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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 May 01. 2025

[에세이] 카지노 쿠폰 무게가 얕아진 시간

5월 1일 대법원, 이재명 유죄 취지 파기환송에 관하여

대법원의 판결은 단지 법의 언어로 쓰인 선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균열의 금이었다. 정치는 감정과 이해, 말과 기억이 얽힌 거대한 구조물이다. 그 속에서 한 인물의 말이 죄가 되는 순간, 우리는 그 말을 둘러싼 풍경 전체를 다시 보게 된다.


법이 정하는 진실은 무미건조하지만, 그 진실을 둘러싼 말들은 항상 맥락이 필요하다. “골프를 친 기억이 없다”라는 말 한 줄에, 관계와 기억, 정치적 거리감까지 얽혀 있었을 터. 그러나 대법원은 그것을 ‘사실’로 분해했고, 그 말의 숨결은 하나의 죄명이 되었다.


정치인의 언어는 칼날 위를 걷는 무용수 같다. 진실을 말해도 공격받고, 말을 아껴도 오해받는다. 이번 판결은 정치인의 언어가 그 자체로 법정에 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언어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해석은 언제나 다층적이며 복합적이다.


그런데도 사법은 오직 증거와 문장, 법리로만 판단한다. 그 판단은 때론 정의를 실현하지만, 때론 인간의 서사를 잘라낸다. 이번 사건은 후자에 가깝다. 기억과 해석, 그 모호한 진실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환원했다.



정치와 법이 교차하는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말의 진심인가, 그 말이 불러온 결과인가. 법은 판결을 끝냈지만, 사회는 아직 질문 중이다. 국민은 단지 청중이 아니다. 그들은 재판이 끝난 뒤에도 그 말의 결을 따라간다.


이재명의 발언이 어떤 정서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것이 선의였는지, 오판이었는지. 이제 국민의 해석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진실은 법정에서 종결되지 않는다. 그 진실은 가려진 얼굴로, 투표장의 침묵 속에서 다시 말의 몸을 얻는다.


한 번의 유죄 판결이 정치의 결말을 만들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법의 손을 떠난 언어를, 스스로 읽고 해석할 의무를 갖는다. 그것이 법보다 느리고, 정치보다 유연한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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