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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 사이트 쓰다가 생겨난 6개의 인격들 - 내게 글쓰기란

내 맘대로 끄적이는 매거진 탄생 설화



요즘 책 한 권에 빠져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다. 이 책이 내 삶에 중요하리라는 직감에 다른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시시때때로 여기 집적 저기 집적 여러 글숲을 난도질하며 다니다가, 결국 엉뚱한 길을 내고 말았으니, 이 글이 바로 그 길이다.


숲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브런치를 시작한 이래 점점 더 울창해지는 숲에 길을 내고 있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여섯 갈래의 길을 냈다. (곧 일곱 번째 길이 나오려는 듯하다)

누가 말했다. 애초부터 길은 없다고, 걷다 보니 길이 될 뿐이라고.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생겨난 여섯 갈래의 길 역시 마찬가지다. 걷다 보니 길이 됐다.

그 길들은 언뜻 봐선 마치 서로 다른 길인 양 갈라져 있으나 알고 보면 결국 모두 같은 곳에서 출발해, 한 곳으로 도착한다. 다중카지노 게임 사이트자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모두 한 몸에서 나오듯이 말이다.


끊임없이 주위에서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그 소란스러움의 원흉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내 마음이 소란스럽기에 주위도 따라 소란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미경적으로는 시끄러운 화학 작용이 거시적으로는 안정적인 분자를 만들듯이, 마음 구성 요소들의 소란스러운 작용이 성숙하고 안정된 나를 창조할줄로 믿는다.


그렇게 소란 속에 머물던 중, 얼마 전 상상력과 믿음의 숲을 발견했다. 벌써 두 달 전쯤이다. 그 숲의 나뭇잎들은 바늘처럼 내리는 현실의 비를 맞고도 뚫리지 않고 보란 듯이 잘 자라고 있었다.

그 숲을 발견한 뒤로, 한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게 너무나 중요해서 다른 모든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 쓰는 일조차도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쓴 글의 내용들은 아무런 진실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빌자면, 기껏해야 그림자 한 조각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상상력과 믿음의 숲에서 이데아를 나름으로 이해하게 됐다. 물론 플라톤 철학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림자 너머의 이데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뜬구름 잡는 허황이 아니라, 이 현실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됐다는 말이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언정 어쨌든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은 지식이라 부를 수는 없는 종류였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기어이 유머의 숲까지 발견하고 말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레이건 대통령의 유머를 시청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진실이 그 유머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참된 현실은 바깥 세계에 있지 않다. 유머는 바깥의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진실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데아가 이해되자 유머와 이데아가 한곳에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레이건 대통령은 저격을 당해 죽을 위기에서도 농을 쳤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또 어떤가?)

레이건 대통령은 살고 죽음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오로지 신의 영역이기에 오히려 죽음 따위 내가 신경 쓸 일 아니라는 듯 행동했다.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면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일지라도 애초에 용기조차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렴, 신경 쓸 필요조차 없는 일에 무슨 용기가 필요할까?


유머란, 두려운 현실에도 아랑곳 않는 진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의지의 표현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발휘되는 레이건 대통령의 유머는 국민들을 희망으로 이끌었다. 우리가 현실의 비참함을 극복하고 도달해야 할 진실을 보여줬다. 심지어는나 역시 유머가 가능하리라는 망상까지도 슬쩍 품고 말았으니... 아니, 그보다는 유머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생각해 보면 망상도 아니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과거에 '똥구멍에 츄파춥스'라는 개그 클럽에 잠시 몸담은 적이 있었다. (자기들만의 세계가 최고라 믿는 흔하디 흔한 자뻑 모임, 주변에 한둘씩 있잖은가. 나도 한때 그 안타까운 일원이었다)

마이너한 라디오 방송에도 잠깐 등장할 뻔했으나, PD의 방송 불가 판정으로 편집당했다.

당시 멤버는 네 명이었는데, 나는 그중 '파'를 담당했다. 현재 '츄'와 '춥'과 '스'는 나름 잘 살고 있다. 그때 나는 유머 없는 유머를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진실 없는 유머였다. 진정한 유머 혹은 진실을 품은 유머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웃음을 주지만, 진실 없는 유머는 속 빈 강정일 뿐 상대를 공격하고 불쾌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어쩌면 내게도 아직 유머의 인격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써오며 내 안에서 예상치 못한 여러 인격들과 마주치고 있었으니까.


