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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Feb 22. 2025

카지노 가입 쿠폰 1900 꿈꾸는 예술가들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19세기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카지노 가입 쿠폰로의 초대

카지노 가입 쿠폰 1900, 꿈꾸는 예술가들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국립중앙박물관

2024.11.30~20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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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럽아트투어 저자 박주영입니다 ^^

지난 12월 초에 다녀온 전시인데, 글쓰기를 너무 오래 미뤘네요. 전시기간이 몇 주 남아있으니 아직 안 가보신 분들은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제 책에서도 다루었던 비엔나 3대 미술가중의 한 명인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이 여러 점 있어서 더더욱 반가웠던 전시입니다. 한국에서는 코코슈카의 작품을 만나 본 기억이 없는데… 이렇게 여러 작품이 와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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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오스카 코코슈카 <피에타, 1909, 연극 <살인자, 여성들의 희망을 위한 포스터 오른쪽: <목화솜 따는 소녀, 1908, 비엔나 예술전람회 포스터, 1908년


왼쪽: <양쪽에서 본 자화상, 1923 오른쪽: <양쪽에서 본 화가의 자화상, 1923 취리히 볼프스베르크에서 열린 코코슈카 전시회를 위한 포스터


왼쪽: <빅토어 리터 폰 바우어, 1914 오른쪽: <헤르만 슈바르츠발트. , 1916


지난가을에 출간된 <유럽 아트 투어에 소개한 <코코슈카의 사랑 편 참고해 주세요.

/@e8aa65a1a1c4482/77


비엔나는 음악가, 작가, 아티스트, 건축가, 심리학자 등 많은 위대한 예술가와 학자들이 탄생한 곳이고, 500여 년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사와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수도였지요. 저는 비엔나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휘리릭 대충 보는 여행으로 그야말로 스쳐 지나가기만 했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가서 깊게 알고 싶다며 아끼던 도시예요. 올해 야심 차게 비엔나 한 달 살기를 계획하고 있어서 예습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다녀왔습니다.


전시를 가기 전에 책 몇 권을 읽어보았어요. 한국경제신문에서 출간한 <카지노 가입 쿠폰 1900 꿈꾸는 예술가들과 <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실레는 전시를 타깃으로 출간한 만큼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박종호선생님의 <빈,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이 두 권은 비엔나를 이분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구석구석까지 아름답게 소개한 책이에요.


이번 전시는 비엔나의 <레오폴트미술관, Leopold Museum 소장품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미술관은 19-20세기 전후 오스트리아 예술품을 8,000여 점 소유하고 있습니다. 소장품은 루돌프 레오폴트 (Rudolf Leopold, 1925~2010)와 그의 부인 Elisabeth가 50여 년간 수집한 작품들로, 당시에 음란하고 퇴폐적이라고 평가받던 에곤 실레 (Egon Schiele, 1890~1918)의 작품을 최다 보유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유명합니다. 실레의 작품수가 전체 소장품의 1/4 가까이 된다고 해요.


에곤 실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1912


안톤 요제프 트르치카 <에곤실레 사진, 1914


에곤 실레 <긴 머리를 한 자화상, 1907


이번 전시에서도 에곤 실레 작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실레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누드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짧은 인생 전체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구성되었어요. 저는 마지막 부분에 전시되어 있던 마을풍경들과 <골고다의 언덕도 신선했습니다


에곤 실레 <골고다 언덕, 1912


에곤 실레 <블타바강가의 크루마우, 작은마을 IV, 1914


에곤 실레 <작은마을 III, 1913


에곤 실레 <도나우강의 슈타인 마을 II, 1913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오스카 코코슈카 (Oskar Kokoschka, 1886~1980), 리하르트 게르스 (Richard Gerstl, 1883~1908)의 회화 뿐만 아니라 <카지노 가입 쿠폰 디자인 공방의 창립 멤버인 요제프 호프만 (Josef Hoffmann, 1870 ~1956)과 콜로만 모저 (Koloman Moser, 1868~1918) 등의 가구와 공예품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토 바그너 디자인, 제작: 야코프& 요제프 콘 <안락의자, 721번, 1902 카지노 가입 쿠폰 전신국을 위한 디자인


오토 프루처 디자인, 제작: 마이어스 네페 <와인잔, 1907년경


관장이자 컬렉터였던 루돌프 레오폴드의 특이점은 비엔나 의과대학교를 졸업했고 (프로이트의 후배임) 에곤 실레와는 아무런 친분이 없었다는 점이에요. 학생 때 비엔나미술사박물관에서 작품 감상을 하는 중에 깊은 감동을 받은 레오폴드는 아름다운 작품을 모아보겠다는 꿈을 갖게 됩니다. 졸업 후에 안과 의사가 된 그는 예술품 수집의 꿈을 실현해보고자 하였으나 거장들의 작품을 소유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어요.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리 비싸지 않았던 당대의 카지노 가입 쿠폰 화가들의 작품을 한점 두 점 구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1950년 여름, 레오폴드는 세간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에곤 실레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었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됩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어수선한 정세 속에서 28세에 세상을 떠나 에곤 실레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때였지요. 더군다나 그의 작품은 퇴폐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루어 세상에 내놓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했고요. 레오폴드는 실레 작품의 날카로움에 반하게 됩니다.


