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일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고 나서 숨을 몰아쉬었다. 만삭이 되어갈수록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이 가빠졌다. 불거진 자궁이 거의 모든 내장 기관을 짓누르고 있었다. 발톱은 언제 깎고 내버려 두었는지 모르겠다. 불러온 배에 허리를 접을 수가 없다. 하필 통돌이 세탁기를 구입한 바람에 빨래를 돌리고 나면 깡충 뛰어서 빨랫감을 꺼내야 했다. 두 손을 허리 뒤로 받치는 포즈가 점점 편해졌다. 상체를 제치고 위를 바라보았다. 천정에 딱 붙어 있는 거실 등을 갈아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불빛이 예전 같지가 않네, 생각할 즈음 한참 동안 느끼지 못했던 생리통 비슷한 통증이 아래에서 솟아올랐다. 임신 기간 동안 별다른 가진통이 없었다. 첫째를 들쳐 매고 아무리 뛰어도 수축 한 번 없었던 내 자궁에 경의를 표한다. 이게 바로 가진통이구나, 그래 오늘 동물원에서 과하게 움직이긴 했지. 쌕쌕거리며 잠든 첫째를 보니 갑자기 속에서 부아가 치민다. 네 놈 때문에 내가 힘들었던 건 둘째치고 임산부 부려 먹는다고 쓸데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아빠가 욕을 먹었어! 눈을 부라리니 또다시 잠잠해졌던 가진통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아래쪽이 상당히 불편하다. 일단 화장실에 가보자.
막달이 되면 자궁은 방광까지 기어이 누르고 만다. 요의가 함께 느껴져 시원찮은 볼일을 본 뒤 휴지로 닦아냈다. 그런데 휴지에 피가 묻어났다. 임신 중 아래쪽에서 피를 본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지금 자궁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거나...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예정이거나.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았다. 이게 바로첫째 출산할 때에도 보지 못했던 ‘이슬’이라는 것이구나. 꼭 생리가 막 시작된 첫날의 분비물처럼 끈적거렸다. 이슬이 비치고 나면 곧 진진통이 시작될 거라는 책 내용을 본 기억이 난다. 철두철미한 계획형인 나는 임신도 이론으로 먼저 익혔다.
지금 시각 새벽 2시. 진진통이 오면 바로 산부인과로 직행해야 한다. 그러면 출산이 이어질 것이고 입원실에 있다가 산후조리원으로... 그러니까 지금 이 집을 나가면 한동안 돌아올 일이 전무하다는 것.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빨래 건조대를 보니 어젯밤 널어둔 빨랫감들이 고스란히 뉘어져 있었다. 부리나케 죄 걷어와 빠른 속도로 개우기 시작했다. 진통이 오기 전에... 진통이 오기 전에... 그리고 아침에 미처 하지 못했던 설거지를 미친 듯이 해치웠다. 진통이 오기 전에... 다음으로 물기 묻은 걸레를 쭈악 짜서 물걸레질을했다. 새벽이라 청소기를 돌릴 순 없으니 가능한 한 선에서 깨끗한 집을 만들고 싶었다. 헉헉대며 걸레질을 마치고 화장실로 뛰쳐 들어가 변기를 닦았다. 변기는 3일만 내버려 두면 붉은 곰팡이가 피었다. 앞으로 집을 며칠을 비울지 몰랐다. 구석구석 변기 솔로 닦고 광냈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불에 덴 듯 튀어나와... 냉장고 청소를 시작했다? 지금 대청소라도 하는 건가? 식재료를 꺼내어 냉장실 선반을 벅벅 닦는 나를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옛날 임산부들은 출산 시 죽을 수도 있으니 아이를 낳기 전, 집을 정갈하게 해 두었다는 속설이 마음 깊이 공감되었다. 지금 나는 영영 이 집에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굴었다. 현관의 신발까지 바르게 정리해 두고 나서야 굳은 승모근이 조금씩 풀어졌다.
만들다 만 흑백 모빌 키트를 정리하다 보니 우지끈! 하는 아픔이 배 전체를 관통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직감했다. 이게 카지노 게임 추천구나. 첫째를 이미 낳았지만 유도분만을 했기에 자연스러운 진진통을 맛보진 못했다. 정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아픔이었다. 다른 산모들은 하늘이 노래진다는데 나는 하얘졌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속 사람들처럼 백색 실명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렇게 아플 수가! 모빌이 손 안에서 구깃해졌다. 진통 자체는 10초 정도라고 하는데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10초가 뭐야, 10년이 속절없이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다. 한 차례 번개가 치고 나서 조용해지듯 진통도 잠잠해졌다. 대략 20분 뒤에 다시 카지노 게임 추천 올 것이다. 잘 모르지만 책에서 그렇다고 했다. 서둘러 남편을 깨웠다.
