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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evoix Apr 10. 2025

예술을 닮은 위계, 건축을 입은 권력

리움미술관



서울 이태원의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오르다 보면 거대한 매스와 볼륨감을 뽐내는 리움미술관이 눈앞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리움미술관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다. 마치 도심 한가운데에 세워진 하나의 성채처럼 자본과 문화, 그리고 건축이 만들어낸 권위의 형상이자 풍경이다. 그래서 미술관에 '들어갔다'기보다는 어쩌면 '오르며 진입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입구를 향해 걷는 동안의 그 짧은 오르막은 이미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며 그 작은 경사는 건축이 건네는 첫 번째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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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도시 내 위계와 문화 권력의 시각화


리움미술관은 단순한 전시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공간은 자본이 어떻게 문화를 생산하고, 그것을 통해 도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드러내는지를 가장 정제된 방식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대표되는 삼성가의 문화 자본은 단순한 소유를 넘어 ‘기획된 권력의 시각화’를 실현한다. 마치 근대 유럽의 귀족들이 미술관과 박물관을 통해 계급의 정당성을 구성했던 것처럼 리움은 한국 사회의 자본 권력이 스스로를 문화적 권위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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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입지는 이 상징성을 더욱 강화한다. 한남동, 그것도 고급 저택들과 대사관저, 외국인학교가 밀집한 고지대에 위치한 리움은 도시에서의 위계를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이 지역은 원래부터 소수의 권력자와 외교 사절들이 점유한 공간으로 도시 전체에서 가장 배타적인 성격을 띠는 곳이다. 리움은 이 지형적 위계 속에 절묘하게 들어서며 건축물 그 자체로 ‘문화 권력의 요새’를 구현한다. 방문자는 리움을 경험하는 동시에, 이 공간을 소유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열린 문화공간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배반하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브랜드 가치를 더 높이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삼성이 건축가 세 명(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을 동시에 기용했다는 사실은 문화적 권력의 의도된 과시다. 각각의 건물은 다른 성격의 미술을 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일관된 위엄을 구성한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질서와 자유가 교차되는 이 공간은 ‘삼성’이라는 집단이 가진 다양한 얼굴을 은유한다. 그 복합성이야말로 문화 권력의 정교한 전략이다.리움은 단순히 미술품을 전시하는 장소가 아니라 자본이 문화를 통해 어떻게 자신을 정당화하고 도시내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키는지를 체현하는 상징적 구조로서, 리움은 건축적으로 ‘아름답고 유려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도시사회학적으로는 ‘위계와 권력을 재현하고 정당화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02 도시 카지노 게임의 소비화와 리움


리움은 원래부터 권위적인 미술관으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소비의 문화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사례는 SNS를 중심으로 한 이미지 소비다. 리움의 내부 공간은 미학적으로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다. 재료의 질감, 빛의 흐름, 건축적 동선은 방문자에게 감각적인 충격을 안겨준다. 이는 단지 전시물 감상이라는 목적을 넘어서 ‘그 공간 안에 있는 나’를 이미지로 남기고 싶게 만드는 구조다.리움을 방문하는 행위는 더 이상 순수한 미술 감상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내가 어떤 감각을 가진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상징 행위가 된다. 도시는 더 이상 물리적 카지노 게임이 아니라 경험을 소비하는 무대가 된다. 이 맥락에서 리움은 ‘고급스러운 경험의 패키지’를 제공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고급 브랜드 매장처럼 리움의 전시를 소비하는 행위는 개인의 문화적 자본을 축적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미술관 내부의 굿즈 샵이나 북카페 공간은 더 이상 부수적 공간이 아니라 핵심적인 소비 지점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 공간들에서는 예술품이 아닌 ‘예술의 분위기’를 담은 상품들이 판매된다. 상품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담은 파편들로 방문객은 이 파편을 구매함으로써 공간의 일부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이는 예술을 직접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다수의 대중이 선택하는 ‘접근 가능한 예술 소비’의 방식이며, 리움은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도시사회학적으로 보면 이는 도시 문화의 소비화 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시 공간은 더 이상 공공성과 기능 중심으로 조직되지 않고 철저하게 브랜드화된 ‘체험의 무대’로 작동한다. 그리고 리움은 이 흐름의 최첨단에 있는 사례다. 도시가 점점 더 이미지 중심적으로 소비되고, 문화는 브랜드화되고, 공간은 경험 상품이 되는 현실 속에서 리움은 예술적 권위와 상업적 감각이 정교하게 결합된 하이브리드 공간이다.



