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때 그 스팸카지노 쿠폰, 내가 보냈다
1.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았다
일반 회사원들은 다 이런 걸까?
일하는 내 자리 앞이 뚫려 있던 시절,
언제나 손님이 찾아올 수 있는 그런 환경.
나는 늘 생각했다.
“제발 앞에 벽 좀 있었으면…
나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일해보고 싶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앞도, 옆도 뻥 뚫린
그 ‘원하던 자리’에 앉아 카지노 쿠폰.
본점, 층고 높고 채광 좋고,
책상 간격 넓고,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건다.
… 정말 아무도 안 건다.
야, 예전의 나야.
듣고 있니?
거기, 사람이 사는 곳이었어.
그립다, 그 시절이.
2. “그 카지노 쿠폰 왜 보내요?” 하던 내가
본점으로 발령받고 한동안 내가 하던 일 중 하나는
매일 아침, 실적 종합 카지노 쿠폰을 보내는 일이었다.
받는 사람은 많았다.
부장님, 팀장님, 영업점, 본부들… 줄줄이 많았다.
근데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게 뭐냐고?
예전에 내가 “왜 보내요 이거?”,
“누가 봐요 이걸?”,
“아 카지노 쿠폰 용량 꽉 차게 짜증 나네”라고 투덜거리던
그 카지노 쿠폰이 바로 그거였다.
그리고 지금,
그 카지노 쿠폰은 내가 만든다.
3. 아무도 보지 않는 카지노 쿠폰을 쓰며
나는 매일 아침 제일 먼저 그 카지노 쿠폰을 만들었다.
전날 실적을 뽑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엑셀로 만든 이미지 안에 우수자 얼굴 사진을 넣고,
한 명 한 명 이름 확인해서 금메달, 은메달까지 걸어줬다.
딱 봐도 티 나는 이미지 공예 카지노 쿠폰.
“와, 이걸 누가 만들었지?” 싶은 그 카지노 쿠폰.
그리고 보낸다.
딱, 카지노 쿠폰 하나.
누가 봐줬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확인하겠지.
…그런 기대는 금방 버렸다.
왜냐면, 진짜 아무도 안 본다.
내가 만든 파일을 열어보지도 않고
그냥 스크롤 넘기고, 지우고, 묻는다.
“어제 실적 왜 안 나와요?”
(제대로 봤으면 있었을 텐데요… 했지만 입은 다물었다.)
그래도 나는 그걸 매일, 정확하게, 빠짐없이 만든다.
왜냐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니까.
그게 일이니까.
4. 그래서 나는 키보드를 샀다
엑셀이 너무 어려웠다.
전산도, 함수도, 형광표시도.
실적은 안 잡히고, 선배들은 다 연락 오고,
“왜 내 실적은 안 나와요?”라고 물으면
나는 땀이 났다.
사수는 내게 말했다.
“그 키보드론 엑셀 못 한다.”
그래서 나는 기계식 키보드를 샀다.
무려 189,000원짜리를!
바뀐 건 키보드뿐이었다.
엑셀은 여전히 어렵다.
다만, 빠르게 탭과 컨트롤을 누르는 속도만 늘었다.
나는 엑셀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엑셀을 잘 찾는 사람이 됐다.
하나 더, 친구들이 디엠으로 매일같이
실무에서 바로 써먹는
엑셀 꿀팁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고맙다. ㅠ
5. 이게 회사인가 봅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매일 같은 카지노 쿠폰을 만들고,
보내고 아무도 안 보고(!)
결과보다 과정을 붙잡고,
그러다 지치고.
그리고 다음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자리에 앉아
카지노 쿠폰을 만든다.
아마 그게 회사인가 보다.
누가 안 봐줘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해내야 하는 일들.
이렇게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나도, 어쩌면 조금씩 바뀌겠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자라나겠지.
다음 편: [3화] 키보드는 샀지만, 엑셀은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