다. 그런 무료 카지노 게임를 개인적인 일로 그만두게 되어, 나는 내내 마음에 풀어지지 않는 응어리가 져 있었다.
난 버스에 몸을 싣고 석관동으로 향했다. 한국예술종합무료 카지노 게임 석관동 캠퍼스는 의릉 부지 한쪽을 깎아 만든 예전 안기부 건물을 그대로 활용했었다. 그래서 연극원, 전통예술원, 미술원 대부분이 위치한 본관은 조금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었고 지하에는 고문받다 죽은 사람들 귀신이 나온다는 흉흉한 소문이 가득했다. 그동안 무료 카지노 게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일부러 소식을 일절 끊고 살았기에... 내가 99학번으로 들어간 뒤 26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했다.
거기에 도착하자 일단 너무나 당연하게도, 주변에는 최신 고급형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게 나쁘게 보였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예전의 무료 카지노 게임 주변은 안기부 주변이라는 것 때문인지, 조선왕조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도 일명 '방석집' 유흥주점이 줄지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건 무료 카지노 게임 주변에 없어도 될 것들이므로, 지금처럼 없는 게 더 나았다. 다만 길을 따라 들어갔을 때, 동기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거나 아침 해장을 하던 백반집 등이 없어진 건 조금 아쉬웠다.
무료 카지노 게임 정문 들어가기 직전의 의릉 앞에는 조그만 공원 같은 공간이 있다. 99년 가을 난 그곳 벤치에서 '나는 왜 이렇게도 고독한가'를 곱씹으며 무료 카지노 게임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며 시간을 종종 보냈었다. 그리고 너무도 반갑게도, 그 공원과 벤치는 그대로 있었다. 이제 막 20살이 된 풋내기 예술가 지망생의 예술병이 깃든 장소랄까. 나한테만 의미 있는 장소지만.
한국예술종합무료 카지노 게임 미술원 디자인과는, 당시에 본관에 있지 않았고 홀로 떨어져 정문 밖에 있는 조그만 별관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난 먼저 내 1999년의 기억들이 가득한 별관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지금 무대미술과가 쓰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아직 개강을 하지 않아서, 아무도 없이 자재들만 쓰레기처럼 쌓여있었다.
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었지만, 저 무료 카지노 게임의 1층 왼쪽은 강의실로 주로 색채학 수업을 들었던 곳이고, 2층 왼쪽은 컴퓨터 실이었다.당시에 최신형 맥과 몇천만 원짜리 렌더링용 컴퓨터가 있어서 밤새 그곳에서 선배와 동기들이 과제를 하고 놀던 곳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 오른쪽은 교수실과 2, 3, 4학년 선배들의 과실이었다. 지하에는 자동차 목업을 위한 목업실이 있었는데, 내 미술학원 강사님이기도 했던 4학년 선배는 처음 지하실에 갔을 때 피 묻은 의자가 뒹굴고 있었다며 으스스한 괴담을 말해주곤 했었다.
저 무료 카지노 게임의 오른쪽 공간으로 들어가면 비상계단이 있는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가니계단에 앉아 동기들과 여름 MT계획을 짜던 생각이 났다. 그때 우리는 동기의 별장(?)인 영덕의 장사 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했었는데, 동민이 형과 승보는 자전거를 타고 영덕까지 가겠다는 계획을 이곳에 앉아 세웠었다. 자전거를 어떻게 구할 것이며, 어떤 루트로 갈지 등등. 또 동기들끼리 문제가 있거나 깊은 이야기를 할 때, 이곳에 앉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1학년 과실은 맞은편에 있던 1층짜리 무료 카지노 게임이다. 지금은 문마다 방이 만들어져 있는 걸로 보이는데, 당시엔 왼쪽 2개짜리 문부터 오른쪽 2개짜리 문까지 통으로 뚫려있었다. 가운데 보이는 창문 바로 앞이 내 자리였다. 이 방은 MDF합판을 쌓아놓는 창고 같은 곳이었고, 각 학생들마다 무려 MDF합판을 조립해서 만든 조악한 책상에 자리 잡게 했던 공간이다. 파운데이션 '입체'수업을 위한 강의실이기도 했어서, MDF합판 책상을 가운데 정렬하고 수업을 들었다. 여름에는 오른쪽으로 보이는 문 뒤에 사물함을 끌어와 공간을 만들어서, 침낭을 연결해 다 같이 밤새고 잠자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가 걸려서 혼난 적도 있었다.
여름이 지난 후 2학기에는 벽 쪽으로 책상을 붙이고 입체 수업 강의실을 본관 너머에 있는 차량기지(...)로 옮겼기 때문에, 디자인과 1학년들은 좀 더 과실다운 과실로 쓸 수 있었다.우리들은 자신의 책상 밑에 각자가 가져온 야전침대나 침낭, 이불을 가져와서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그것마저 없는 애들은 A4용지를 깔고 자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건물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이 공간은 99년의 그런 추억들이 서린 곳이다. 게다가 99년 가을에 나는 TV를 집에서 들고 와서, 아예 동기의 이부자리에 TV와 비디오 플레이어를 설치하고 당시 무료 카지노 게임 앞에 있던 영화마을에서 명작 비디오를 빌려 하루에 영화 3개씩 보며 예술가의 꿈을 키우기도 했던 곳이다. 책상 밑에서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비브르싸비를 보다가잠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과실 뒤쪽으로 가보았다. 여긴 너무 낙서가 많고 쓰레기가 많은 데다 텃밭도 가꾸고 있어서 이게 뭔가 싶었지만, 26년 전 생각이 많이 났다. 당시 여름 조형예술과 동기 진강이가 이곳에 자신의 수업과제로 '집'을 여기에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도와 실리콘 바르는 것을 도와주었었다. 동기들도 과제를 하다 담배피거나 수다 떨러 자주 나오던 곳이기도 하다. 멀리 보이는 무시무시한 담장이, 이곳이 안기부 무료 카지노 게임의 일부였음을 아직도 말해준다.