03 건축을 통한 소외의 구조- 리움이라는 '배제의 건축'


리움미술관의 건축은 겉보기에는 세계적 거장들이 설계한 미술공간으로서의 ‘예술성’에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그 공간을 직접 걸어보고, 구조와 동선, 재료, 배치 등을 체감하면 그것이 단순히 예술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감각, 계층, 태도를 가진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정서적으로 열려 있는 공간임을 인지하게 된다. 이는 사회학적으로 ‘공간을 통한 배제의 전략’이라 부를 수 있다.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전통미술관(M1)은붉은 벽돌과 장중한 계단, 대칭적 구성이 특징이다. 이 건축은 고대 신전이나 유럽의 성소를 연상케 한다. 높은 천장, 깊은 홀, 장엄한 외피는 ‘들어오는 자의 자격’을 묻는다. 마치 과거의 권력 공간처럼 미술관은 ‘누가 이 공간에 걸맞은 사람인가’를 암묵적으로 질문한다. 이는 예술 감상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방문자에게 일종의 ‘몸가짐’을 요구하는 구조다. 단정하게, 조용하게, 문화적으로 성숙한 태도를 취하라는 무언의 압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리움을 ‘편안한 공간’이 아닌 ‘검열받는 공간’으로 느끼게 만든다.



장 누벨이 설계한 현대미술관(M2)은반대로 어둡고 매끄러운 흑색 볼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과는 대조적인 재질과 구성은현대미술 특유의 추상성과 폐쇄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간 역시 ‘누구에게나 열린’ 분위기보다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각적 감각을 가진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준다. 자연광이 배제된 전시 공간은 시각 정보에 대한 통제를 철저히 수행하며 ‘공간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온다. 이는 도시공간에서 공공건축이 추구해야 할 ‘접근성’, ‘열림’과는 거리가 있다.



여기에 렘 콜하스(OMA)가 설계한 교육동・어린이문화원은내부적으로 가장 복합적인 기능과 동선을 가진 공간이다. 회색 콘크리트와 유리 커튼월의 대비, 비정형 계단, 극도로 계산된 개방성은 도시 속 ‘문화적 상징 자본’의 구축 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건축 언어 역시 자본과 문화에 익숙한 사람에게만 익숙한 방식이다. 평면적으로는 개방되어 있어도 심리적으로는 특정한 문화 감각을 가진 이들에게만 '소속감'을 제공하는 구조다.이러한 건축의 위계성과 배타성은 도시사회학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 카지노 게임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


도시공간 속에서 진정한 공공성은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의미 있게 접근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 그러나 리움은 ‘열린 사적 공간’이라는 특수한 형태로 열려 있으되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존재한다. 이는 일종의 ‘소프트 엘리트주의’를 내포한다. 물리적으로는 개방되어 있지만 사회문화적 감각이 일정 수준 이상이 아니면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구조. 결국, 이 건축은 배제를 부드럽게 설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04 도시재생이 아닌 '엘리트적 카지노 게임의 재생'- 자본의 문화적 전략


리움미술관은 흔히 우리가 도시재생에서 이야기하는 ‘노후 공간의 회복’이나 ‘공공성 강화’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고급 공간으로 기획되었고 그 고급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대 흐름에 맞게 세련되게 ‘업데이트’되어온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리움의 재개관은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2021년 리움은 약 4년간의 긴 휴관을 마치고 새롭게 문을 열었다. 리노베이션은 단지 물리적 개보수를 넘어서 공간의 이미지 자체를 리브랜딩 하는 데 집중됐다. 전통미술관 내부의 재조명, 현대미술관의 구성 정리, 신규 전시 콘텐츠 구성은 물론이고, 디자인 굿즈를 강화한 아트숍과 커뮤니티 공간을 재정비했다.