“오빠, 카지노 게임 추천이야. 일어나 어서.”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는 사람들처럼 겉옷을 빠르게 입고 친정 부모님께 전화드려 상황을 알렸다. 다행히 가까이 살고 계셔 바로 집으로 와주실 수 있었다. 그 사이 진통은 한번 더 배를 후려쳤다. 차마 남편의 머리채를 잡진 못하고 입고 있던 겉옷 주머니를 와구 쥐어댔다. 손가락이 끊어질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참자. 또다시 평온해졌다. 언제 그렇게 아팠냐는 듯이. 1분 전, 짐승처럼 눈이 뒤집혔던 나는 다시세상 논리 정연한 사람이 되어 친정 부모님께 추후 할 일을 말씀드리고(첫째의 어린이집 등원 등) 남편과 서둘러 나왔다. 진료받던 산부인과도 집에서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일단 차는 타야 했다. 신호 대기 중 또 한 번의 진통이 걸렸다.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찢을 듯이 몸부림치며 뒤틀었다. 남편은 성난 황소를 눈앞에서 본 것처럼 당황하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쭉 가라 말했다. 당신 머리채는 잡지 않을 터이니 걱정 말라는 배려 섞인 말까지 전하였다.
간신히 산부인과에 도착해 입원수속을 마치고 환자복으로 빠르게 갈아입었다. 간호사는 침대에 누운 내게 다가와 내진을 했다. 질 안쪽으로 손가락을 넣어 휘젓는 행위가 수치스러울 수도 있으나 지금은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자궁문이 3cm 열렸네요. 무통카지노 게임 추천 맞을 수 있겠어요.”
너무 열리지 않아도, 혹은 너무 열려도 무통주사를 맞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딱 적당히 자궁문이 열렸을 때 병원에 도착해 바로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무통천국이었다. 첫째를 낳을 때 기억엔 척추쯤에맞았던 것 같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 추천 워낙 심해 몸의 어디에 주사 바늘을 꽂았는지 느껴지지도 않았다. 시간이 약간 흐르고 주사약이 몸을 한차례 돌고 나자...
순식간이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사라졌다. 배가 딱딱해지는 수축은 계속해서 일어났으나 정작 내게 느껴지는 고통은 없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가족분만실에 달린 TV를 보며 남편과 함께 깔깔 웃을 수 있는 상태였다. 당시 화면에서는 라디오 스타가 재방송으로 방영되고 있었고, 게스트로 봉만대 감독이 나왔다. 그는 영화 설국열차를 패러디해 보겠다며 떡국열차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화면 속 게스트도, 화면 밖의 우리도 모두가 웃었다. 그러던 중 간호사와 의사가 들어와 말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 힘주시면 됩니다.”
에? 지금요? 저 지금 떡국열차 이야기 들으면서 웃고 카지노 게임 추천는데요? 힘주라고요?무통주사를 맞고 나면 오히려 힘주는 게 어색해진다. 아프질 않으니 어디에 힘을 주어야 할지 막막해지는 것이다. 대충 이쯤이 아랫배이겠거니, 하며 끙차 해보지만 아직 힘이 부족하단다. 평소 복식호흡을 잘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단련해 온 부위는 복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참을 끙차 해보아도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첫째 때는 간호사가 부른 배를 위에서 누르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그런 수모를 겪을 순 없어 어디에 힘이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힘을 주었더니
“딸입니다. 건강하네요.”
한 마디와 함께 앙칼진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첫째를 낳았을 때에는 진통만 12시간을 해서 그런지 진이 빠지고서러워 엉엉 울었다. 이번엔 빠른 진통! 빠른 무통주사! 빠른 진행! 거침없는 분만으로 큰 고난 없이 출산을 마쳤다. 내 몸에서 막 떨어져 나온 딸은... 전날 밤 라면을 세 개쯤 끓여 먹고 일어난 야구선수 양현종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뻘건 색깔의 양현종은 신생아실로 향하고 나는 남편과 함께 입원실로 향했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훗배앓이!
진통도 오래지 않아 무통주사로 잡혀 좋아했더니만 정작 고통은 출산 후 훨씬 심했다. 열이 급격히 오르고 온몸이 달달 떨리며 배가 아팠다. 살이 닿는 모든 곳이 아려와서 앉아있지도, 누워있지도 못했다. 결국 산모 침대엔 남편이 누워 잠들고 나는 수액 걸이를 잡은 채한참을 입원실 바닥에 서 있었다. 리틀 양현종도, 남편도 모두 싫었다. 몸이 이렇게 아픈 나도 싫었으며 세상이 싫었다. 매일 먹어야 하는 미역국도 싫고 기능성 떨어지는 내 젖도 싫었다. 그냥 모든 것이 밉고 싫고 지긋지긋하고 우주가 한심했다. 첫째를 낳고 나서도 한참을 이렇게 우울해했다. 당시 일기장에 ‘앞날이 캄캄하다. 내 미래는 없다’고 적었었는데... 나의 산후 우울증은 어쩜 이렇게 한결같지.다시 한번 미래가 사라진 것 같았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절망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데 신생아실에서 젖을 먹이라며 전화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