자, 그래서 오늘은 그 6 개의 인격을 얘기하려고 한다.

(7번째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니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자)








빌리 밀리건이라는 책을 아는가? 24개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가진 남자에 대한 얘기다. (꽤 재밌다)

넷플릭스 다큐로도 만들어졌었다.

영화 23 아이덴티티가 이 책을 모티브로 했다는 말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중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지니고 있다. 병적인 의미는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건 진짜 내가 아니야. 직장에서의 나는 거짓이야. 사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인데 과연 그걸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집에서의 나.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의 나.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과있을 때가 진짜인가. 그러면 왜 결혼 후 변하는가 진짜인데. 그럼 집에 혼자 있을 때의 내가 진짜인가.


이 질문의 ‘진짜’ 문제점은 일관되고 모순 없는 단 하나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만이 진짜라고 가정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관되지 않은 사람을 비난하지만, 실제로 일관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 비난을 하는 사람조차도. 사람은 애초에 다양한 면면을 지니고 있다. 그편이 더 자연스럽다.


굳이 진짜 나를 정의하자면 그것은 규정할 수 없는, 존재 그 자체, 라고 말하고 싶다. 특정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나 가치관이 부여되기 이전의 나. 일종의 지금 내 자아의 프로토타입. 형이상학적인 존재 그 자체. 이런 의미에서 나 자신의 정체를 온전히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우주 전체를 한눈에 보기가 불가능하듯이. 그러나 어느 정도 느낄 수는 있다.우주인이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고 느끼게 되는 초월적인 인식처럼. 혹은 우리가 대자연을 접할 때 느끼는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인 경이로움 따위가 조금이나마 비슷할지 모르겠다.

사실 존재 그 자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막연하게 하는 말이니 깊게 파고들지는 말자.


어쨌든 나는 그런 의미에서 현재 여섯 개의 인격으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계속 내 인격이 갈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플라나리아처럼. 서두에서 밝혔듯 이 6갈래의 길은 모두 같은 곳에서 출발해, 한곳으로 도착한다. 나라는 하나의 몸뚱이에서 출발해 먼 훗날의 나, 라는 동일하지만 또 다른 하나의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다양한 여정인 셈이다. 그리고 이 길들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그저 숲에 가려졌을 뿐.

아마 앞으로 더 발견되겠지.


이 여섯 개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모두 동등한 위치와 권위를 가지고 있다. 어느 하나만이 진짜 내가 아니다. 고정된 나는 없다. 어떤 면에서는 허상의 집합이 실체가 된다. 양파는 겉보기에는 단단한 구체지만, 까면 갈수록 벗겨지기만 하다가 결국 빈속만 남는다. 그렇다고 양파의 실체가 빈속이다 라고 할 수는 없다. 마트료시카도 그렇고. (기네스북에는 마트료시카 최대 인형 개수가 72개까지 등재돼 있다 한다. 그리고 모든 인형은 표정이 다르다. 그렇다면 그중 누가 진짜 마트료시카인가?)


사람은 누구나 모순이 있고, 일종의 다중카지노 게임 사이트자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다중카지노 게임 사이트자이다.

6 종류의 매거진, 소설을 쓸 때와 시를 쓸 때, 잡설을 쓸 때, 건강학개론을 쓸 때 등등, 모두 다른 생각과 느낌으로 글을 쓰게 된다. 말하자면 각 매거진의 이름은, 앞서 언급한 빌리 밀리건의 책을 끌어다 쓰자면, 그의 하위 인격인 아서, 레이건, 앨런, 토미라고 봐도 되겠다.

브런치는 이런 일관되지 않은 면면을 다중카지노 게임 사이트자라 비난받지 않고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이다. 이 공간의 큰 장점이다. 바깥세상에서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미친X이나 또라이라고 불리기 십상이다.

또한 이렇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쓰면, 나 자신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개발시키는 동시에, 나라는 사람의 면면을 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실험을 거치다 보면, 나에게 가장 적합한 장치? 혹은 무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 같고, 이를 알게 되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고 만족할 수 있을지도 조금 더 빨리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기본 원칙은 마음 가는 대로 쓰자이다. 즉, 무의식을 어느 정도 퍼올리는 게 중요하다. 무의식은 언제나 마중물이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그 무의식을 마중물로 끝내지 않고 얼마나 깊이 들어가 퍼올리느냐에 있다. 표면만 떠다가 쓰게 되는 경우가 있고 저 깊이까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너무 깊이 들어가면 감정적으로 감당이 안 될 수도 있다.(이 경우 이런 글은 고이 묻어둔다. 죽었던 글이 부활하려면 내가 새 사람이 돼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면, 기꺼이 공개할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이런 글은공개카지노 게임 사이트 해도 아무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6개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들여다보자.