멀리서 본 99년 당시 디자인과 1학년 과실 무료 카지노 게임. 문득 그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그리워졌다.
나는 발길을 돌려 무료 카지노 게임 본관으로 향했다. 본관으로 올라가는 언덕은 그대로였는데, 한예종에 합격하고서 부푼 가슴으로 이 언덕을 오르던 일, 밤을 새우고 수업 들으러 추리닝 차림으로 긴 머리를 휘날리며 올라가던 일들이 떠올랐다. 점심쯤 수업을 들으러 올라가고 있으면, 길 오른쪽의 언덕 공원에서 전통예술원생들이 판소리를 연습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언덕을 올라가면서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본관 건물이 없어진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이렇게 생긴 이상한 무료 카지노 게임이 날 반겨줘야 했으나, 무료 카지노 게임이 없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흙이 덮이고 나무가 심겨져 부지자체가 사라져 버리고, 의릉 공원으로 복원되어 있었다.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찾아보니 원래 언덕 너머 안기부 차량기지였던 곳에 새 본관 무료 카지노 게임을 짓고, 안기부 무료 카지노 게임을 철거하여 의릉 복원사업을 진행한 것이었다. 의릉 복원사업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추억의 한켠이 아예 사라져 버려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서 새로 지어진 본관 무료 카지노 게임로 가 봤지만, 거기는 나의 추억이 있는 공간이 아니므로 가 봤자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없었다.
이 새 본관 무료 카지노 게임은 아까 언급한 대로 넓은 마당이 있는 차량기지에 세워진 것인데, 원래 무대미술과와 조형예술과가 쓰는 작업실 공간이었고 무료 카지노 게임 가운데에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같은 70년대 차량기지의 흔적 문구가 씌어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지금은 다 갈아엎고 세련된 무료 카지노 게임들로 채워져,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또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하는 모양이다. 참 한예종은 나 다닐 때부터, 맘 편할 날이 없는 곳이다.
여기도 고양이가 돌아다닌다. 26년 전 서울에 길고양이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새는 참 자주 보인다 싶다.
문득 생각이 나서 정문 옆 공원에 올라가 보았다. 아마 이 자리일 것 같아서 사진을 찍었다. 동기였던 진강이의 수업과제로 땅 파고 들어가고 투명한 덮개로 덮은 다음 낙엽으로 덮어주는 과제가 있었는데, 내가 도와서 낙엽으로 덮고 사진도 찍어줬던 기억이 난다. 저거 그래서 아직도 저렇게 파져 있는 건가? 아니면 원래 좀 파져 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본관 쪽 무료 카지노 게임을 나와서, 현재 미술원과 전통예술원이 있는 무료 카지노 게임 쪽으로 가 보았다. 여기는 예전 국가정보대학원 무료 카지노 게임이다. 그래서 그런지 무료 카지노 게임 내부가 좀 특이하다고 들었다. 쉽게 도망치지 못하게 돌고 돌다 보면 몇 층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나 뭐라나. 최근 12.3 계엄 때 한예종을 폐쇄하겠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이 무료 카지노 게임을 이용하려고 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옛날 무료 카지노 게임 쓰고 있다고 해도 페인트칠 좀 제대로 해주지 이게 뭐냐. 아직 개강을 안 해서인지, 정문에는 학생들이 시킨 각종 택배들이 쌓여있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를 둘러보며 다시 한번 실감했다. 동기들은 모두 20년 전 졸업하고, 그 후 20년 동안 각자 삶을 꾸려가고 있다. 어떤 동기들은 아예 한예종 교수가 된 동기들도 있고, 어떤 동기들은 아마 학창 시절의 추억이나 중간에 복학하지 않은 나 따위 잊어버린 지 오래 일지도 모른다.무료 카지노 게임 건물도 그동안 많이 변하고, 이제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물들도 곧 없어 지겠지.
오로지 나만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1999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이제는 멀리 가버려 모두들 잊은 그 자리에서 혼자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수면캡슐 안에 들어가 있다가 미래에 깨어난사람처럼,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내 20살의 시절이 그대로 멈춰져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리 외쳐봐도 이제 선생님들과동기들은 거기에 없다. 귓가에 돌고 있는 웃음과 목소리들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노을이 붉게 물들며 하루가 진다. 1999년에 멈췄던 내 시간은 이제 지구와 함께 천천히 다시 돌기 시작한다. 나도 이제는 추억을 뒤로 하고, 걸어 가야한다.
늦었지만, 그래도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