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몇 번인가 선생님께 카지노 쿠폰를 쓰려고 펜을 들어보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아서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일상(제 생각엔)을 카지노 쿠폰지에 써놓는다면 카지노 쿠폰를 다 읽고 난 후 선생님께서 당황하실지도 모르니까요. 이 친구는 고작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카지노 쿠폰를 썼나?라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분명히. 그런데 얼마 전 저에게도 큰일이(이제는 선생님께 카지노 쿠폰를 쓸 수 있을 만큼의) 생겼습니다. 슬픈 일이었습니다. 기르던 카지노 쿠폰가 죽었습니다. 제가 기르는 두 마리 카지노 쿠폰중 갈색 여자 아이 가요. 두 달가량 힘들게 힘들게 고생하다 떠난 거라 어떻게 보면 저에겐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저는 나름의 준비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이 닥치고 나니, 그 상실이라는 것이 드디어 제 손 위에 올려지고 나니, 저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상실이라는 것은 형체를 지니고 있지 않아서 난감하기만 합니다. 무게도 없고,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습니다. 그저 빈자리만 있습니다. 그래서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있었던 것이 사라진 그 공간의 크기를 누구에게도 설명을 못하겠습니다. 나만이 기억하고 있는 냄새를, 촉감을, 그것들이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얼마만큼이었는지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무슨 말이든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카지노 쿠폰를 씁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실이 불러온 슬픔이라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이 자꾸만 제 안에 쌓여만 가고 있습니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여만 가니 그 맨 아래층은 단단하게 굳어버린 화석이 되어버린 듯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상적인 생활은 별 다른 문제없지 잘해나가고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일어나 씻고 출근을 합니다. 회사에선 성실히 일을 하고 동료들과는 웃으며 농담도 합니다. 끼니때가 되면 맛있는 음식도 잘 먹고 종종 친구들과 술도 한잔씩 합니다. 제 일상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성실하고 지루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주변 지인들도 제가 괜찮은 줄 알고 저 조차도 이제는 괜찮다,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이 카지노 쿠폰를 읽고 계실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제가 괜찮은 건 아닐까, 엄살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요 선생님, 사실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제가 특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커다랗고 까맣고 깊은 구덩이에 빠져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니, 상황 자체는 정말 단순합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의 원인과 그것이 불러온 결과도 결코 그렇게 복잡하거나 까다롭지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택시에 올라타 기사님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도착하면 내리면 되는 것처럼요. 누군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라고 물으면 택시 타고 왔어,라고 대답하는 것만큼 쉽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 잠을 자지 못하면 졸리다. 맞으면 아프다. 이런 것처럼요. 상실이 슬픔을 동반한다는 것쯤이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제 상실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입을 떼려고만 하면 말이 통 나오질 않습니다. 괜찮습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그건 거짓말입니다. 말을 하는 저도 대답을 듣는 상대도 그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괜찮지 않습니다. 전혀. 결국 상실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고, 원래 그런 거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 이건 내 문제가 아니구나. 원래 그런 거니까,라고 깨달음인지 포기인지를 해버렸습니다.
