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하는 생활
진실을 말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어떤 사실들과 권위 있고 객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털어놓는 것이다. 진실은 사건에 있지 않고 희망과 욕구에 있는 것이다.
<길 잃기 안내서, 리베카 솔닛
요즘 해 질 무렵 자락 숲길을 걷는 재미에 빠졌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숲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돋아나 풍경이 바뀌듯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소리와 냄새, 감촉도 변한다. 순간에도 변화의 징조와 기미가 넘나든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새들의 노래. 홀로 앉아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직박구리와 지는 해를 향해 앉아 있는 물까치, 먼 데서 소식을 전하는 딱따구리다. 한 번은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물까치 떼를 만났다. 나뭇가지에 쪼르륵 앉아 암호 같은 소리를 주고받더니 일순간 후드득 날아오르던 새들. 춤에서 대형을 바꾸듯 왼쪽으로 길게, 오른쪽으로 길게 열을 맞춰 날며 하늘에 물결을 그렸다. 날개의 파도가 눈앞에서 출렁이다 밀려갔다. 무슨 신호일까, 그 앞에서 골똘해지다 감탄했다.
어떤 길엔 이제 막 벚꽃이 만발했고, 어떤 길은 이미 벚꽃이 진 후였다. 또 다른 나무는 이제야 더디게 싹을 올리고 그늘진 곳엔 아직 목련이 한창이다. 흙이 드러난 산비탈 척박한 자리에 분홍빛 진달래가 굳세게 피었다. 자리를 가리지 않는 삶은 어디서든 꿋꿋하다. 길을 걷는 잠깐 사이에도 핀 자리와 진 자리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숲길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평화롭다.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 수도 늘었다. 나처럼 봄기운을 맞고 싶어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겠지 짐작한다. 홀로 걸음을 옮기는 중년의 아저씨들이 드문드문 지나던 길에 가족 단위의 사람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혼자 걷는 중년의 여성들도 자주 본다. 며칠 전에는 위에 걸친 흰빛 얇은 패딩처럼 카지노 쿠폰이 환한 여성을 보았다. 그즈음 산길을 걷는 이들은 대체로 편안한 복장에 화장기 없는 카지노 쿠폰인데 화장을 한 카지노 쿠폰에 즐거운 기운이 감돌아 눈길이 닿았다. 웃음 없이도 밝은 카지노 쿠폰. 저 사람은 어디서든 저런 낯으로 살 것 같아 호기심이 일었다.
우리는 카지노 쿠폰 안에 존재하고 카지노 쿠폰은 밖을 향하기 때문에 자신의 카지노 쿠폰을 영원히 볼 수 없다. 거울이나 사진으로 본다 해도 진실을 뒤집어 놓은 반대 상(像)일 뿐. 그것은 지연된 발견, 때늦은 마주침, 잉여의 응시일 것이다. 삶이 진행 중인 찰나엔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오직 타자의 카지노 쿠폰이다. 매 순간 마주치는 나 밖의 카지노 쿠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감각하고 감정을 느낀다. 그 카지노 쿠폰이란 사람의 머리 앞면만을 칭하지 않는다. 눈에 닿는 세계 전부, 사물과 사람과 길과 건물, 동물과 식물, 그 모든 것의 표면이 카지노 쿠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제때 볼 수 없기에 우리는 영원히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걸까. 길에서 우연히 스치는 전혀 모르는 타인조차 언제든 나를 볼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볼 수 없는 카지노 쿠폰의 빛과 표정, 결 같은 걸 타인들은 수시로 발견하고 있을 것이다. 하얀 패딩을 입은 여성이 자신의 카지노 쿠폰에 환한 빛이 어렸다는 걸 모른 채 힘차게 걷던 순간 전혀 모르는 내가 그걸 받아 든 것처럼. 우리의 카지노 쿠폰이란 내면의 기운을 감추지 못해 잠시 스친 사람에게도 들켜버리고 만다. 그분 덕분에 내면의 빛이 카지노 쿠폰로 스며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내게 들킨 빛이 세상에 대한 호의이거나 삶에 대한 긍정 같았다.
새들의 노래에서 읽은 것도 유사했다. 어떤 순간에는 긴급한 전갈이나 서두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 소리엔 기쁨이 깃들어 있다. 존재한다는 기쁨, 생명을 누린다는 기쁨, 꽃이 피고 새잎이 돋는 계절의 기운을 저 또한 표현하겠다는 기쁨. 세상과 존재에 대한 호의이자 긍정의 신호. 그 노래를 듣다 보면 그처럼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떠오르고 무언가를 향해 나의 가장 좋은 것을 열어보고 싶어진다. 이 또한 세상을 향한 호의이자 선의일 것이다.
나의 왼편으로는 차오르는 달이 말갛게 드러나고 오른편에서는 뜨거운 해가 장엄하게 가라앉았다. 어떤 구간을 지날 때면 반드시 직박구리를 만났고 또 다른 구간을 지날 때면 먼 데서 딱따구리가 똑똑, 똑똑똑똑 쪼아대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흘러 들어왔다. 먼 데서 오는 그 소리는 꿈결에서 듣는 소리처럼 아련하고도 아름다웠다. 똑똑, 똑똑똑똑. 그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니 꽃망울이 열리기 시작한 라일락이 보였다. 그제야 코끝에서 달큼한 냄새가 번졌다. 세상이 열리는 조화에 맞춰 내 몸의 감각도 열린다. 그걸 알아채고 누리는 것, 힘닿는 한 전파하는 일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산책길의 초입에는 남산 타워와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나만의 루트를 걷고 돌아가는 길, 전망대에서 아까 마주쳤던 하얀 패딩 입은 여성을 다시 만났다. 길게 놓인 벤치에 곧추앉은 뒷모습 옆으로 네모난 상자 같은 가방이 보이고, 그 안으로 얌전히 앉은 고양이가 눈에 닿았다. 궁금했던 모든 게 단숨에 풀렸다. 아까 보았던 그 환한 카지노 쿠폰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풍경을 누군가에게 나누어줄 생각에 기뻤던 마음이라고. 내게 좋은 걸 네게도 보여주고 싶어 달떠오르던 카지노 쿠폰이었다는 걸.
둥근 해가 멀리 지평선 부근에서 주황빛을 토하는 사이 새들의 노래가 사방에서 번졌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존재의 뒷모습으로 그 풍경이 완성되었다. 그 앞에서 세상이 나를 환대하는 것 마냥 반가웠다. 떠들썩하면서도 고요한 평화, 조건 없는 환대와 경청, 서로 다른 존재가 나란히 곁을 내어주며 무엇도 훼손하지 않는 공존이 나의 희망이자 욕구임을 깨달으면서.
우리는 서로를 보며 세상의 표정을 익힌다. 선의와 호의의 카지노 쿠폰을 만나면 내 안에도 그 카지노 쿠폰이 새겨진다. 조금씩 더디게라도 그런 카지노 쿠폰을 새겨가고 싶다. 언젠가 마주칠 당신에게 그 빛을 내보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