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사월 중순이다.
연한 핑크의 벚꽃이 살랑살랑 날리던 중 바람이 몰고 온 비가 뿌려서 그예 꽃잎들이 바닥에 떨어져 누웠다.
외부 강의가 예정된 날의 일기예보는
'춥지 않고 덥지 않고'.
이보다 좋을 순없다.
섭씨 7도에서 25도까지.
패딩 대신 스카프를챙기는 걸로.
지난밤에 내일 아침 무엇을 입을까 여러 생각 끝에 까만 스트라이프 디자인의 하얀 셔츠에 까만 카디건과 곤색 세무 재킷을 입기로 무료 카지노 게임. 엄마가 물려주신 빨간 재킷에도, 작은 딸이 선물한 핑크색 카디건에도 잠시 눈길을 주었지만.
무대에서 강사가 튈 일은 아니다. 위아래 너무 어둡지 않게 바지는 연한 스트라이프 무늬가 있는 곤색바지를 골랐다. 보통 때는 검은색과 파란색으로 색상만 바꿔서 활동에 편한 청바지를 입는다. 오늘은 그동안 옷장만 지키던 정장바지를 꺼냈다. 구두는 생각 끝에 포기하고 슬립온 형태의 운동화를 선택무료 카지노 게임.
"일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버린다"는 정리전문가의 얘길 듣고 '옷장에 걸려만 무료 카지노 게임 정장바지'를 버릴 목록에 올려두었다. 버리지 않길 잘했다. 거의 십 년 만에 입어줄 기회가 왔다.
오늘은 동물교감치유견인 반려견 '수리'를 동반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장 바지도 선택 가능하다. 이 자그마한 보물이 강의실에 등장하는 순간 분위기가 보드라워지는데,..행사기관 측에서 '과거에 공공기관반려동물 출입'에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어 조심스러워무료 카지노 게임.
혹시 동행에 대비해서 하얀 말티스 털을 길게 살려 지난 주말 단정하게 털정리는 무료 카지노 게임. 예쁘게 보이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서 거금이 들었다. 마치 요크세테리어처럼 털을 길게 관리해 주니 녀석이 우아하기까지 한다. 이제 10살이다. 3살 유기견을 입양해서 삶에 동행한 지 7년 되었다.
모처럼 정장 바지를 입고 <동물교감치유와 Children Reading to Dogs '리딩독' 특강을 다녀와서 몸살이 났다. 지역토박이인 후배의 도움으로 수월했지만 이젠 점점 체력이 달린다.
강의에 참석한 청중이 예상했던 대상의 청중이 아니어서 강의내용을 조금 바꾸어야 했다. 순간 머릿속이 분주했다.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의 참가를 예상했는데, 은퇴하신 부모님들이나 이미 분야별 전문가이신 분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에 핸들러팀으로 참여할 수 무료 카지노 게임 분들 이어서, 그리고 여유로운 그분들의 분위기 덕분에 분위기가 따스했다.
큰딸은 동료 연구자와 조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참여한 청중에 맞춰 조절한 강의 내용을 따라다니며 2개의 PPT 자료를 넘나들며 정확히 화면을 띄워주는 역할을 해주어 여간 고마웠다. 누가 내 속을 이만큼 알아서 척척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1+1팀이 참으로 좋다. 언제쯤 역할이 바뀔까? 기대가 크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와 달리 참가자들의 지난 '양육과 교육' 경험 풀어내기로 시작했어야 했는데, 그걸 놓쳤다. 좋은 경험이다.
다음 강의에서는 확실히 두 가지 방향으로 강의내용을 준비해야겠다. '참가자에 대한 정보제공을 미리 요청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매일 5~10분 '수리'와 책 읽기 진행 중
행사를 제안한 기관은 보드라운 강아지 인형까지 구입해서 모든 책상 위에 올려주었다. 뜻밖의 따스한 배려에 감사무료 카지노 게임. 참석자들이 작은 <강아지 인형을 선물로 가지고 갈 수 있어서 내 마음도 가벼웠다. 그곳 토박이인 후배와 함께 식사를 하였다. 정성 한가득인 후배는 지하철역까지 내 강의 자료가 담긴 무거운 가방을 들어다 주었다. 늘 고맙다.
집에 도착한 순간 피로가 몰려왔다. 화장 때문이다. 평소엔 맨 얼굴인데, 화장을 하는 날엔 메이크업 성분을 크린싱크림으로 꼼꼼히 지운다. 다시 물비누로 잔유물을 닦아내야 하는 세안에 시간이 길게 필요하다. 부담이 된다. 화장품 덕분에 조금 예쁘게 보인 대가이니 지불해야 할 일이지만.
샤워를 하고 나니 피로가 훨씬 가벼워졌지만 저녁식사를 생략하고 누웠다. 요즘 식사준비는 으레 남편 몫이 된다.
샤워 중인 내게 밖에서 옆지기가 '저녁에 뭘 먹고 싶은 지?' 물었다.