이 모든 변화는 도시 내 문화카지노 게임이 어떻게 ‘경험 상품’으로 탈바꿈하는지를 보여준다.이는 도시재생의 또 다른 방식—‘엘리트 카지노 게임의 리노베이션’—이라 볼 수 있다.성수, 을지로, 망미동처럼 기존의 낙후 카지노 게임을 청년 창업과 로컬 브랜드가 바꾸는 도시재생의 사례와 달리, 리움은 애초에 하이엔드 문화 브랜드로 출발해 자신만의 세계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생되었다.이는 공공과 로컬, 시민의 참여가 핵심인 도시재생과는 대척점에 있는 모델이다.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이 만든 사적 미술관은 국가보다도 더 안정적이고 강력한 문화 브랜딩 주체로 기능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정치와 행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반면, 리움은 자본의 독립성과 문화의 전략적 기획이라는 장점으로 도시 내 문화지도에 강력한 좌표를 찍는다. 마치 기업이 도시를 마케팅하듯, 리움은 ‘삼성이 선택한 문화 도시 서울’을 전시하고 있다.도시의 문화시설이 단지 예술 전시의 기능만이 아니라, 도시의 위상을 구성하고 자본의 정체성을 미학적으로 번역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리움은 서울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리움은 도시재생을 하지 않지만 도시의 문화자본 지형을 가장 철저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05 일상 속 소비와 문화 체험의 위계화- 리움은 어떻게 ‘문화적 라이프스타일’을 규범화하는가



리움미술관을 찾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전시를 둘러본 뒤, 미술관 굿즈숍에 들러 감각적으로 디자인된 아트상품을 구매하고, 흰 벽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용산 거리로 나가는 여정. 전시는 관람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일상과 연결되는 라이프스타일로 재구성된다. 리움은 단순히 ‘예술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예술적 감각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행위다.부르디외는『구별 짓기』에서 상류계층이 문화 소비를 통해 스스로를 구별 짓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적 취향은 개인의 자연스러운 감각이 아니라 계급적 학습의 결과”라는 그의 주장처럼 리움의 관람 방식은 예술적 ‘앎’을 전제하며 이 앎은 계급적으로 축적된 문화자본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리움의 전시는 대체로 현대미술 혹은 전통미술의 고전적 맥락을 유지한다. 방문객은 전시의 문법을 해석하고, 도슨트 없이도 감상할 수 있어야 하며, 카지노 게임 안의 결을 읽는 방식까지도 암묵적으로 요구받는다.또한 리움의 전시 구성은 이른바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 미학과 연결된다. 조각 정원, 백색 갤러리, 계단 오브제 등은 감상보다 ‘기록하기 위한 미적 구성’처럼 작동한다. 여기서 “감상”과 “기록” 사이의 긴장감은 결국 현대의 예술 소비가 '보는 행위'에서 '보여주는 행위'로 전환되었음을 드러낸다.이 점에서 리움은 오늘날 도시인이 수행하는 문화적 소비 패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도시의 고급스러운 소비 감각은 이곳에서 미술이라는 ‘고급문화’를 매개로 구체화되며, 시민의 일상에 ‘예술적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규범을 심는다. 리움은 특정 계층의 감각을 ‘도시적 미감’으로 확장시키며, 예술을 통해 계급적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도시적 장치로 기능한다.



06 리움과 도시 불균형- 도심 문화시설의 자본 편중과 지역 문화 생태계의 이중구조


리움미술관은 삼성이라는 민간자본이 만든 미술관이며 국가의 재정이나 공공계획에 따른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이 공간은 ‘도시의 대표 문화시설’로 여겨진다. 용산이라는 입지 자체도 이러한 위치를 더욱 부각한다. 이곳은 서울에서도 고급 주거지와 글로벌 자본이 집중된 지역이며 한남동·이태원·삼각지로 이어지는 문화지리적 맥락에서 ‘상징 자본의 거점’ 역할을 수행한다.도시사회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 도시 카지노 게임을 점유하고 재편하는 과정을 “카지노 게임의 자본화”라고 표현했다. 리움은 이 개념의 전형적 사례다. 문화시설이 자본에 의해 설계되고 운영될 때, 그것은 도시의 ‘문화 중심’으로 작동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접근 가능한 공공문화’를 축소시킨다. 이는 민간 중심의 도시 문화정책이 공공성을 잃는 대표적 패턴이다.



