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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곳 Apr 24. 2025

3.3 카지노 쿠폰 삼대를 만들 수는 없다

어머니는 나이 서른에 남편을 잃었다. 내가 여덟 살, 그러니까 45년 전 일이다. ‘경단녀’에 학력이 높지 않았던 어머니는 야쿠르트 배달을 시작했다.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니, 최적의 선택이었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종일, 휴일도 없이 걸어서 배달했고, 젊은 나이부터 약을 달고 살았다. 좀 커서야 알았다. 배달 노동자는 쉴 곳이 따로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도시락을 포장마차와 문방구를 전전하며 게 눈 감추듯 드셨다.


서른 살의 나는 학습지 방문교사 일을 했다. 구역은 학구열 높기로 유명했던 일산이었다. 나도 일한 만큼 벌었다. 평일 어느 날은 밤 10시까지, 물론 토요일에도 일했다. 이동 수단인 자전거가 빙판에 미끄러져 무릎이 깨져도, 달려야 했다. 비가 오면 아파트 단지 관리소 처마 밑에서, 날이 좋으면 공원 벤치에서 한숨 돌렸다. 그럴 때마다 내 맘을 편히 쉴 곳이 간절했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와 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였다. 우리의 공통점은 쉴 곳이 없던 것 말고도 많았다. 주말에도 일했지만 초과수당 받은 적 없고, 주휴수당이 없었고 연차휴가가 없었다. 고용보험 가입이 안 됐으니 실업급여도 타지 못했다. 어머니가 40년 가까이 한 일을 그만두면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더라도 정직원으로 취직할 걸 그랬다” 배달일은 어머니에게 관절염만 주고 퇴직금은 10원도 주지 않았으니까. 역시나 나도 퇴직금은 받지 못했다.


‘가짜 3.3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문제를 함축적으로 담은 이름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엄연히 사용자 통제를 받으며 일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인데, 개인사업자처럼 독립돼 일한다고 3.3% 세율을 원천징수하는 사업소득자로 분류된다. 그러다 보니 노동법,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안전망과 법 테두리 밖에 있다.


그 테두리 밖에 있는 인원은 얼마나 될까.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 비임금노동자는 대략 80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국세청 집계에 따르면, 비임금노동자는 847만명이고, 이들 중 835만명은 사업자 등록증이 없다. 비임금노동자 대다수가 노동법상 노동자이지만 자영업자로 위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노동자의 말할 권리’조차 빼앗긴다. 용기 내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회사에 처우개선을 요구하면, 회사는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다’ ‘불법 노조 만날 이유 없다’ 며 교섭을 거부하기 일쑤다. 특수고용직에게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먼 나라 이야기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법원에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내고 노동자임을 인정받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 대리운전 기사, 방송 연기자, 학습지 교사가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했다. 대법원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나마 법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으며 노조의 보호를 받는 특수고용직노동자는 5만여 명 정도다.


판결이 이어지는 만큼,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법 개정을 요구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들의 활동이 여론을 움직였고, 야당 의원들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발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내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3월 6일 노란봉투법이 재발의됐다. 이번 개정안은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보장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앞서 국회 통과한 개정안보다 더 진전된 조항을 담은 셈이다. 정권이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를 부정하고 짓밟았던 처참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 ‘노동약자 보호’가 아니라, ‘노조법 2·3조 개정’이 필요하다. 다양한 이름표를 붙이는 차별이 아니라, ‘노동자’라 부르는 법 제도 개정이 절실하다. 광장에서 “나는 프리랜서다” “나는 플랫폼 노동을 한다” 말하던 키세스 청년들. 이들에게까지 3.3노동자가 삼대째 대물림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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