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왜 저리 쓸쓸할까.'
다시 본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박동훈(이선균 배우)은 너무도 쓸쓸한 사람이었다. 극이 진행되어도 박동훈이 왜 쓸쓸한 사람인지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왜냐, 이유가 크게 없기 때문이다. 타고나길, 혹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체화된 감정, 정서, 그런 걸까.
박동훈이 한 번씩 한숨을 내뱉을 때마다 알 수 없는 갑갑함이 몰려왔다. 왜 저 사람은 쓸쓸한가. 사람마다 쌓아 올린 것들이 있다면 왜 하필 저 사람은 저렇게 되어버렸는가.아무도 이해 못 하는 쓸쓸함을 감추고 하루를 보내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야 한 번씩 뱉는 저 한숨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지만 실은 그것이 자신인 것이 누구에게나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 나도 있을까. 나는 무얼까. 드라마를 봤을 뿐인데 화살이 내게 돌아왔다. 나는 무얼까. '쓸쓸함'처럼 한 단어로 말할 수 있을까.
'괜찮다'.
나는 내가 괜찮아 보이는 게 중요한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에게도, 남들에게도 괜찮아 보이길 원한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과는 다르다. 남들보다 내게 괜찮아 보이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실패'들도 없었던 일인 것처럼 무시하거나 합리화해 존재를 지우기도 한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간을 본다. 할 수 있겠다 싶은 건 열심히 하고, 좀 안 될 것 같은 건 그럴듯한 쿨해 보이는 변명을 만들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자신이 없어서가 절대 아니다. 나는 잘할 수 있다. 다만,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가 있어서 같은 이유들 때문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도전이 당최 진지해지질 않는다. 실패할 경우, 언제든 안전망이 몇 초만에 준비된다. '이게 이래서 이런 거지, 내가 그런 게 아니라...' 그래서 나는 언제나 괜찮다. 나는 진정한 실패를 겪지 않으니까. 진짜 끝까지 해서 실패를 해도 실패에서 얻는 교훈 따윈 없다. 좋은 변명거리를 생성해 낼 뿐이다. 대체 누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을 했나. 내게 실패는 변명의 어머니일 뿐.
박동훈이 도대체 왜 쓸쓸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나도 내가 괜찮아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을까. 내게 정신승리는왜 이리 중요한 걸까. 나는 왜 회피하는 성향이 생긴 걸까.
여기서 또 '성장과정'을 운운해야 하는 건가.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은 내 편이었던 적이 없었고,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는 지난하고 지루한 과정을 풀어내야 하는 건가. 벌써 질린다, 질려. 질리지만 굳이 이유를 찾으려니 그거 말곤 없긴 하다. 드라마 속 인물처럼 어린 시절부터 트라우마가 된 일들을 회상씬을 통해 보여주자면 몇 가지 씬들이 대부분 그런 내용이긴 하다. 혼자 방에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무릎을 끌어안고 우는 걸 들킬까 두려워 입을 막고 울던 씬들, 집이 아닌 공간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는 괜찮지 않은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 몸집을 키워 공격력을 올려보려는 동물들처럼 나를 숨기고 다르게 행동했던 씬들. 만약 심리 상담을 하는 곳에서라면 쉽게 결론 내릴 만한 에피소드들이다.
그러면 진짜 나는 그래서 그런 걸까. 그건 알 수 없을 거다. 드라마에서도 쉽게 알 수 없던 걸 현실 인물인 내가, 나의 철저히 비객관적인 관찰자인 내가 내리는 결론이 뭐가 얼마나 맞을까. 사람의 일 중에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따질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할까.
따질 수 없는 일은 내버려 두고 내게 맞는 한 마디를 다시 생각해 본다. 아! '카지노 가입 쿠폰'.어릴 때부터 참 꾸준히도 좋아하고 잘하는 일, 카지노 가입 쿠폰. 지금도 아이와 제일 좋아하는 활동이 이불 위에서 카지노 가입 쿠폰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방에 이불이 상시 대기해야 한다.
뒹굴뒹굴. 발음도 재밌고 좋다. 뒹굴뒹굴. 뒹굴뒹굴하다 보면 모든 게 괜찮게 느껴진다. 뒹굴뒹굴. 여기저기에 서 있는 날을 잠재워준다. 뒹굴뒹굴. 변명이나 가장으로 만든 괜찮음이 아니라 진짜 괜찮음을 만들어준다. 뒹굴뒹굴은 점점 나를 노곤노곤과 말랑말랑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이런 긍정적인 단어를 두고 '괜찮다' 따위를 떠올리다니. 앞으로 나의 단어는 '뒹굴뒹굴'이다. 그러려면 좀 더 뒹굴뒹굴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지금 하는 시간으로는 택도 없다. 요즘 난 뒹굴뒹굴의 대명사라고 하기엔 너무 부지런하다.내일부터 뒹굴뒹굴, 뒹굴뒹굴. 누워서 무릎을 잡고 좌우로 흔들면서 뒹굴뒹굴을 열 번 외쳐야겠다. 왠지 더 뒹굴뒹굴해질 것 같...은데 왜 자꾸 뒹굴뒹굴이 둥글둥글로 보이면서 둥글둥글해진 내 몸이 떠오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