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제법 친해진 사람들과 처음 노래방을 가게 되었다. 누군가가 물었다.
"노래 잘 불러?"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는 해."
바이브레이션 넣어 가며 소찬휘 뺨다구 칠 정도로 고음 쭉쭉 올라가는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음정 박자는 얼추 맞추고 다비치의 8282 노래에서 이해리 파트는 조금 힘들어도 강민경 파트까진 무난히 부를 정도는 된단 뜻이다. 그리고 나에겐 이렇게 노래만큼 애매한 재능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글을 쓰는 재능이다.
나에게글쓰기는예술(art)보다는기술(skill)에가깝다. technique도아니고skill인이유는훈련으로쌓은기술이skill이고전문적인기술이technique라는친절한영어사전의설명때문이다. 나에게글쓰기는늘그랬다.하기싫지만꾸역꾸역억지로해야하는것. 그래도계속하다 보니뭔가쌓이긴하는잔기술. 수능으론답이안나와죽기살기로논술과구술면접을들이 팠고다행히대학은들어갈수있었다. 그때배운얕은지식으로대학시절논술과외를했다. 국어선생님을꿈꿨지만시험에떨어졌고그나마알고있는글쓰는법과국어지식을통해수험서출판사에입사했다. 별로좋아하지않던일을업으로삼으니쓰든, 고치든아주글이라고하면이력이났다. 나에게글은그저널려있는일감들에불과했다.
아이를낳고나는전업주부가되었다. 글안보니살것같다며기뻐했는데이놈의글쓰기가나를또찾아왔다. 애도좀컸겠다, 잠깐씩이라도할수있는일이뭐가있을까고민하던중에아는사람이홍보 영상만드는일을하는데시나리오쓰는일을도와줄수있겠냐고물은것이다. 한푼이아쉬운상황에서나는알겠다고하였고, 나는또아이낳고이미훤해진가르마를헤집으며글을쥐어짜냈다. 그런데정작당황스러운건따로있었다. 미팅장소든, 촬영장소든만나는모두가나를'온라인 카지노 게임님'이라고부르는것이었다. 심지어미팅때마다나는내이름옆에'온라인 카지노 게임'라고박혀있는뻔뻔한명함을내 손으로직접전해줘야만했다. 이것이어찌나양심에찔리던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란명칭을붙이기엔밋밋한나의글실력도걸렸지만돈한 푼벌겠다고억지로글을쥐어짜는주제에감히온라인 카지노 게임라고불려도되는건지마음이불편하기만했다.
그렇게아직도입에붙지않는온라인 카지노 게임님소리를들으며일한지몇해가흘렀고올해초에는한대학교에서진행하는프로그램홍보 영상을제작해달라는의뢰가들어왔다. 역시나뻔뻔한그명함을뿌리고, 학교측의이런저런요구 사항들을반영해1차시나리오작업에들어갔다. 평소'까이는게나의직업이다.'라고생각해야마음이편할정도로1차구성안은여기저기까이기마련인데웬일로1차구성안이한번에통과되었다. 마음바뀌기전에재빨리1차촬영까지마쳤는데아뿔싸, 코로나 19가터졌다. 2차촬영은학생들수업모습을찍기로되어있었는데대학교의개강이연기되면서촬영역시기약할 수 없게되었다. 나에겐더이상쓸것도고칠것도없는하루들이이어졌다.
아이가원래도기관에다니지않았기에코로나가왔다고삶이크게달라지진않았다. 아니차라리평온했다. 머리싸매며글쓸일도없고다쓴글을뒤집어엎는클라이언트도없었다. 언제나고민인삼시세끼챙기기나, 치우기무섭게다시엉망이되는집안꼴은늘있던일이라그러려니했다. 그런데이상하게무료하고답답했다. 내의지로안나가는것과남이못나가게하는것은큰차이가있는것인지, 집안에서어떤재미라도찾아야이생활을버틸수있을것같았다. 그러던중정말이상하게도글을쓰고싶단생각이들었다.그렇게억지로쓰는남의글말고내가쓰고싶은글을써 봐야겠단생각이들었다.무료함에정신이어떻게된건지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글이 쓰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졌다.
그러나 이미좌절의경험이 몇 번 있던 터라 망설여지는 마음도 있었다. 우리세대에는글좀쓰는지를알아보는나름객관적인방법이하나있었는데바로싸이월드일기장을살펴보는것이었다. 요즘아이들이보면손가락, 발가락 펴느라정신없을 만큼갬성넘치는글들이대부분이었다. 대학동기중이일기를 참잘쓰는친구하나가 있었는데동기, 선후배 할 것 없이친구의일기장을훔쳐보는사람들이 꽤나많았다. 나역시 그중하나였는데그동기의글에비하면나의글은초등학생이쓴일기같았다. 그리고 이는 투데이 수에서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나는이런글을쓰는데재능이없구나, 주장하는글쓰기나열심히쓰자며그뒤로에세이류의글쓰기는쳐다도보지않았다. 잠깐 블로그에남들처럼육아일기, 리뷰 같은것들도올려본적은있으나혼자만의기록, 그이상의의미도성과도 없었다.
이런 내가 내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 지금 생각해 봐도 이상한 일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는 명칭이 늘 불편하다고 해 놓고는 또다시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는 명칭을 따내겠다고 기어코 두 번이나 도전한 걸 보면 나도 모르는 글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게 왜 하필 이 코로나 사태 때였을까. 집안일은 더 늘고 아이는 바깥에서 에너지를 발산 못해 새벽까지 눈이 말똥말똥한 지금, 왜 하필 이때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자판을 두드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신없을 때 더 일을 벌이고 싶은 변태적 성향이거나,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개인에게 미치는 작은 부작용 같은 거려나.
그렇지만나는이기회를소중히여기기로했다. 이깟글들도즐겁게봐주시는소중한독자님들을만나게되었고, 감탄나오게글잘쓰는여러온라인 카지노 게임님들도알게되었으니이 정도면성공이다. 초보자에게주는당근인줄알면서도다음메인과브런치홈에내글을실어주신 덕분에평생본적없는조회 수를 본 날은 황홀하기도 했다. 강제로눌린일시정지버튼덕에나에게 또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다.
얼마 전 대학 동기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 브런치 앱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대부분 모른다고 대답했는데 그 싸이월드 일기장에 글 깨나 쓰던 대학 동기가 대답했다.
"그거 아무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되는 건 아니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되는 관문? 같은 게 있어 꽤 까다로운 듯. 알아봤었는데ㅋㅋ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야."
모두들 그 동기에게 너도 글 잘 쓰지 않냐 한번 써 봐라 한 마디씩 날렸고 동기는 브런치 앱을 통해 나온 책들에 대해 추가 설명을 남겼다. 그러나 처음 말을 꺼낸 나에겐 아무도 브런치 앱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묻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내 입꼬리는 방정맞게도 올라가 있었다. 됐다. 이 정도면. 좀 없어 보이지만 동기 부여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