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병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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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 Feb 13. 2025

어떤 습관 - 2

병상일기 #003

(1부에서 이어짐)


보통의 아홉 살 남자아이가 으레 그러하듯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나 죽겠다, 죽어 볼래? 를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도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고, 그러니까 카지노 게임가 죽었다는 사실이 장차 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영문도 모른 채 멍, 하니 입을 벌리고 앉아 있다 가족들이 오열하기에 따라 울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으므로.


제단 앞에 놓인 카지노 게임의 사진을 보며 막연히, 저 뒤에서 곧 카지노 게임가 장막을 치우며 짜잔, 등장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잠깐 했었다는 기억이다. 그래도 하관 때는 정말이지 목놓아 울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으므로. 그건 본능적인 의무감이었다.


이제 카지노 게임를 볼 수 없다는 것을, 내 삶에 더는 카지노 게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히려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돌아온 일상에서 친구들이 건넨 괜찮아? 가 힘없이 내 앞에 툭 떨어졌을 때 나는 직감했다. 이제 너희들과 다른 인간이야. 편모 가정은 손 들라던 선생님의 말에 눈치 보며 자는 척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을 때, 나는 카지노 게임가 나를 떠났음을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한바탕 해일이 지나간 자리에 한 가지 생각이 남아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카지노 게임의 최악을 생각했더라면.







아뿔싸.


이를 테면 그런 느낌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던데. 카지노 게임 역시 죽는다는 생각을 왜 하지 않은 걸까. 그리고 멍청하게도 행복해 보이면 안 되는, 특수한 신분을 망각한 채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던 걸까. 암울함이 스멀스멀 삶을 잠식하던 순간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죄의식, 까지는 아니지만 스스로 어찌해 볼 수가 없는 처치 곤란의 후회이자, 미련이었다.


억울했다. 누구에게나 당연해 보이는 엄마와 카지노 게임, 형제, 그리고 그들과 누리는 행복. 어째서 나만은 이 작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지? 어떻게 잠깐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 거야? 질문은 쌓여 갔지만 답은 얻지 못했다. 유난스럽던 나의 질문 공세에 늘 차분히 설명해 주던 카지노 게임는 없었으니까. 엄마는 바빠 보였다. 나보다 슬퍼해야 하기에 바빴고, 그럼에도 계속 살아야 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그 모든 질문들을 서랍 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감내해야만 했다. 나는 질문하는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더 치열하게, 더 철저하게 최악을 상상하는 것. 즐거워 보이면 안 된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웃으면 안 돼, 의심받는다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엄마의 신발을 보면 거의 기절을 했다. 부리나케 달려가 신발을 가지런히 놓은 후에 생사 확인. 뜬금없이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양말이 다 젖도록 땀이 났다. 받자마자 생사 확인. 가끔 친구들과 웃고 떠들기라도 할 참이면 거짓말처럼 몸이 신호를 보냈다. 출렁. 아랫배가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뒷골이 뻐근해져 왔다. 누군가 속삭인다. 지금 이래도 돼?


그렇게 몇 번인가 교복을 바꿔 입고, 군복을 입고, 또 학사모를 쓰는 동안 나는 완전한 환자가 되어 있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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