"부드러운 물 누룽지"
그리고 나는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나는 늘 밥을 넉넉하게 만든다. 그리고 남은 밥은 프라이팬에 납작하게 펴서 누룽지로 만들어 말려둔다. 고단할 때 물누룽지를 먹을 수 있게. 물누룽지 준비는 쉬우니 옆지기가 어려움은 없으리라.
저녁 식사로 옆지기는 부드러운 물누룽지를 준비했지만, 나는 고단함에 눈꺼풀을 올릴 힘도 없었다.
"식사 준비되었는데..."
"엄마 잠들었어요."
"그래도 굶고 자면 안 돼."
그이가 큰딸과 나누는 얘기가 방문틈으로 스며들었다. 그이가 안방문을 조용히 열고 들여다보나 보다.
"식사해요."
"나 그냥 잘게요. 힘이 없어서..."
"아빠, 엄마 힘들어..."
옆지기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아침 식탁 앞에서 옆지기가 말무료 카지노 게임.
"당신에게 고백할 게 무료 카지노 게임..."
"?"
나는 어젯밤 그이와 큰딸이 수고하여 차린 물누룽지를 안 먹고 잠들었었다. 나의 '무례'가 생각나 속으로 움찔무료 카지노 게임.
"어제 옛 사진들을 정리하는데 감격이었어. 당신이 '보물'이더라고. 내가 보물을 몰라봤어. 왜 그랬을까? 폼만 잡고..."
"?"
"젊을 때 내가 당신한테 참 무례했어. 왜 그렇게 바보같이 목에 힘을 주고..."
늙은 반쪽의 난데없는 무료 카지노 게임성사에 민망하다.
"젊어서... 결혼 전 <가정생활 안내 학교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지혜가 부족해서 시행착오 많이 했죠."
"애들 키우느라 당신은 직장을 그만두고 희생한 건데, 난 그 고마움을 모르고..."
"나도 교직을 내려놓은 것에 대한 미련이 커서 남편의 희생을 당연히 생각했으니 가장인 무료 카지노 게임이 고단했죠."
가벼운 야채와 과일의 아침식사를 앞에 두고, 늙은 부부는 아침 시간에 큰딸 앞에서 주거니 받거니 반성중이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있다.
시어머님은 갓결혼해서 잔뜩 긴장한 새댁에게 친구분의 말씀을 전하셨다.
"야야, 선생들은 남편을 자꾸 학생 부리듯 시켜 먹는다더라."
한편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아마도 시어머님의 말씀또는 주변 사람들의 이런 말을 들은 남편이 선생인 아내의 기선을 잡기 위해 목에 힘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딸이 독립하기 전 서둘러서 함께 간 서유럽과 동유럽 여행 때 나는 사진 찍기를 한사코 반대하며 풍경만 찍어왔었다. 서툰 솜씨로 찍은 사진은 수년이 지난 후 보니 등장인물이 없어 뻘쭘했다. 그렇다고 잘 찍은 사진도 아니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전문가들의 풍경 사진보다 못했다.
'반쪽 말을 들을 걸... '
나이 들어 코가 세어진 벌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나서야 여행지에서 인물사진도 필요하다는 그이의 의견에 공감했다.
언젠가부터 사진에 비친 내 모습이 더 이상 예쁘지 않고 너무 사실적으로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하여 될수록 사진을 찍지 않으려 한다. 더구나 주인공에서 물러난 세대인 우리들의 옛 사진들은 이제 버려야 할 때인데, 난데없이 사진들을 늘어놓고 정리하는 그이가 마땅치 않았다.
넌지시 그이의 버릴 결심을 부추기려고
'박근형 선생님과 손숙 선생님은 영화와 드라마 관련 산 역사인 사진 자료와 주요 기록들을 모두 정리하셨다'
는 얘기를 전무료 카지노 게임.
"이제 언제 떠나도 놀랍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떠난 후 유품정리에 바쁜 자식들이 시간을 쓰지 않도록"
이라는 두 분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새로운 하루를 여는 아침 식탁에서 옆지기의 '격려의 말'을 들으니 과거 사진 정리도 좋은 면이 있다. 수개월 전에 사진앨범을 더 주문해 달라는 말을 듣고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 아침 예쁜 말로 날 먼저 감격시킨 그이는 사진앨범을 두꺼운 걸로 한 권 주문해 달라고 한다. 마치 처음으로 부탁하는 표정으로. 그이의 추억여행이 되는 사진 정리이니 오늘 앨범을 주문해야겠다. 그런데 결국은 시간 내어 내가 다시 보고 아주 기본만 남기고 버려야 할 텐데...
아침식사를 마치고 식탁에서 일어나는데 그이의 말이 마음속의 잔상으로 남았다. 갑자기 칭찬받은 고래처럼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어제의 피곤함이 한결 가벼워졌다.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다.옆지기와큰딸 덕분에 노년의 시간이 자주 싱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