1. 삶과 일에 대한 잡설


일단 에세이라고 불러도 되겠지만, 에세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는 듯해 잡설이라고 부른다.

가장 편한 무대이다.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이면 된다. 지금처럼 말이다. 일단 형식이 없다. 그래서 필 가는 대로 시처럼 혹은 경구처럼, 혹은 그냥 산문처럼 때로는 수학 공식처럼 마구 쓰면 된다.


여기서는 가지치기(가지를 자른다기보다는 분지를 냄)가 잘 일어난다.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나오는 대로 가지치기해 나가면서 무의식을 적절히 활용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러면서도 의식적으로 약간의 절제를 가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때로 의외의 말들이 나오기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 말들에 나 자신이 놀라기도 하고, 그 말들이 나 자신을 깨닫게 하기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지금껏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쭉 뻗어나가면 그만이다. 편하다. 내면을 발견하기에 좋다.


그러나 이 글을 쓸 때는 너무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되고, 너무 닭살 돋아서도 안된다. 상상력은 어느 정도 제한된다. 여기서 발휘되는 상상력은 현실적인 상상력이다. 비현실적인 상상력은 안된다.

이 무대는 그렇다.




2. 시는 아닙니다만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시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시가 뭔지 잘 모른다.


어떻게든 정의하자면,

시는

뻔한 것들의 무덤이거나

뻔한 것들의 찬양



아무튼 여기서는 그냥 감성적이면 된다. 처절하게 감성적이어도 되고, 자기 필에 흥청망청 취해도 된다. 그런 무대라고 생각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쓰게 된다.


여기서는 잡설보다는 상상력을 풀어놓게 된다. 그러나 이 상상력은 특정 이미지에 한정되는 수가 많다. 일종의 사진이나, CF, 단편 영화 같은 느낌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의 이미지처럼 말이다.

다만 그 이미지에 내가 살아왔던 역사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체로 느껴져야 한다. 그 이미지가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그냥 막연해도 된다. 다만 현실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그것을 약간 현실화한다는 기분으로 쓰게 된다.




3. 건강학개론


이것은 냉소와 비판,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이다. 의학에 대해 쓸 수 있어서 좋다.

다만 처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시작했을 때의 문체와 분위기를 유지해야 해서 그 역할에 약간 몰입해야 한다. 그렇긴 해도 재밌는 역할극 같다. 영국식 블랙코미디언이 된 기분이다.


상상력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지식을 위한 지식이 몸과 마음을 망친다는 사실을경계하기 위해 쓴다.




4. 나에게 쓰는 편지


개인적으로는 가장 쉽게, 또 빨리 쓰게 되는 글이다. 큰 고민 없이 써진다.


나의 모순과 생활 속 부족함, 실망, 희망 등을 쏟아내면 된다.

솔직하게 내 부족함을 다그칠 수 있어서 좋다. (100퍼센트 솔직할 수는 없다. 그런 글은 묻어둔다. 살아날 수 있을 때까지)

나에게 동기부여가 돼서 좋다.


지금은 이 매거진을 쓰기가 약간 힘들어졌는데, 그 이유는 얼마 전 발견한 상상력과 믿음의 숲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실의 소낙비가 전보다 사소하게 느껴지는 중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여전히 나는 현실 속에 살고 있고, 그 가운데 계속 실패와 좌절과 실망을 안고 갈 수밖에 없으므로-다시 말해 불완전하므로, 있는 그대로 현실의 비를 맞는 장면을 써 내려가면 될 것 같다.

그 비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그러다가 언젠가 나에게 쓰는 이 편지는 끝나게 되리라.

(비가 줄어든다기보단 비가 내려도 더 이상 비를 맞지 않게 된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과연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일종의 예언서처럼 변해가는 모양새를 볼 때 오래가진 않을 듯하다.




5. 소설 :모든 공포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석삼이'라는 오디오북을 듣다가 불현듯 시작하게 됐다. 3류 공포소설이리라 여기고 듣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뛰어난 문장력과 구성, 사연 있는 주인공에 놀라며 들었다. 나도 이런 걸 써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다.

