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론
우리는 모두 학창 시절에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주의 비밀을 풀고 싶다는 것과 같이 거창한 꿈이었을 수도 있고 그저 빨리 어른이 돼서 법적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 같은 것은 '꿈'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꿈은 이루는 것이지 되는 것이 아니다. 법적 어른이 된다는 것은 (미성년에 시한부가 돼버린 자를 제외하고는) 이루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공평하게 흐르는 시간에 따라 때가 되면 그저 '되는' 것이다. 애벌레야 나비가 되는 꿈을 꾸지만, 나비는 나비가 되는 꿈을 꿀 수 없다. 나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 밖에 없어, 나비는 나비인 채로 죽을 뿐이다. 애벌레는 나비 따위가 되는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애벌레는 남들이 비웃는다 하더라도 나비가 아닌 사자, 독수리, 얼룩말 따위가 되는 꿈을 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창 시절만큼 좋은 시절은 없다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시시한 어른 밖에 될 수 없다. 그 말은 ‘꿈이 있을 때가 좋았고 나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꿈은 오래도록 이룰 수 없도록 크게 꾸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평생토록 이룰 수 없을 만한 꿈을 설정해야 한다. 일생을 멋진 어른으로 살고 싶다면, 죽는 날까지 꿈을 꾸어야 할 것이다. 내 꿈은 22세기의 위키피디아에 21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 및 작가로서 적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