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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한 Feb 22. 2025

카지노 게임 역사

삶과 죽음

세 살 때, 할머니 집에서 있었던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불투명한 창문 너머로 빗방울이 ‘톡.. 톡..‘ 떨어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라는 것을 모르던 어린 시절의 나는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 여쭤봤다.


“할머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할머니는 무서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창 밖에 개구락지(*개구리의 방언) 아저씨가 있다. 말 안 듣는 아이들 있으면 잡아간다.”


순간 그 모습이 너무나 직관적으로 떠올라서 나는 그만 이불속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부모님은 내가 밤에 잠을 자려하지 않으려 하고, 떼를 쓸 때면 ‘세탁기 아저씨’를 들먹이곤 했다. 세탁기 아저씨는 단순히 세탁기와 아저씨를 합친 별 의미 없는 단어다. 그러나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워낙 크기도 했었고, 그것의 용도를 명확하게 인지를 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겐 마냥 무섭게 느껴졌다. 내가 나쁜 행동을 하면 상상 속의 괴물들이 나를 잡아갈 것 같았다. 가족들 눈에는 내가 귀엽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 카지노 게임 역사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작은 카지노 게임은 내가 자랄수록 똑같이 커졌다. 그것은 더욱 정교하게, 그리고 기괴하게 다가왔다.

‘개구락지 아저씨’ , ‘세탁기 아저씨’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을 무렵 나는 처녀귀신 등의 미지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고, 혼자 잘 때마다 방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자곤 했다. 나중 가서는 방 문을 여는 것도 불안해서 ‘천장 위에서 무언가 나를 내려다보면 어쩌지?‘ ‘창 밖에서 귀신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등의 고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나는 마치 관짝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정자세로 자게 되었고 그 자세는 지금까지도 습관으로 남아 이어져오고 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차라리 개구락지 아저씨가 그리울 정도이다. 더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카지노 게임은 없다. 대신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잘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어려움 등 너무나도 현실적인 카지노 게임들이 내게 다가왔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항상 도망 다니고, 두려워하고, 피하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카지노 게임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기 시작했다. 정말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 고민은 꽤 오래갔다. 고민을 거듭한 결과, 나름의 결론이 나오게 되었다.


카지노 게임의 근원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또는 생존에 대한 욕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죽으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죽고 나면 다 놓고 가야 하니까.


가끔 죽음을 앞두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상황이 오면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그 상황에 나를 놓는다. 카지노 게임이 밀려든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카지노 게임을 마냥 극복하려고만 했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은 거부할수록 더 큰 그림자로 다가왔고 곧이어 그 방식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카지노 게임에 패배할수록 스스로의 가치도 떨어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내려놓기로 했다. 카지노 게임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카지노 게임을 인정하니 오히려 카지노 게임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제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역시 죽는 건 싫다. 아직은 내 주변에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카지노 게임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어오고 있다. 그렇지만 이젠 더는 피하지는 않는다. 대신 언제 죽어도 괜찮을 정도로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주변을 더 소중하게 바라보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보면서 하루라도 더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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