"소설 쓰고 앉았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소설 쓰고 앉아 있으려고.



가장 제약이 심하고 쓰기 힘들다.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건만 많이 벌이지 않는다면 어쩌면 가장 쉬울지도 모른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맘대로 써도 되니까. 그래서 처음엔 쉬웠는데 자꾸 사건이 벌어지면서 점점 수습이 어려워져 자연스럽게 쓰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쓰지 못하면 읽기나 쓰기나 모두 고역이 된다. 애초에 플롯을 만들지 않은 탓이 크다. 그러나 나는 플롯이란 놈을 애초에 그다지 애정하지는 않는다.


소설에 대해서는 대체로 스티븐 킹의 이론에 동의하는 편인데('유혹하는 글카지노 게임 사이트' 참조),

그의 말처럼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발굴되는 데 가깝다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실 소설 뿐 아니라, 훌륭한 글은 뭐든 그렇다.

스티븐 킹은 화석발굴에 비유했는데 붓질로 발굴하듯 섬세함이 필요한데 플롯은 굴착기 같아서 화석이 깨지기 쉽다고 했다. 나도 대체로 동의카지노 게임 사이트.


치밀한 플롯의 통속 소설은 대개 생생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자연스럽고 날것의 느낌이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선호하는데 치밀한 플롯의 소설은 그게 안 느껴진다.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요리로 치자면 조미료를 강하게 뿌렸달까. 자극적이고 맛은 있겠지만 뒤끝이 안 좋다 뭔가 찝찝하다. 재미는 있을지언정 읽고 나면 생각이 안 난다.


이런 면에서는 감성 자극을 주로 하는 에세이도 마찬가지인데 당장의 감정만을 자극하고 오래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두에게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글이 꼭 기억에 오래 남아야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법은 없다. 자극적인 글도 담담한 글도 다 나름의 가치와 역할이 있다.

자, 다시 말해 결국 지금 쓰는 소설은 플롯도 없이 시작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기 멋쩍어 그럴듯하게 긴 변명을 늘어놨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하던가. 이러다가는 스티븐 킹의 소설처럼 뜬금포로 끝나는 건 아닌지.

킹은 플롯이 없다 보니 글이 길어지면 장황해지다가 허무하게 끝난다. 최악의 결말로 유명한 소설가다. 그래서 중편이 가장 낫다는 평도 있다.

어쨌든 내 취향에는 플롯이 강한 글은 재미는 있지만 날것의 느낌이 안 나고 깊은 감동을 느끼기 어렵다.


무책임하게 일을 벌여 수습하려면 꽤나 골치 아프겠지만, 쓰다 보니 추후 제대로 소설을 기획해서 써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차기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메모해 놓는 중이다.

한 책에서 소재를 얻었는데, 세계 온갖 나라의 수많은 종교와 밀교 사제들, 과학자, 수학자들의 경연대회, 그에 얽힌 귀신과 전설의 몬스터들의 관계, 이와 관련하여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연결고리 등을 그린 내용을 써보면 의미와 재미 모두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상력.

현실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면 소설 쓰고 앉았네 소리를 듣지만, 소설에서는 오히려 미덕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히 다른 무대다. 상상력에 제한이 없고, 그 녀석이 이끄는 대로 가면 된다. 여기서는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 되는 상상력도 용인된다. 그리고, 이 상상력의 극대화는 내 현실 삶에도 큰 도움이 됨을 최근 느꼈다.


상상력은 쓸모없지 않다.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상상력은 인간답게, 의미 있게, 창조적으로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게다가 나는 상상력을 써야 숨 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상상력을 현실에서 쏟아내면 그저 손가락질로 끝날 뿐이지만, 글을 통해 잘만 쏟아내면 오히려 좋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다만 자주 한계를 느낀다. 특히 비언어적인 부분을 표현해야 할 때는. 어쨌거나 소설도 언어일 뿐이다. 때로는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느낌들이 있다. 그마저도 글로 잘 표현해 내는 사람을 작가라 부를 테지만, 나는 아직 안된다.


상상력이 현실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데에도 중요하다고 가정한다면, 예술은 그 힘을 기르기에 좋은 훈련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지금의 현실에서 한 단계 도약할 때는 생생한 상상력이 필요한데, 생생하게 상상하는 힘은 예술을 통해 훈련될 수 있다. 찌릿찌릿하게 오금 저리게 느껴지는 상상은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분야나 책에서는 얻기 힘든 경험이다.

