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나 포함 주변 선생님들은 이 단어의 뜻을 아무리 들어도 알 수가 없었다. 라벨의 일종인가? '워'라는 글자가 들어갔으니전쟁과 관련된 것일까? 실제 뜻은 전혀 달랐다. 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 그것의 줄임말이었다. 어렴풋이 이해만 하던 개념이었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는 처음 보았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은 서로의 균형을 맞추어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그러나 워라밸은 훨씬 호전적인 느낌이다.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상사들은 '직원들이 놈팽이처럼 놀아버리면 어쩌지?'싶은 우려가 커졌고나 같은 평범한 일개미들은 '워라밸을 지키기 위해 나를 갈아 넣지 않겠어'정도로 납득했다.
교사만큼 워라밸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직장이 어디 있느냐 묻는다면 '사람마다 다르다'는 답을 건네주고 싶다. 밸런스를 충실히 지켜 적정한 선에서 일도 하고 여가 활동을 누리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늘 밸런스 붕괴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면 나는 '저런 사람'에 속했다. 인간 휴롬처럼 스스로를 꾸준하고도 말끔하게 착즙 해내던 나는 끝내 번아웃을 맞았지만 그조차도 각종 자기 계발 서적과 영상을 통해 이겨내려 무던히 애썼다. 얻은 건 착즙하고 남은 과일 찌꺼기뿐이었는데 이것마저 나는 얼굴에 팩으로라도 붙여볼까, 궁리했던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정말 신기하다. 한량처럼 늘어지려면끝도 없이 불량해질 수도 있고 부지런히 해볼라치면 대기업 직원만큼 업무량을 늘릴 수도 있었다. 성향 상 후자에 속카지노 게임. 아주 어린 시절, 엄마에게 '넌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나는 내가 정말 뼛속까지 이기적인 줄 알았다. 사회에 쓸모없는쓰레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무슨 일이든 맡으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 혹시라도 자기밖에 모른다는 포지션에 그림자라도 닿을까 주변 사람들을 정성껏 도왔다. 이렇게 자라난 사람에게 가장 쉬운 일이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덕분에 성실카지노 게임도 부지런히 학교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학부모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때로는 논문을 뒤적거리며 수업 내용과의 연관성을 찾기도 카지노 게임 밤새 휴지심에 종이를 붙여가며 수업 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일천번의 가위질과 풀칠 후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도 카지노 게임 사비를 들여 여러 가지 키트를 구입했다.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인데 자꾸만 돈이 함께 사라진다. '워크'는 확실히 존재했지만 '라이프'가 무엇인지 아리송했다. 정시 퇴근뿐 아니라 조퇴에 연차까지 꼬박꼬박 다 찾아 쓰는 교사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나는 정시 퇴근조차 못카지노 게임 있을까. 얼른 퇴근하라고 쫓아내는 경비 아저씨의 손짓을 피해 가며 수업 자료를 만들다 교실 밖으로 기어나가길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수업은 때론 잘 풀릴 때도 있었고 예상과 달리 엇나가 엉망진창이 될 때도 있었다. 공을 들인 만큼 늘 결과가 잘 나오진 않는다.
나도 워라밸을 사수하는 교사가 되어보고자 올해는 정시 퇴근을 감행했다. 교문 밖을 나서며 업무에 관한 생각은 책덮듯 덮어버렸고, 아이들 생각도 일절 하지 않았다. 몰라. 나는 내 라이프를 지킬 거야. 될 대로 되어라. 나는 월급 받는 직장인이거든. 월요일 아침이 되면 한숨을 크게 내쉬고 돌아오는 토요일을 기다리며 금요일 밤에 치킨을 뜯는 일반적인 직장인의 모습에 젖어들기 시작할 무렵, 의원면직이 떠오른 것이다. 아주 갑자기.
그런데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워라밸이 필요 없지 않을까? 반 아이들을 살펴보면 원하는 놀이를 할 때는 이마에 땀이 주룩 흐르도록, 중간놀이 시간이 끝나고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도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행위 자체가 재미있는데 거기서 무슨 구분을 두어야 할까. 아마 그때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놀아도 된다고 허락했다면 그들은 중간놀이 이후 4교시, 5교시까지도 끊임없이 놀았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 싶은 일을 하면 균형이 필요 없다. 수행카지노 게임 있는 나 자체가 균형점이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마음이 가고 시간이 흐르는데 어떻게 갑자기 라이프를 지키겠다고 그만둘 수가 있지? 워크와 라이프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러고 보면 수업을 준비하는 교재연구는 교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집 가까운 학교에 다니면서도 매번 아침 7시 20분, 1등으로 출근해 모두가 돌아간 7시에 퇴근하기를 즐긴다. 교실에 남아 수업자료를 만들고 PPT를 제작하며 활동지를 인쇄한다. 내 수업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 다음번 수업을 개선한다. 아이들과 칠판 앞에서 호흡하는 순간이 행복하고 설렌다. 집에 돌아가서는 나무젓가락과 휴지심을 모으고, 유튜브를 돌아다니며 수업의 도입부에 쓰면 좋을 영상을 탐색한다. 그렇게 지내온 16년이다. 워라밸의 경계가 모호한생활이었지만 마냥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때때로 행복했고 지속적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재능과 에너지를 교직에 모두 사용했으며 밸런스는 상관없어졌다. 이제 완전히 소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