앞의 이야기가 조금은 복잡했습니다. 어쩌면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제가 지금 이런 상태다,라고 설명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선생님께 무슨 치료법이나 해결책 같을 걸 바라는 건 아닙니다. 상실로 일어난 제 삶의 일정 부분의 공백은 누군가에게 떠넘기거나 누군가가 채워줄 수 카지노 쿠폰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니까요. 애초에 그런 건 불가능합니다. 대체 불가능성을 상실은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카지노 쿠폰를 쓰고 있는 곳은 작은 거실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집에 와본 적이 없으시니 간단히 설명을 하지면 특색이 없는 거실입니다. 거실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실. 작은 테이블과 그것만큼의 작은 의자, 그것들에 어울리는 작은 스탠드 그리고 책꽂이가 있습니다. 이곳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 필요한 것들은 천천히 채워 넣자 생각했었는데 일 년이 넘게 지내면서 그다지 필요한 게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책도 읽고 간단하게 끼니도 해결하고 종종 노래를 듣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처럼 무언가를 쓰기도 합니다. 이 특색 없는 거실에서 저는 집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테이블 위에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놓여 있습니다. 총 세 권인데 저는 첫 번째 책의 첫 장도 아직 다 읽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꽤나 많이 읽는 편인데도 왜인지 이 책은 잘 읽히지가 않더라고요. 러시아 인물들의 이름이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익숙지 않은 이름들이 너무나 많이 나와서 그런지. 책장을 몇 장 넘기다가도 이 인물이 누구였지? 하면서 자주 앞 쪽으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다 읽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지냅니다. 사실 이렇게 읽지 않은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건 책에게도 미안한 일입니다. 당장 읽지 않을 거라면 정리해서 책장에 꽂아두면 될 일인데. 뭔가 책에게 희망고문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죄책감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게로 전이됩니다. 우스운 일이죠.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게다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다니. 가끔은 꿈에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물론 제가 멋대로 이미지를 만들어 낸 인물들입니다. 이 책엔 삽화가 없으니까요.) 이마를 찌푸리며 '우리는 그런 푸대접을 받을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 가문은 말이지...' 라면서 저를 원망의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합니다. 미안한 건 미안한 일이지만 뭐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읽히지가 않는걸요. 그리고 LAMY만년필이 한 자루 있습니다. 저는 주로 진한 파란색 잉크를 넣고 사용합니다. 지금 선생님께 쓰는 카지노 쿠폰도 이 만년필로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사실 글씨를 쓸 일이 많이 없어서(대부분은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사용하죠) 잉크는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저는 만년필로 글씨를 쓸 때 느낌을 좋아합니다. 표면이 투박한 종이 위에 만년필의 펜촉이 스쳐 지나갈 때 거친 느낌. 그렇다고 만년필을 자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사야 할 식재료의 목록이라던지 주말에 해야 할 집안일을 적는 메모에는 만년필을 사용하진 않습니다. 그럴 땐 눈에 띄는 아무 볼펜이나(제 경우엔 주로 모나미 볼펜입니다) 손에 쥐고 쓱 휘갈겨 쓰면 됩니다. 반대로 만년필로 직접 글씨를 쓰게 되면 스스로도 조금은 차분해집니다. 글씨를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커피잔이 놓여 있습니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가 절반 정도 남아 있습니다. 폴란드 여행 중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사온 잔인데 여행 후 지인을 한동안 만나지 못해서 그냥 제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의 물건은 대충 이 정도입니다. 테이블의 왼쪽 벽에는 커다란 창이 있고 커튼은 없습니다. 커튼도 달아야지 생각은 했지만 지내다 보니 별로 필요하진 않더라고요. 설명이 길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역시나 심플한 거실입니다. 사람이 지내고 있다는 흔적만 겨우 찾아낼 만한 공간. 생활인의 거실이라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린 사람이 깜빡(아니면 일부러) 놓고 간 물건들이 쓸쓸히 남아있는 것 같은. 제 집의 다른 공간들은 거실보다 더 특색이 없습니다. 특색이 없는 침실, 특색이 없는 화장실, 특색이 없는 부엌. 그래서 그곳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할까 합니다. 이미 카지노 쿠폰가 많이 길어져 버렸고 선생님께서 관심을 가질만한 특별한 공간들은 아니니까요.