다시 말해 상상이 ‘경험’ 되는 분야는 예술과 종교 뿐이다. 여기서 ‘경험’ 은 결국 현실이다. 즉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상상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만을 취하고 살게 된다. 다시 말해, 현실에 제한된 삶만을 살게 된다.


사소한 일에도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려면 그 작은 일에서 우주적인 상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소확행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욕심만 버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소소한 것에 진정 만족하고 행복하려면 상상력만큼은 그 어느 갑부보다 위대해야 한다. 그때 소소한 것으로부터 만족하는 그의 상상은 부자들의 그 모든 현실적인 소유와 부를 합친 것을 능히 뛰어넘기에 그의 삶은 어느 부자보다도 더 풍성해진다. 바꿔 말하면 풍성한 삶은 결코 현실적인 조건들로만 채워질 수 없으며, 이 부분을 채우는 데 상상력이 중요하다.


S급 학자들도 상상력이 뛰어나다. 때로는 시적이기까지 하다. 아인슈타인도 그래서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학자 오카 기요시나 허준이의 수학 난제 접근법은 일반 수학자들과 다르다, 시적이다. 단순히 이성적 논리로만 문제를 풀지 않는다. 이성적 논리로만 접근하는 학자는 대개 창조적이지 않다. 톱클래스가 될 수 없다. (관심 있는 분은 오카 기요시의 '수학자의 공부'나 '허준이' 관련 유튜브를 참조해도 되겠다)


모든 것이 그렇듯 상상력도 평상시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혹은 외부적인 감각에만 매여 있는 사람과는 새로운 일을 할 수 없다. 그건 안된다는 말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중간 관리자와는 일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현실을 모르는 사람과도 일하지 않는다. 현실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상상력이 없는 삶은 감옥에 갇힌 삶과 똑같다. 그러나 대개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은 본인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상상력은 현실 도피의 수단이 아닌 현실 극복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현실 도피의 수단이 되면 그건 막연한 공상이나 망상일 뿐이다.

기왕이면 소설도 그래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6. 책 영화 음악 감상인 척하기


내 안에 숨겨졌던 감정을 만나는 곳이다.

나는 새로운 감정, 깨달음이란 없다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내 안에 숨겨져 있다가, 그것을 발견할 계기를 만날 뿐이다.

이곳은 그 계기가 주어지는 장소이다.


옷장에 처박힌 원래부터 거기있었던 보따리를 어느 날 갑자기 풀어헤친 것처럼 말이다.꾸러미를 펼쳐보니 오만가지 감정이 솟아오른다. 이는 안 보고 지나쳤던 깨달음으로 이어지고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7. 그 외


블로그 : 요즘 잘 안 쓴다


일기 : 일요일 제외 매일 한 줄이라도 쓴다


노션에 적는 메모들 : 비공개이지만 사실 가장 많은 문장들을쏟아 놓는공간이다.생각해 보니 가장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다.










브런치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쓰면서 느낀 건 사람마다 취향이 상당히 다양하다는 사실.

이를 통해 내가 쓴 글이라도 나 혼자만의 판단으로 단정해서는 안됨을 느꼈다. 내가 별로라 해도 남들은 좋게 느끼거나. 반대로 나는 정말 좋지만 남들은 관심도 없거나.

내가 좋은데 왜 남들은 관심도 없을까. 그 이유는 내 감성이 보편적이지 않거나, 내 감성을 남들에게 설득시키는 데 실패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글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나도 잘 모르지만 내 생각을 말해 보자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떤 면에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 위한 노력이다.



에세이를 쓴다면 리얼리티와 보편적이면서 강렬한 감정이 감동이란 결과를 주기에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시나 소설을 쓴다면 리얼리티보다 상상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상상력이 풍부한 글일수록 상상력이 없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상상해야만 감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현실을 묘사하되, 그 뒤에 숨겨진 이데아를 비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숨겨진 이데아를 비추려면 반드시 훌륭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건조한 설명문은 이데아를 비출 수 없다. 강렬한 리얼리티만으로는 감정적인 요동을 줄 수는 있으나, 감정 너머의 깨달음을 주기는 어렵다. 감정 너머의 깨달음이 없는 글은 대개 지금 잠깐 재밌고 만다. 그리고 잊힌다. 대개의 베스트셀러들처럼.


