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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Apr 19. 2025

카지노 게임, 소설 쓰기에도 삶에도 지불해 마땅한 수업료

'백합과 장미' 토론에서 보인 짝꿍의 태도에 내가 느낀 부끄러움


김현영의 소설합평반 45기 두 번째 주, 드디어 합평이 시작됐다. 11시에 시작해 휴식 없이 2시 넘어 끝났다. 제출된 A4 11쪽~12쪽짜리 단편소설 3편이 수업 교재였다. 수강생들과 강사가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질문하고 글쓴이 목소리도듣는 식이었다. 소설 좀 써본 사람들인 듯, 작품들도 합평 내용도 수준이대단해보였다.


낯선 작가들 사이에서 나도 동참했다. 어제 아침 수업시작직전에 부랴부랴 세 작품을 출력해 읽었지. 두 번 읽을 마음의 여유는없었지만,깊이 읽지 못했다며듣기만성정이 못 되는 나. 뭐라도 주억거리며 긴장감을 감추려노력했다. 끝나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말 안되는 소리를 좀 했구나, 작가들과작품들에게 미안했다.엎질러진 물,막을수 없는 카지노 게임이밀려왔다.


"실은 아침에 급히 읽느라 특히 세 번째 작품은 더 찬찬히 읽지 못한 거 같아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고백부터 할게요. 독자로서 이해가 잘 안 되는 몇 개만 질문할게요." 이런 정도로 갔으면 얼마나 좋아. 내가 소설을 뭐 안다고. 읽고 토론하고 글 나부랭이 쓰며 입만 살았던 작가아닌가. 초짜답게 귀 기울여 듣고 배우자 한 건 공허한 구호였을 뿐이었구나,이불킥이었다.


솔직한 내 현주소였다. 어쩌겠나. 그래서 거금을 내고 배우겠다덤빈 거고 쓰겠다고 이 난리다. 카지노 게임은 내 몫, 바보처럼 안 보이려 할수록 더 바보 짓을 한다는 리를깨달은후의이 카지노 게임. 도망갈 데가 없었. 또 반복하지 말란 법도 없다. 계속가는 거 말곤 길이없다. 이걸 통과하겠다고25년을 돌아 돌아 다시 온 자리다.


나는 소설을 잘 모른다. 단편 하나 제대로 완성해 본 적 없다. 소설을 남달리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말고. 죽기 전에 꼭소설을 쓰고 싶다는 남 모르는 병이 있을뿐이다. 부끄러워지는 순간을 무서워하지 말자. 부끄러움은 내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아니 글쓰며 사는 삶에 지불하는 수업료다. 2주 후 합평받을 내 첫 작품을 완성하기, 그게 지금의 당면 과제란 사실만 잊지 말자.




부끄러움을 통과하기, 이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삶의 기술인지도 모른다. 나이 먹을수록 생각이 원만하고 너그러워진다는헛소리는잊자. 60세가 이순耳順이라고?생각하는 모든 게 원만하여 무슨 일이든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육십갑자(干支六甲)를 모두 누린 게 스팩이 되던 시대엔 그랬을 수도 있다. 60대를 죽을 둥 살 둥 통과중인 내게 그리고짝꿍에겐 이순耳順은 멀고먼이야기였다.


지난 목요일 저녁 '백합과 장미' 토론때도 그랬다.책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만만하지 않은 책이라 도입부를 읽고 또 읽고, 완독 후 또 읽었다. 운동도 안 나가고 아침부터 책상 앞에서 책을 씹고 뜯다가 하루 해를 넘겼다.작품속 눈밭만큼이나독서력이 답답했다. 나름 4.3에 대해 관심있, 작년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와 올해 <목소리들도 챙겨봤노라, 그런자위는소용없었다. 작품 속에 흐르는 정서에 젖어들기까지,그건 딴 문제였다. 4.3 사건이 배경에 있을 뿐, 외적인사건과 현상보단 사람의 내면 이야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토론에 참여한 6 사람도 나와 비슷했다. 진입장벽이 있었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 답답했다, 조금만 쉽게 써 주지, 서로 비슷한 느낌으로 위로했다. 그럼에도 수다가 진행될수록 한강 작가만의 이야기 방법과 캐릭터와 공간 설정이 이해되면서, 작품의 입체성이 더해지고 공감이 깊어졌다. 작가가 얼마나 공을 들이고, 힘든 시간을 통과하며 썼을지, 잊지 말자, 기억의 중요성까지 공감을 나누었다.