카지노 쿠폰가제곁을떠난뒤에저는"처음"에대해서곰곰이생각해봤습니다. 아니기억을꺼내보려했다는것이더맞을지모르겠습니다. 카지노 쿠폰와처음만났던그첫순간말이에요. 분명히어떤한순간으로이미일어난일인데도희미하지만차곡차곡쌓여간시간때문인지도무지기억이나질않았습니다. 이렇게말하니거짓말같겠지만그첫순간이무척이나특별했다는느낌만덩그러니남아있고나머지는기억의정경저멀리사라져버린겁니다. 마치바람이빠져버린풍선처럼요. 선생님, 망각이인간에겐축복이라는누간가의말이저는참원망스러웠습니다. 상실을극복해보고자마지막모습을처음모습으로덮어보려했던노력이헛수고가된거죠. 카지노 쿠폰의마지막모습은... 이렇게말하긴뭣하지만기억하기싫은모습이었습니다. 죽음을앞둔생명체는지쳐있는육체와그것에서벗어나려는영혼이반씩섞여있는모습입니다. 존재가희미해지고투명해져갑니다. 들숨과날숨의간격이조금씩멀어집니다. 움직임이여려지고풍성했던솜사탕이작은설탕덩어리로쪼그라드는것처럼볼품없이작아집니다. 거기에서저는인생에서백퍼센트인건죽음밖에없구나,라고생각하게됐습니다. 인생에있어서백퍼센트인건죽음뿐이다. 이렇게혼잣말로중얼거리다보니정말맞는말같았습니다. 확신이생긴거죠. 선생님. 선생님은인생에서죽음말고백퍼센인걸알고계시나요? 전아무리머리를굴려골똘히생각을해봐도딱히떠오르는게없습니다. 사람의감정도절대백퍼센일수없습니다. 가령자식에대한부모의사랑도백퍼센트라고주장할수없는게요즘세상이니까요. 뉴턴이만유인력을발견했다고하는사과나무에서떨어진사과는하나의현상일뿐입니다. 우주의어느먼곳에서는떨어진사과가다시떠올라나뭇가지에달라붙을지도모르니까요. 코끼리를보고코끼리입니다,라고말하는것도단지사람이만들어낸선언일뿐입니다. 그리니까현상이라던지선언이라던지그런건결국작은틈이있기마련입니다. 그작은틈으로무언가비집고들어오기만하면종국엔그존재자체를부정당하고맙니다. 세상의대부분의것들은이런허점이있습니다. 그런것들은(그러니까스스로백퍼센트를주장할수없는것들은) 피하려고마음만먹으면얼마든지피할수있습니다. 눈을감고귀를닫고코를막고는조그만옷장안에숨어버린다면세상의대부분의 것들은피해갈수있으니까요. 하지만죽음은분명히일어났고, 일어나고있으며, 일어날일입니다. 그리고그것으로끝. 여지를두지않습니다. 피하려어딘가로(가령깜깜한옷장이라던지) 숨어도집요하게따라와서는결국제몫을받아갑니다. 희망도죽어버립니다. 그러니까죽음이라는건어쩔수없이가아니라당연하게받아들여야하는백퍼센트입니다. 인생에서유일하게백퍼센트인것을받아들이지않으려한다는건욕심입니다. 네. 저는그걸알게되었습니다. 죽음은당연하게받아들여야한다, 라는걸.
그러니까 사실 선생님께 이런 장황스런 카지노 쿠폰를 쓸 시간이 있으면, 저는 가엽게 제 곁을 떠나버린 고양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여합니다. 의식적으로 마음과 시간을 들여 순종적으로 그것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의 제 상태를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무지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유일한 백 퍼센트조차 지금 제겐 와닿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만년필에 꾹꾹 눌러 담아 선생님께 카지노 쿠폰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무서운 건 이런 겁니다. 상실이 만들어낸 커다란 구멍이 서서히 메워지고, 그 빈약한 흔적 위에서 저는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 버리지는 않을까. 바늘 끝에 까만 물감을 묻혀 흰 도화지를 느리지만 확실하게 흰 부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까만색으로 채워버리듯 언젠가는 제가 애초에 상실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리지는 않을까. 그렇게 상실감이 사라져 버린다면 제 카지노 쿠폰는 영영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닌지. 아예 없었던 존재가 돼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것들이요. 저에게 전부였던 세상이 사라져 버린 것보다 더 슬픈 건 말입니다 저를 세상의 전부라 여기던 존재가 사라지는 겁니다. 제 멋대로 상상한 것이지만, 아마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몇 번 더 펜을 들어 선생님께 카지노 쿠폰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있었던 존재가 지워져 버리고 없었던 존재가 되어 그런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제 곁을 떠나버린 존재를 여전히 제 옆에 카지노 쿠폰 것으로 여기며 잘 살 수 카지노 쿠폰 날이 언젠가 제게도 오겠지요.
안녕히 계세요, 카지노 쿠폰.
* 매거진 <단편 소설은 글쓴이의 상상을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낸 픽션입니다.
가르치고, 여행을 카지노 쿠폰,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카지노 쿠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