나는 프로 작가가 아니므로 권위적으로 말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기에 그저 내 개인적인 생각을 추려 보자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 쓸 때 중요한 두 가지는,


첫째, 자신에게 진실할 것.

둘째, 그 진실함을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나타낼 것,

이라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첫 번째나 두 번째나 어렵기는 매한가지인데 자신에게 진실하기는 맘먹는다고 순식간에 되는 일도 아니고, 고통을 감내하고 욕심도 절제해야 하며(특히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용기도 있어야 하고, 그 용기를 오랫동안 지속시켜야만 충분히 진실해진다. 이런 측면에서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적 성숙도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역시 어려운데 이는 표현에 대한 부분이고 기술과 태도에 대한 영역이다. 보통,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글은 그 내용이 독자에게 친화적이다. 그러나 내용만 감동인 글은 대개 그때뿐이다. 내용과 관계없이 글의 형식(문체 포함) 자체로 진실함을 표현할 때 그 글은 당장 감동이 덜해도 오래가고 무엇보다 오리지널리티를 갖는다. 형식으로 진실함을 전할 때 그 글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개성을 지닌다. 요약하자면, 내용은 휘발성이 강하고, 형식은 깊게 새겨진다.


이 두 가지를 이룬다면 당장 베스트셀러는 못 될지언정, 어느 독자에겐불멸의 작품으로 남겨진다. 형식은 뻔하고 그저 감동적인 내용만으로 쓰인 글들은 잠깐만 읽혔다 사라지게 된다.


진실하면서 동시에 그 진실함을 형식으로 나타낸 대표적인 예가 헤밍웨이라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의 글은 실제로 알고 보면 읽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불멸로 남겨졌다. (그의 글은 지루하기로도 유명하다) 그건 글의 내용 때문이 아니다. 헤밍웨이 자신만의 진실함을 자신만의 형식으로 완벽하게 나타냈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은 형식으로 남겨진다. 다만 형식을 위한 형식, 파격을 위한 파격은 잠시만 화제를 일으키고 사라진다. 오직 진실된 형식만 불멸로 남겨진다.



또 위에서 언급했듯 글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면,

말할 수 없는 것들은 말의 내용으로 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말의 태도와 형식으로 말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진심을 전달할 때 우리는 그 말의 내용을 보는가, 형식과 태도를 보는가.

물론 둘 다 보겠지만, 흔히들 이런 말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니 말에는 영혼이 없어."

여기서 '영혼'은 말의 내용을 의미하진 않는다. 형식과 태도를 가리킨다.


결국에는 감동을 줘야 하는데 그 감동을 어떻게 주는가.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준다. 내용은 그리스 비극 이후로 달라진 게 없다. 죄다 똑같은 내용의 반복일 뿐이다.

내용보다 형식이라는 말을 달리 표현해 보면, '뻔한 내용을 뻔하지 않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 라고 해도 되겠다.


한때 유행했던 아니 지금도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평가단들이 무엇을 얘기하는가.

전문인들의 평가에서 노래 자체를 일반적으로 잘하는가는 생각보다 별로 얘기하지 않는다. 즉, 발성 성량 기교 등은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다. 음색과 개성(표현 방식, 즉 형식)을 가장 많이 얘기카지노 게임 사이트. 주제나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문제 삼는다.

예술 사조를 분류할 때도 표현 방식이 중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예술은 결국 개성과 스타일로 남겨지는 것 같다.

개성은 결국 흔히 말하는, originality 가 된다.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엄밀히 말해,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창조는 모방의 변형일 뿐.

그래서 피카소도 말하지 않았는가? 천재는 모방하지 않고 훔친다고.

창조력이 기가 막힌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잘 훔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실 따라했지만, 따라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originality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하니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머리가 아파지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좀 더 얘기하도록 하자.

그래서오늘의 잡설은 여기까지.


이 긴 글을 완독한 분들을 위해 위로의 노래를 남긴다.

(추후 음악 감상 글의 소재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도 손색이 없는 노래라 생각한다)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 Age of Anxiety 1

(위 링크는 공식 버전,그 아래 링크는 가사를 궁금해할 분들을 위한 버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Eh4Vfzow5U





https://www.youtube.com/watch?v=FCmpY2q-s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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