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초단편 옴니버스 소설집 <사랑은 이상하고 네 번째 소설
송희의 집에는 가구가 별로 없었지만 조명이 많았다. 노란 조명 덕에 집은 휑하고 따뜻했다. 세 시간 동안 자신을 그 집 앞에 붙드느라 지친 한나가 소파에서 쉬는 동안, 송희는 물 대신 얼음 위에 싱글몰트 위스키를 부었다. 카지노 게임 송희에게 자신의 어떤 모습을 들킨 것만 같았고, 그래서인지 송희가 오래 알던 친구 같았다.
위스키를 붓는 송희를 멀거니 지켜보던 한나가 물었다. 그런데요. 왜 그러셨어요? 한나의 질문에 송희가 선선히 답했다. 번호요? 나, 가끔 그래. 이름이나 번호 같은 거 가짜로 말해요. 이름도요? 직업이나 나이를 속이기도 하고. 왜요? 한나의 질문을 송희는 질문으로 받았다. 그, 이름이 뭐라고 했지, 언니는? 한나요. 그래, 한나 언니는 다른 사람이고 싶은 적 없었어요? 한나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고 싶은 적이 있었나? 아니, 언제나 다른 사람이고 싶었다. 오늘도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있죠. 한나가 대답하자 송희가 무심히 말했다. 그럼 그냥 다른 사람인 척해봐요. 어떻게요? 언니, 이름이 뭐예요? 한나요. 아니, 진짜 이름 말고 되고 싶은 이름 아무거나. 음, 안젤라요. 김안젤라. 한나는 오래전 친구들과 지은 이름을 댔다. 직업은? 아, 저는 법원에서. 아니, 진짜 말고. 송희가 언더록잔을 내밀며 말했다. 한나는 그제야 이 게임의 룰을 파악했다. 한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벽에 붙은 인도 영화 포스터를 보고 말했다. 어, 저는 댄서인데요. 발리우드 댄서요. 그제까지 미소만 띄고 있던 송희가 하하 크게 웃었다. 송희가 웃자 한나는 왜인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우쭐해졌다. 언니, 발리우드 댄서라는 게 따로 있어요? 잘 몰라요. 잘 모르거나 바로 보여달라고 할 만한 흥미로운 거짓말은 피하는 게 좋지 않나. 지금 당장 춤을 춰보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거짓말이 아홉 개면, 진실 하나 정도는 섞어주기! 집에는 둘뿐이었는데 송희는 비밀을 전해주듯 상체를 기울여 한나의 귀에 속닥거렸다. 덕분에 한나의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한나는 그런 심장의 두근거림은 싫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나는 언더록잔을 원샷했다.
둘은 그날 밤늦게까지 거짓말게임을 했다. 카지노 게임 뭄바이에서 태어나서 부모님과 함께 세계를 떠돌다가 한국에 정착한 발리우드 댄서, 김안젤라가 되었다. 송희는 국립우주센터에서 일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외계인을 믿는 게 허황된 거라고 하지만, 내 생각엔 이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더 우스운 일이에요. 송희는 외계인보다 무서운 건 국립우주센터에 견학을 온 초등학생들이라고 말했고, 핼러윈이면 외계인 탈을 쓰고 그런 초등학생들을 놀래키는 재미가 쏠쏠하다고도 했다. 송희가 하는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실감 났다. 진짜예요? 한나가 감탄할 때마다 송희는 ‘글쎄’라고 말하며 한나의 등을 가볍게 쳤다. 카지노 게임 막차가 끊기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소파에서 일어났다. 근데 송희씨 이름은 왜 그대로 써요? 한나가 현관에서 신발 뒤축을 고쳐 신으며 묻자, 송희가 말했다. 언니, 김송희라는 이름은 진짜 같아?
카지노 게임 송희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모르는 사람 결혼식장에 가서 박수를 치고 밥을 얻어먹었고, 모르는 동네에 가서 집을 살 것처럼 부동산도 둘러봤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둘은 무슨 사이냐고 묻자 송희가 씨익 웃으며 한나의 팔짱을 꼈다. 공인중개사가 얼굴을 붉히며 다른 곳을 쳐다보자 송희는 웃기지 않냐는 듯 한나에게 눈짓을 했다. 카지노 게임 자신의 얼굴이 더 타오르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였다. 송희는 언제나 아이디어가 넘쳤고,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했다. 둘은 구민센터에서 ‘삶의 한가운데’ 니나역 공개 오디션도 봤다. 비록 결혼식장에서 초조한 채로 밥을 먹다가 체하고, 오디션에서 한 마디 대사를 읽은 후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지만, 카지노 게임 그래도 좋았다. 송희랑 같이 있으면 카지노 게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김안젤라가.
