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예술에 일가견이 있는 이기종이 처음 이 영화를 추천해 주었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내 인생 영화가 될 줄로 믿었다. 단조로운 일상을 사는 화장실 청소부의 이야기, 그것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일본 영화라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있으니까. 게다가 그것이 사랑이든 인생이든, 감독 나름의 답을 찾고 정의 내리는 영화를 나는 유독 좋아한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에 북받칠 내 모습을 미리 상상하는 것은 그런대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따뜻한 조명과 유달리 푹신했던 소파, 실로 오랜만이었던 맥주 탓을 해보려 해도, 중간에 두 번이나 잠들어 버린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라 칭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다만, 한 번이 아닌 두 번 잠들었단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그건 적어도 한 번은 졸음을 이겨냈단 의미다. 만약 내 경우처럼 두 번 모두 다시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면, 어쨌거나 영화의 엔딩 신을 보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시종일관 심심하다 못해 슴슴했던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어제와 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청소부 히라야마, 일출의 빛을 받으며 출근하는 차창 속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충만함으로 가득했던 미소는 어느샌가 슬픔에 잠기고, 벌거진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 알아차릴 새 없이 슬픔은 다시 웃음으로, 또 슬픔으로, 희망 섞인 희미한 미소로 뒤바뀐다. 배경에 흐르는 음악은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and I’m feeling good.”
이쯤 되면 두 번이나 잠드는 바람에 아내의 타박이나 받는 나라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복되는 하루, 그럼에도 시작되는 새로운 아침. 교차하는 만감. 이것이야 말로 인생 아닌가. 그렇게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다른 의미로 내게 ’인생 영화’가 되었다. 인생 그 자체인 영화가.
비교하면 할수록 한없이 초라해지는 게 어디 인생뿐일까. 하지만 영화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말이 적은 영화지만 히라야마가 조카 니코와 나눈 대화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뤄져 있거든.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 내가 사는 세상과 니코 엄마가 사는 세상은 많이 달라.”
카지노 게임 추천이 내내 웃다 가끔 우는 것인지, 아니면 종일 울다 종국엔 웃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알 길이 요원하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린 모두 각자의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다르다는 건 비교하며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단 의미일 테다. 설령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달의 뒷면처럼, 남들 눈에 쉬이 보이지 않는 황량하고 쓸쓸한 세계라 할지라도 말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이 인생에는 너무나 많고, 그렇다고 모든 순간을 움켜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실쯤 진작에 깨달은 사람처럼, 히라야마는 매일 공원 벤치에서 단출한 점심을 먹으며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나무 사이사이 잠깐씩 비치는 햇빛, ’코모레비(木漏れ日)’ 를 찍어 기록하는 것이 그의 취미다. 아니 애초에 매일 숨 쉬듯 반복하는 일을 취미라 부를 수 있을까. 언뜻 비슷해 보이는 사진들을 출력하고 날짜를 적어 서랍에 차곡차곡 보관하는 모습은 취미라기 보단 삶의 방식에 가깝다. 알고 보면 완전히 같은 오늘이란 있을 리 없다는 믿음, 지금은 지금이고 다음은 다음이라는 영화 속 그의 외침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지금 이 순간‘을 대하는 그의 삶의 태도가 문득 부러워졌다.
내가 사는 세상 속에도 나만의 ‘코모레비‘ 가 있다. 느리지만 한 번도 멈춰있던 적 없는 내 아들 이재이가 나의 ‘지금’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과거가 힘들고 이따금 미래가 두렵다. 하지만 재이를 떠올리면 ’ 완벽한 인생‘ 까진 몰라도 ’내 카지노 게임 추천 완벽’ 은 얼마든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몇 번이고 새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