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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Jan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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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없는 그 자리에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

아이가 잠들기 전, 말을 건다. “엄마, 내일은 누구보다도 예쁘게 꾸미고 와야 해, 누구보다도 예쁘고 당당하게 와야 해,” 나는 약속한다. “그래, 최대로 예쁘게 하고 가서 너를 축하해줄게.” 아이는 안심한 듯 잠에 든다. ‘그래, 최대한 화려하고 예쁘게 갈게, 걱정하지 마’ 잠든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여준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지만 그 말은 나에게도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대의 몫까지

졸업식 당일, 아이를 단정하게 꾸며준다. 어떤 스타일로 머리를 할지 고민하는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졸업식을 위해 준비해 둔 옷을 입히면서 어느새 이렇게 많이 자랐나 생각이 드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의 얼굴에서 그의 얼굴이 잠시 겹친다. ‘참 많이 닮아가는구나.’ 아이에게서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이 한 번씩 보일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아이를 학교로 보내고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한다. 오랜만에 고데기를 꺼내 머리를 탱글탱글하게 말아본다. 쓰지 않던 붉은 색 립스틱을 꺼내어 발라본다. ‘아, 얼마만 인가.’ 립스틱만큼이나 내 얼굴도 화사해 보인다. 이내 휴지로 립스틱을 닦아내고 늘 바르던 연한 베이지 톤 립스틱을 바른다. 이제야 나다워 보인다. 친정엄마는 내가 화장하고 립스틱을 연하게 바르는 것을 늘 못 마땅해하셨다. 연한 입술 때문에 얼굴이 늘 어두워 보인다며 입술화장을 강조하셨다. 아이의 바람대로 최대한 날씬한 허리를 강조한 투피스를 입고 힐을 신는다. 혜정 언니에게 부탁한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나는 주인공처럼 아이의 학교로 또각또각하는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졸업식장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엄마와 아빠는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들, 선생님들 모두 모여 졸업생의 앞날을 축복해 준다. 내가 졸업하던 때와는 다르게 졸업장을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나누어 준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일일이 다 안아주시며 고생했다며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아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분주하다. 엄마는 사진을, 아빠는 동영상을 찍어대며 각자가 담당한 역할을 해 나간다. 이번엔 내 차례다. 나는 남편이 없으니,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다. 찰나의 순간, 사진이 좋을까, 동영상이 좋을까 고민하다 나는 사진을 선택했다. 사진을 잘 찍었다 안심하다 동영상을 선택할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온다. 남편이 없으니 이래저래 혼자 감당할 몫이 많아진다. 화가 났다. 이런 사소한 하나도 선택 못하고, 선택한 것에 흔들리는 내가 너무 미웠다. 둘이 왔다면 다 해결될 문제인데 나는 왜 여기, 이렇게 혼자 있는 건지 너무 서러웠다. 그 순간 나는 또 누군가를 탓하고 말았다. 아무 소용도 없는 남 탓, 나는 또 절망의 구덩이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빠 없는 빈자리를 느낄까, 걱정된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달음에 수원으로 올라오셨다. 아이들과 내가 느낄 허전함을 채워주시기 위해 모두 와주셨다. 친정엄마, 친정 아빠, 시어머님, 시아버님, 고모들, 교회 장로님, 사촌 동생들, 그리고 남동생 모두 13명이 졸업 축하 파티를 했다.남편은 아이들이 2학년이 된 5월, 암진단을 받고 수술했다. 서울 아산병원까지 수술이며 항암을 하러 다니는 동안 엄마와 아빠는 나 대신 아이들을 돌보아 주셨다. 시어머님은 남편의 무농약 채소와 과일을 챙겨주셨다. 사촌 동생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영화도 보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며 아이들을 알뜰히 살펴줬다. 때때로 응급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 있을 때마다 새벽에 자는 아이들을 돌보아 주신 큰고모, 조카가 어떻게 살지 늘 걱정 많았던 막내 고모, 심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같이 기도해 주시던 장로님, 누나와 조카들 도와주려고 열심히 일해 매달 꼬박 용돈 주던 남동생까지 모두 아이들과 내게 너무 감사한 사람들이었다. 남편도 고마워했을 사람들이었다. 내 사람들. 그들이 또 나를 구덩이에서 건져 낸다. 자꾸 땅속으로 빠져드는 나를 잡아준다. 온몸으로 나에게 힘을 준다. 나는 헤어 나올 수 없었던 구덩이 위를 올려다본다. 그들은 모두 「해님 달님」에서 오누이를 살렸던 동아줄이 되어 나를 잡아 이끈다.또 나를 살린다.


그날 저녁,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카톡’하고 연이어 문자들이 들어온다. 카톡 화면 창을 보다가 피식 웃는다. 친정아버지가 찍은 초점 나간 아이들 졸업사진, 각도가 이상한 동영상을 보며 나는 또 마음이 벅차올랐다.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둘이 아니어도 어딘가에서 나를 도와주는 그들의 손길이 있었구나.’ 순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남편은 없지만 내 옆에는 천군만마의 내 사람들이 나를 오롯이 지탱하게 도와주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참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이지연

아들 쌍둥이를 씩씩하게 홀로 키우고 있는 엄마이자 아이들에게 영어와 미디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수원 공동체 라디오 Sone FM에서 "그녀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DJ를 하고 있다.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으며, 부족하지만 그림 감상과 글쓰기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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