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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관찰자 Nov 22. 2024

잠시 동안의 평화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계원예고 입시를 치르고 카지노 게임는 약을 먹겠다는 약속을 새해가 되었을 때부터 지켰다. 다시 가기로 한 학교를 잘 다니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자기가 아픈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기에 약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마침내가다니고 있던정신과 의원에 여자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셨는데 카지노 게임가 좋아해서그 선생님께 약을 타서 먹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조울증을 진단하고 약을 잘 조절해 주셨던 원장님께 진료를 받게 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뿐 아니라 환자와 다정하게 소통하는선생님을 딸카지노 게임는 선택했다.엄마인 나는 하루라도 빨리 카지노 게임에게 맞는 약을 찾아 카지노 게임가 안정을 찾고 평범하게 일상을 잘 사는 것이 소원이었기에 사실 친절한 의사 선생님보다는 실력이 좋은 의사 선생님이 더 간절했다.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이 실력도 좋아 카지노 게임의 상태에 따라 약을 잘 조절하실 수 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카지노 게임는 여기 병원에서는 '조울증'이라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조울증에 도움이 되는 약부터 먹기 시작했다. 다행히카지노 게임는 약을 먹으면서 새 학기가 되기 전까지는 한동안 안정적인 생활을 하였다.


한 가지 작은 소동이 있었는데 계원 예고를 합격하고 그 학교를 진학하려던카지노 게임의 생각이 예비 소집을 다녀오고 나서 바뀌었다. 교복도 이미 다 맞추었고 새 학기를 대비하여 곡도 여러 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카지노 게임는 계원 예고는 진학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기에게 아무리 음악적 재능이 있어도 그렇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음악인의 길을 가고 싶은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대신 일반고로 전학을 가서 공부를 해서 진로를 정해서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결정하게 것은 장차 직업을 갖게 되었을 경우 그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의 비용과 효용성을 카지노 게임 스스로 집안형편을 대비하여 고려한 점도 있었지만 카지노 게임가 발레와 클라리넷을 하면서 겪었던 우리나라의 전문 예술인이 되는 과정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도 있었던 것 같다. (카지노 게임는 클라리넷을 하기 전에 엄마의 권유로 운동삼아 시작한 발레에 몇 년간 진심이었으나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체형의 한계로 발레를 포기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입시와 경쟁 중심인 명문 학교의 타이트한 스케줄과 입학 전이었지만 지방 출신인 카지노 게임를 제외하고 이미 형성되어 있는 관현악 카지노 게임들 끼리끼리의 분위기에도 적응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점도 있었으리라 본다.


우리 부부와 지도 선생님은 클라리넷을 완전히 내려놓기엔 소질이 너무 아까워 취미로라도 계속하기를 바랐지만 카지노 게임는 이번에도 단호했다. 일반고로 가기로 한 이상 공부에만 전념을 하겠다고 했고 자기는 공부와 클라리넷 두 가지를 모두 동시에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카지노 게임와 전에 입시를 치를 때에 약속한 것이 있었기에 우리 부부는 계원고를 가지 않겠다는 카지노 게임의 뜻을 일단 받아들였다. 카지노 게임는 나중에 클라리넷을 다시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지도 선생님과 우리 부부는 그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보여주었던 카지노 게임의 음악적 기량이 카지노 게임 인생에 있어 쉽사리 묻힐 부분이 아니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단지 지금은 카지노 게임가 생각이 깊어 여러 가지 현실을 고려해서 공부를 하겠다고 완강히 말하지만 나중에 클라리넷을 또다시 하겠다고 하면 그때 가서 하도록 우리 부부는 지켜볼 생각이었다.사실 클라리넷을다시 하느냐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단지 엄마가 보기에 딸카지노 게임는 공부보다는 손기술과 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편이었는데 자신의 강점을 자기도 알게 되기까지는 전심으로 공부를 직접 해 보면서 스스로 깨닫는 편이 나아 보였다.십 대인 카지노 게임와 실랑이를 하는 것보다 카지노 게임에게 시간을 주는 편이 카지노 게임가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 가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클라리넷을 하기 전 발레를 하면서 체중관리가 몸에 밴 딸카지노 게임는 날마다 팔 굽혀 펴기, 자전거 타기 , 계단 오르내리기 등 스스로를 트레이닝하는데 열심히였고 공부는 학원이나 과외 대신에EBS 무료강의를 이용해 자기 주도하에 선행학습을 하면서 일상을 알차게 살았다. 단지 영어 문법은 카지노 게임가 엄마의 도움을 요청했기에 시중의 교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풀었다.반면에 카지노 게임가 정서적으로 불안감이 커서 여전히 엄마를 필요로 했기에 날마다 일상을 카지노 게임와 함께하면서 밤에도딸카지노 게임 옆에서 카지노 게임의 말을 들어주고 힘든 점들을 나누고 다독이며 카지노 게임를 재우는 나의 일과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점점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카지노 게임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하거나 심하게 강박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혼자 밖을 못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학교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 가정은 한동안 평화를 누렸다.


다음의 시는 카지노 게임가 어느 날 밤에 문득 떠올랐다고 하면서 스케치북을 꺼내더니 배경으로 큰 나무를 그리고 그 안에 시를 써서 우리 부부에게 준 것이다.그동안 고생이 되었지만 카지노 게임에게 부모의 인내 어린 사랑이 전해지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한동안 감동이 되었다. (사랑 = 오래 참고*100...ㅠㅠ)


제목 : 감사의 사계절


꽃씨 속에 숨어 있어도

나를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여름 소나기 같이 쏟아져도

나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아도

나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 눈보라 같이 몰아쳐도

나를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계절을 굳세게 버틴 나무처럼

나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늘 건강하시고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아가요!


그리고 나는 딸카지노 게임의 바람대로 일반고 전학을 알아보아야 했다. 전기 예고에 합격하면 후기 일반고로 다시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예고에 일단 입학해서 일반고로 전학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 전 세대가 전출하고 전입하는 과정도 거쳐야 했고 다소 절차가 복잡하였다. 여차여차 모든 서류를 구비하여 전학 절차를 밟았고 일반고지만 지역 카지노 게임들 선호도가 높아서 보통은 배정되기 어려운 집 근처 고등학교를 카지노 게임가 원하는 대로 운 좋게 진학할 수 있었다. 전학 처리를 담당하셨던 교육청 직원분이 다시 학교를 가겠다는 카지노 게임의 의지를 예쁘게 봐주셔서 힘을 써 주셨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과정 하나하나가 카지노 게임에게 그리고 우리 가정에 부어지고 있었던 특별한 도움의 손길(은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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