단 한 사람 예외는 짝꿍 덕이였다. 그는 '백합과 장미' 토론 6년에 '이프' 페미니즘 토론 10년 개근 중년 남성이다. 한강의 작품 세계가 이해하기 어렵고, 무슨 소린지 몰라 기분이 나빴다는 고백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작품에서 건진 게 하나도 없다며, 다른 사람들의 토론에도 호응하지 않더니 한다는 소리는 한강 작가 비난이었다. 불친절하고 어렵게 쓴 작품을 공부하듯 파고 싶지 않았다, 그게 잘난 척하는 거라 했다.


토론 동료들은 그를 이해한다 했다. 나 역시 평소 그의 독서 성향을 알기에 참아 넘겼다. 빠르게 책장을 넘기며 정보를 얻는 식의 독서 습관, 예술의 상징과 은유를 다큐처럼 읽는 그였으니까. 그러나 이번엔 너무 심했다. 10년 토론 경력이 독이 됐나 싶었다. 예술작품을 알고자 하는 의지도 노력도 하지 않는 태도가 보였다. 쓱 읽어서 재미있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아니며, 작가도 작품도 독자들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태도였다. 자신의 무식과 무지와 감수성 없음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정말 봐줄 수 없었다.


모임 후밤에 그가 굿 나이트전화를 걸어왔을 나는 결국 폭발했다. 이게 그만의 문제가 아닌 걸 알기 때문이었다. 잘못 배우고 익숙한태도를 그가 보인다 싶을 때마다 나타나는 내 반응이었다. 60대씩이나 돼서 익숙한 걸 엎고바꾼다는 게 얼마나 지리멸렬한 싸움인지. 내가 부끄럽고 그가 카지노 게임운 밤이었다. 다행히 다음 주 '이프' 에서 한 번 더 기회가 있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 읽고 참여하겠단다. 지켜 볼 일이다. 아, 카지노 게임, 이건 소설 쓰기에도 삶에도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수업료였다.




"이건 이해력이나 감수성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봐. 이해나 공감 정도는 다를 수 있어. 그러나 토론에 온 벗들이 모두 너처럼 말한다고 가정해 봐. 2시간 토론 쓸데없는 짓이지. 네가 한 말 생각해 봐. 기껏 한강 작가비난에문학상 비난이었어. 한강을 얼마나 알고 문학을 얼마나 알길래? 한강처럼 고생하며 소설 써봤어?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통과하며 쓴 책인 거 안 보여? 읽고 극찬하는 사람들이 다 바보 같아? 일베들과 극우들이 한강 노벨상 주지 말라고 지랄하던 태도랑 뭐가 달라? 자기는 몰라도 문제 될 게 없다는 태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잘 난 척하는 거라는 태도. 사람들을 싸잡아 문제 취급하는 그 뻔뻔함. 심각한 거 아냐?


책이 어려웠다고? 무엇이 어떤 대목이 그런지,질문하고, 듣고 배우려는 성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우리 결혼 생활에서 나를 대하는 태도랑 닿아 보여서 더 소름 끼쳤어. 알아? 자기 이해 범위를 넘어, 내가문제를 제기하면,넌 맘을 딱 닫았지. 내가 내 감정과 느낌을부인하고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만들던 그 태도. 페미니즘 덕에 인식을 확장한다며? 화숙이랑 같이 울고 같이 웃는 게 살 길이라 깨달았다며? 구호로야 뭔 소리를 못해. 실전에선 익숙한 태도가 나와. 안궁안물, 전혀 부끄럼 없이 세상 다 판단하는 태도. 토론 모임 책을 그따위로 대하면서 무슨 책으로 자기 인식을 넓혀? 동료들한테 들을 것도 배울 것도 없는데, 어떤 사람들한테 배워? 함부로 책 탓 작가 탓하는 태도,정말 꼴도 보기 싫어.내가 카지노 게임워 미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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