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지지 않는 마음
새벽 4시,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발소리를 죽이고 침실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서재방으로 들어가 책상 위 작은 등을 밝히고 글을 쓴다. 검은색 표지의 몰스킨 노트에, 하얀 몸에 검은 뚜껑이 달린 빅(Bic) 볼펜으로. 아이가 깰 때까지 글 속에 머무른다. 아이와 남편이 꿈속을 헤매는 사이, 세계가 아직 잠의 장막에 덮여 있는 사이, 홀로 존재한다고 느끼는 순간에 글을 쓴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되어, 나만의 은밀한 삶 속에 웅크리고 앉아. 나의 작지만 소중한 아침, 이 시간이 없다면 매일이라는 반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24시간이라는 하루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내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는 낮 시간에 중점을 두는 이가 있다면 모두가 잠든 밤과 새벽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 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삶은 아침을 카지노 게임으로 펼쳐진다. 이른 아침부터 정오가 될 때까지 가장 맑고 순수한 상태로 일을 한다. 그런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생활의 리듬에 익숙해진 감각은 저녁 6시면 피곤으로 둔감해지고 9시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내게 밤은 짧지만 아침에 대한 기대로 아쉬움을 지울 수 있다.
호주 출신 여류 화가 마가렛 올리(Margaret Olley, 1923~2011)는 오랜 시간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안의 정물을 그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호주인들에게 친숙한 생활의 장면을 카지노 게임 속에 담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화가다.그녀 카지노 게임의 주요 소재는 꽃과 그릇, 집안의 가구와 소품들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상은 각양각색의 꽃. 우리에겐 꽃이 지닌 의미가 ‘축하’나 ‘기념’과 연결되어 특별한 소재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카지노 게임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꽃을 보면 그 의미가 유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림에서 꽃은 화가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 속, 흔하고 친근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그 외에도 거실이나 침실, 부엌 등 집안의 공간이 그곳을 채운 정물과 함께 그림 속에 변주되며 등장한다. 그녀의 그림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그림 속 화병과 꽃, 빈티지한 가구가 한 장의 그림을 위해 준비된 특별하고 아름다운 사물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화가의 그림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보면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은 소재가 지닌 미감이 아닌 그걸 완벽하게 화폭에 담아내려 했던 화가의 카지노 게임으로 완성되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녀가 화폭에 그린 것은 기념하고 싶은 이벤트의 순간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이었다. 꽃과 화병, 엔틱 가구는 화가에게 낡은 옷처럼 익숙한 사물이었고. 해 질 녘의 거실, 식사를 준비하는 부엌, 방 한 켠의 가구, 그녀가 화병에 꽂았을 꽃과 벽에 붙여 놓은 카지노 게임. 매일의 날에 입고 먹고 보았을 장면, 날마다 바라보았을 창문과 현관, 집안의 구석구석들. 사소하고 하찮은 장면이 화폭에 담김으로써 일상성을 탈피하고 고유의 색(色)과 미(美)를 얻었다. 화병에 꽃을 꽂고 화병 곁에 놓을 사물을 고심하며 골랐을 화가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그녀는 매일 꽃을 꽂고 그와 어우러지는 정물을 배치하기 위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건 그녀에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저는 매일 카지노 게임 그렸어요, 그걸 사랑하니까요. 그냥 그림 그리는 게 좋았어요.”⁺사시사철 다채로운 꽃을 구할 수 있는 환경과 예술가의 미감으로 수집한 가구와 그릇은 마가렛 올리의 아름다운 정물화를 위한 각별한 조건이 아니었다. 그림 속 정물이 획득한 고요한 아름다움은 매일의 반복이라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꽃이 지닌 화려함과 특별함에 기울던 시선은 어느새 그림 속 정물의 구도와 사물을 정교하게 포착한 화가의 세심한 터치, 선명한 색감으로 옮겨갔다. 누군가의 일상은 고스란히 화폭에 담겨 예술로 남는다는 깨달음과 함께.
마가렛 올리는 그림에서 구성의 카지노 게임을 가장 중시 여겼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어딘가는 솟아오르고 어딘가는 낮추면서 카지노 게임을 잃지 않도록 깨어 있기 위해 수년간 훈련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처음 자리를 잡은 사물일지라도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따로 떼어놓거나 치워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중요한 것은 완성된 그림에서의 카지노 게임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는 매 순간, 카지노 게임이 어디인지 잊지 않는 것이 그녀 작업의 핵심이었다.
그녀의 삶에서 그림이 갖는 의미도 유사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지적했다. 남성은 단번에 눈을 닫고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반면 여성은 한 눈으로 남편을, 또 다른 눈으로는 아이를, 그러고도 한편으로는 냄비를 지켜보느라 가만히 앉아 그림 그리기조차 어렵다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찍부터 철저히, 잔혹할 정도로 자신에게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집이 무너지고, 갑자기 곁에 있는 사람이 쓰러져도 상관하지 않을 정도로 철문을 내려 닫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림을 삶의 카지노 게임에 놓고, 그림을 그릴 때는 구성의 카지노 게임을 잃지 않으려 깨어 있으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과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 그녀의 노력이 단순한 꽃 그림에 절대적인 구도의 미를 부여하고, 매일의 삶을 ‘예술’이란 형태로 옮겨 놓았을 것이다.
여성에게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어렵다. 나도 임신과 출산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와 남편, 가정을 돌보는데 기울어 삶의 카지노 게임을 잃기도 했다. 나라는 카지노 게임이 명확하지 않을 때 삶은 까만 바다처럼 우리를 뒤덮고 흔든다. 그런 경험 때문이었을까. 그림을 그리는 매 순간 카지노 게임을 확인한다는 마가렛 올리의 말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삶에서도 안정된 구도를 유지하려면 매일 생활의 카지노 게임을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장은 작가라고 새겨진 명함도 없고 내 일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도 못하지만, 언젠가를 꿈꾸며 매일 글을 쓴다. 그 마음이 생활의 카지노 게임을 아침으로 옮겼다. 이른 아침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완벽한 고요 속에서 삶의 카지노 게임을 지키는 시간을 보낸다. 읽고 쓰는 사이, 아이를 키우느라 고갈되었던내면이 다시 채워지는 것 같다. 희미해졌던 존재가 생생해지고 잃어버렸던 내면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제대로 맺지 못하고 뭉뚱그리고 말았던 문장들, 그 속에 남겨두었던 공백에 나만이 채울 수 있는 언어를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