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앞에서 자기 검열로 서성일 때, 내게 필요한 재능은 뻔뻔함이더라
새 책 원고를 위해 매거진을 하나 만들어 두었는데 개점휴업같이 시간이 흘렀다.
쓰고 있고, 계속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매체에 쓴 글이나마, 올려본다. 브런치가 숨을 쉬라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 셀린 디옹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건강 회복을 간절히 기원하며.....
온라인 카지노 게임 너를 치유하리라!
“글쓰기 재능을 연마하기 전에 뻔뻔함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하퍼 리
글쓰기를 격려하는 명언 중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글이란 의심을 물리치고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글쓰기 재능이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나 본 적 없다. 대 작가는 스스로에게 충고하는지도 모른다. 글쓰자면 배짱 또는 뻔뻔함을 먼저 기르라고 말이다.
뻔뻔함이라 하면 무례함, 이기심, 후안무치 등 부정적으로 들리는 게 사실이다. 항상 나쁜 게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정황과 맥락에 따라선 뻔뻔함이야말로 긍정적인 힘이요 미덕이니까. 통념을 거스르는 용기, 남의 눈 의식하지 않는 대범한 걸음.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내 글과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 당당함과 자신감으로 쓰는 게 뻔뻔함이란 재능이다.
작가로서 가장 멋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니 모리슨에게서 보았다.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 얼마나 당당한가. 그는 노예 후예 흑인 여성이었다. 백인이 쓴 흑인 노예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그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을 써냈다. <빌러비드를 읽은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도 암 환자가 되고서야 놀라며 알게 됐다. 내가 간절히 읽고 싶은 책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아내가 해 주는 밥 먹고 수발 받은 남성이 쓴 온라인 카지노 게임기는 많은데 여성 암 생존기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 같은 중년 여성이 쓴 몸 이야기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야기를 나는 읽고 싶었다. 병원과 의사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 주도적인 자연온라인 카지노 게임, 몸과 마음을 회복하면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런 책이 없어서, 결국 내가 쓰기로 마음먹어 버렸다.
책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아줌마 암 환자가? 그때 내게 필요한 재능은 오직 뻔뻔함이었다. 글쓰기 실력은 작은 문제로 보이기까지 했다. 내 안의 목소리가 절박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대로 발화하는 게 몸이 살길이라고 말이다. 내 목소리를 죽이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나를 지으신 창조주를 사랑한다? 어불성설이었다. 뻔뻔함이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를 쓰게 했다.
글쓰기에만 뻔뻔함이 필요할까? 자기 자신을 믿나요? 자기 몸의 소리를 듣나요? 기독교회에서 다소 논쟁적인 화두일 수 있겠다.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믿어야지”라는 훈계부터, “예수 보혈로 구속된, 하나님의 형상인 나?”라는 질문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자기 몸을 의지하는 거야말로 죄성!”이라는 설교도 들리는 거 같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글쓰기’가 초대한 북 토크도 뻔뻔함 잔치였다.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야기는 가수 셀린 디옹(54)이 투병하는 ‘전신 근육강직 인간 증후군’(SPS)으로 시작했다. “My dreams will go on”을 부르는 셀린 디옹을 다시 볼 수 있길 기원하는 마음이었다. SPS가 B형간염처럼 자가면역병의 일종이라는 공감 때문이었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오작동해 자기 몸을 해치는 게 자가면역병이다. 그 자체도 난치지만, 또 다른 난치병의 원인이 되니 더 문제다.
현대의학은 자가면역병을 난치병으로 분류한다. 답을 못 찾았다는 말이다. 그 종류도 나날이 늘고 있다. 한 가지 특이점은 여성이 남성보다 3배 많이 앓고 있다는 통계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이상구의 <불치병은 없다는 자가면역병 여성 환자들의 공통점을 말한다.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 화가 나도 잘 참는 사람, 자기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 즉, 정신적인 갈등이나 스트레스, 고통이 T-림프구에 영향을 미친다.”
낯설지 않은 특징들 아닌가요? 나도 그런 삶을 살았노라고 독자들 앞에서 고백했다. 암 수술을 하고서야 내가 잘못 살았구나! 깨달았다고. 눌려 있던 게이지가 폭발하니 뻔뻔하게 말하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어느새 병이 나아버렸다고 우스개 했다. 나를 탓하고 감정을 누르는 건 결코 신앙도 미덕도 이웃 사랑도 아니다. 왜 여성들은 그렇게 살까? 여성에게 탓을 돌리고 목소리를 못 내게 하는 구조를 보자. 불평등에 분노하고 행동하자. 뻔뻔함이 너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리라.
“자꾸 울음이 나오려 해서 질문도 못 했어요. 작가님 정말 고마워요. 오늘 강의는 제 인생 방향을 바꿔 줄 것 같아요. 한 가지 결단했어요. 나중에 따로 소식 드릴게요.”
저자 사인할 때 내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북 토크 내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이슬 맺힌 눈으로 듣던 H였다.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는 이 나라에서, 여자, 엄마, 아내로 살아온 우리는 서로에게 용기였다. 우리는 포옹하고 친구가 됐다. H는 그 밤에 SNS로 내게 사진과 글을 보내 왔다. “내 탓이오”라 새겨진 원목 현판 사진에 유쾌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거 쳐다보며 맨날 자신을 탓했어요. 이젠 안 하기로 했어요. 떼다 버렸어요!”
(새가정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