어느 날 송희가 카톡에 답을 하지 않았다. 송희는 가끔 그러곤 했으므로 카지노 게임 기다렸다. 그러나 다음날 카톡을 탈퇴했는지 송희의 아이디는 알 수 없음으로 변했고, 한나가 송희에게 전화하자 없는 번호라는 안내만 나왔다. 카지노 게임 퇴근 후에 그 집 앞에서 둘이 처음 봤을 때처럼 오래 기다렸다. 이번엔 세 시간이 넘게, 한나가 첫날 그 집을 떠났던 새벽까지. 기다리면서 카지노 게임 그녀가 아는 모든 키워드를 털어 송희에 대해 검색했다. 전남편이 자신을 스토킹했던 것처럼. 그는 아는 게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건 아는 것이라 습관처럼 말했다. 애초에 카지노 게임 송희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지 못했으므로, 아무리 검색해도 송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전남편의 말에 따르면 카지노 게임 송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므로, 그건 사랑이라 볼 수 없었다. 사랑? 카지노 게임 이 끝없이 이어지는 걱정과 원망이 사랑인지 궁금했다. 며칠 후 다시 송희집을 찾았을 때 거기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전에 살던 사람은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요? 한나의 질문에 남자는 모른다고 답하더니 강박적으로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아홉 번 반복했다.
송희가 없는데도 한나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카지노 게임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경비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고, 점심으로 육회비빔밥집에 갔다. 판사 나오라고 소리 지르는 민원인 앞에서 쩔쩔맸고, 퇴근 후에는 회색빛이 되어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거짓말 아홉에 진실 하나는 섞는다고 했는데, 어떤 게 진실이었을까? 카지노 게임 자신의 어깨에 기대던 송희의 긴 머리칼이 진실이었기를, 그녀의 목덜미에서 좋은 향이 난다고 하던 말이 진실이었기를 기도했다.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던 어느날, 우체국에서 전화가 왔다. 김안젤라님 맞죠? 우체부가 물었다. 카지노 게임 조퇴서를 내고 등기를 받기 위해 집으로 뛰어갔다. 국립우주센터가 그려진 기념 엽서 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김안젤라에게.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당분간 지구로 돌아갈 수 없어. 김송희가.”
카지노 게임 송희의 황당한 거짓말에 말을 잃었지만 곧 웃음이 났다. 그녀가 상상했던 것처럼 송희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과연 송희다운 거짓말이었다. 아니, 과연 거짓말일까?
카지노 게임 송희의 엽서를 사무실 그녀의 자리에 붙여두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소리를 지르거나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고함을 지르는 민원인을 만날 때면, 부적처럼 엽서를 만지작거렸다. 그럴 때면 민원인의 눈을 마주볼 수도 있었다. 카지노 게임 언젠가 송희가 지구로 돌아오면, 김안젤라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뭄바이에서 태어나서 부모님과 함께 세계를 떠돌다가 한국에 정착한 발리우드 댄서, 김안젤라.
카지노 게임 퇴근 후에 정기적으로 발리우드 댄스를 배우러 갔다. 외향인 속에서 카지노 게임 기가 쏙 빨렸지만, 춤은 의외로 곧잘 따라 할 만 했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동작은 과감하게 할 것. 카지노 게임 춤을 추며 몸을 과장되게 부풀렸고, 손을 하늘 끝까지 쭉 뻗었다. 발리우드 댄스는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대신 오분 내내 춤을 추는 장르였다. 카지노 게임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주말에는 힌디어 학원에 가서 더듬더듬 말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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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이상하고는 이상한 사랑에 대한 퀴어 초단편 옴니버스 소설집입니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브런치를 통해 공개합니다. <사랑은 이상하고는 소설 배달 서비스 <주간 정만춘 Season1으로 2024년 여름, 연재했었던 콘텐츠입니다. <주간 정만춘은 새로운 장르로 지금도 연재 중이니 신청을 원하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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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요. 사랑은 다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요.
이상해 보이지만 듣고 보면 또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변명. 자세히 보아야 멀쩡하고, 오래 보아야 이해가 되는 사람들에 대한 옴니버스 초단편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