예술생태계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움은 상징자본이 가장 응축된 문화공간이지만 이와 병렬되는 중소 규모의 대안적 예술공간 예를 들어, 독립 큐레이터 전시, 지역 커뮤니티 아트, 시민참여형 공간은 자본·입지·운영 인프라 등에서 큰 격차를 느낀다. 그 결과, 서울은 ‘중심의 고도화와 주변의 축소화’라는 이중적 문화생태계를 갖게 된다.또한 리움의 존재는 문화의 젠트리피케이션과도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문화가 도심 자산으로 작동하면서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는 흐려지고 ‘누구에게 적합한 예술 공간인가’만 남는다. 이는 공공성의 문제이며 리움이 도시 공간의 위계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묻는 비판적 질문이기도 하다.



07 리움은 공공적인가?- 도시 속 사적 미술관의 역할과 한계


마지막으로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리움은 과연 공공적인가? 겉보기에 리움은 시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으며특별전을 제외한 입장료도 대부분 무료다. 그러나 ‘열려 있다’는 것은 곧바로 ‘공공적이다’라는 뜻이 아니다. 진정한 공공성이란 물리적 접근성을 넘어서 문화적 다양성, 계층적 포용성, 민주적 운영, 지속가능한 시민 참여를 포함해야 한다.리움의 운영 주체는 삼성문화재단이며 이는 사적 자본이 도시 문화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외형상 ‘개방적’ 일 수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자본의 브랜딩 전략과 위계적 문화 체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도시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공공성의 핵심을 "타인과의 불완전한 접촉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으로 봤다. 리움은 과연 이런 접촉과 긴장을 허용하는가? 아니면 정제된 감각, 규범화된 취향, 고급화된 관람 문법만을 허용하는가?도시 속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마주하고, 충돌하고, 함께 해석하는 장소여야 한다. 리움은 그런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을까?



08 문화시설의 미래는 어떻게 열릴 수 있을까?- 리움 이후, 도시 공간의 공공성과 예술의 사회성에 대하여


리움미술관은 단일 공간으로서 분명 아름답고, 정교하며, 예술적 감각의 밀도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미술관은 우리 도시 문화가 안고 있는 구조적 질문을 명확히 드러낸다. ‘누가 예술을 기획하고, 누가 그것을 누릴 수 있는가?’, ‘공공문화시설의 기능이 민간 자본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가?’, ‘문화공간은 도시에서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가?’이러한 질문은 단지 리움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도시가 문화시설을 계획하고 배치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요구한다. 도시의 문화카지노 게임이 특정 계층의 자본과 감각을 중심으로 구성될 때, 도시는 점차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는 문화 민주성을 상실하게 된다. 미술관은 ‘작품을 소유하고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가치가 교차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공공성과 사회적 포용력을 중심에 둔 문화카지노 게임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미술관(Stedelijk Museum)은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업 프로그램을 정규 운영에 통합하며 미술관 내 ‘소수자 큐레이션’과 ‘시민 참여형 전시’를 제도화하고 있으며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유휴 산업공간의 재생을 통해 문화공간을 형성함으로써 공공성과 예술성, 도시재생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모델을 제시하며단순히 ‘관람을 위한 건축’이 아니라, 누구나 머무르고 해석할 수 있는 ‘도시적 리듬의 일부’가 된다.



이처럼 카지노 게임은 ‘열려 있음’을 넘어서누구의 언어와 경험이 담길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 권력의 재분배”이며, 하비가 제시한 “카지노 게임의 사회적 정의”에 대한 실천적 대안이기도 하다.리움 역시 향후에는 더 확장된 형태의 프로그램 예를 들어 시민 참여형 전시, 지역 예술가와의 협업,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시선 등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큐레이션으로 나아가야 한다.감각을 설계하는 미술관에서의미를 나누는 광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09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도시의 문화카지노 게임은 단순히 미적 카지노 게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 그리고 시민을 대하는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리움은 감각적으로 완성된 카지노 게임이지만 그것이 시민사회의 다양성과 소통 가능성을 품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우리는 이제 ‘멋진 건축’과 ‘유명한 전시’를 넘어서예술의 민주성, 도시카지노 게임의 포용성, 감각의 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화시설을 상상해야 한다. 예술은 더 이상 자본의 브랜딩이 아니라 도시적 상상력과 공동체적 삶을 연결하는 실천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글, 사진 | citevoix

참고문헌 |

Bourdieu, P. (1984). 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 (R. Nice, Trans.). Harvard University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79)

Harvey, D. (1989).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An enquiry into the origins of cultural change. Blackwell.

Sennett, R. (1977). The fall of public man. Alfred A. Kno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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