에곤 실레 <누워 있는 여인, 1817


왼쪽: 에곤 실레 <파란 스타킹을 신고 앞으로 몸을 숙인 누드, 1912


1900년대의 비엔나는 여러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독특한 예술정신을 공유합니다. 이 전시를 보면서, 눈여겨보아야 할 작가들이 몇 명 등장하죠. 제일 중요한 인물이 우리가 사랑하는 구스타프 클림트. 1897년 비엔나 예술가들은 구스타프 클림트를 회장으로 <비엔나 분리파, The Vienna Secession를 결성하게 됩니다. 과거의 예술과는 단절하고 새로운 양식의 예술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정신으로 출발하였고, 미술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공예, 가구, 디자인, 건축까지 폭넓게 적용됩니다.


<비엔나 분리파에서 활약하던 클림트는 전시개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전시회를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부터 작품을 거는 공간 디자인까지 모든 영역이 예술이라는 <총체예술 개념을 실현하며 비엔나 분리파의 철학을 보여주었어요. 이번 전시에서 포스터가 많이 소개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왼쪽: 알프레드 롤러 <제16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1903 오른쪽: 루돌프 칼바스 <쿤스트사우 빈 (비엔나 예술전람회) 포스터, 1908


이들은 예술의 통합을 뜻하는 <총체예술을 모토로 1902년에 <제14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이 전시는 <베토벤을 주제로 전시가 개최했기 때문에 <베토벤 전시회라고도 불립니다.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고전파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전통과 형식을 탈피하는 낭만파 음악시대를 열었지요.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들은 베토벤의 철학을 이상적인 롤 모델로 삼고 존경을 담아 전시를 기획하였어요. 특히 클림트는 베토벤 사망 75주기를 기념하여 베토벤의 교향곡 9번 4악장을 모티브로 대작을 완성합니다. 높이가 2미터, 너비가 약 34미터인 <베토벤 프리즈 작품이에요. 이번 한국전시에서도 베토벤과 관련된 작품과 자료를 여러 점 볼 수 있었어요.


알프레드 롤러 <제 14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 1902


1907년, 17세가 된 실레는 클림트를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클림트는 한눈에 실레의 천재성을 알아보았고, 아낌없는 후원을 해주었어요. 클림트 덕분에 실레는 많은 예술가와 후원가, 수집가들을 소개받으며, 천재 예술가로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정서적으로 풍족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왼쪽: 에곤 실레 <가을 숲, 1907 오른쪽: 에곤 실레 <언덕 아래의 마을, 1907


에곤 실레 <국화, 1910


에곤 실레 <어머니와 아이, 1912


1908년 <비엔나 예술 전람회에서 클림트가 실용예술도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1903년에 설립된 <비엔나 디자인 공방도 힘을 얻게 됩니다. 이 공방은 요제프 호프만과 콜러만 모저가 주도해서 창립하였고, 건축과 가구 디자인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했어요.


왼쪽: 클로만 모저 <빛과 색의 마법, 모저의 꽃 그림, 1909 오른쪽: 클로만 모저 <동굴 속의 비너스, 1914


1918년 2월, 비엔나 예술계의 대부였던 클림트가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뇌졸중과 폐렴으로 갑작스레 사망하게 됩니다. 클림트가 떠난 해에 개최된 제49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에서 에곤 실레는 포스터 제작도 하고, 자신의 작품이 몇 배나 비싼 가격에 전부 다 판매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주목받게 되지요. 28세밖에 안된 실레의 시대가 열리는가 싶었으나 그도 같은 해 10월에, 임신 6개월이던 아내가 죽은 지 3일 만에, 같은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에곤 실레 <원탁, 제 49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1918


25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리하르트 게르스는 1908년에 세상을 먼저 등졌고, 1918년에 클림트와 실레가 동시에 떠나게 되면서 코코슈카만 남게 되지요. 두 천재 화가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꽃이 피기도 전에 떨어져 버렸어요. 그 짧은 시간에 남긴 그림도 이렇게나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 쏟아냈는데, 평범하게 명을 다했다면 얼마나 다양한 그림을 남겼을까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방대한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뼈대만 살펴보았어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20세기 비엔나의 정신이 예술, 가구, 디자인, 건축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작가별로 천천히 살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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