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느리게 가고, 한 달은 빠르게 지나간다더니 어느새 또 일주일이 흘러 금요일, 카지노 게임이 찾아왔다. 카지노 게임이나 주중이나 별다를 것 없는 백수려니 하겠지만 이 세상,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법. 백수에게도 얽힌 인맥이 있고,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일정만으로 보면 오히려 카지노 게임이 더 바빠진다. 백수의 카지노 게임은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채워진다. 바쁜 일상에 치이다가 모처럼 카지노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 그들의 동행이 되어주거나, 필요할 땐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떤 도움을 청할지 모르니, 백수의 카지노 게임은 늘 비워져 있어야 한다. 마치 119처럼 비상 출동을 대비하며 말이다. 문제는, 그 ‘비상사태’가 꼭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비상사태는 적을수록 좋은 게 인지상정. 그래서 생기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그러면 공치는 카지노 게임이 된다. 일정을 비워두고 기다렸건만, 아무 일도 없다면 괜히 허전하고, 쓸쓸하고, 뭔가 허투루 보낸 기분이다.
그렇다고 비상사태가 생기길 바랄 수도 없는 노릇. 비워도 문제, 채워도 문제인 백수의 카지노 게임.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보상’이다. 비상사태의 긴장감도, 공치는 날의 무료함도 달래줄 수 있는, 내 마음의 보상.
평일의 무료함과 카지노 게임의 무료함은 결이 다르다. 평일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에 준비가 가능하다. 나름 계획을 세우고, 소일거리를 마련해 두었다. 새벽 기상이 생활화될 만큼, 주중의 일정은 나름 꽉 차 있다. 바쁘진 않지만, 삶을 허투루 보내고 있진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적어도 외롭다거나 무료하다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카지노 게임의 휴식은 오히려 달콤하다.
그러니 카지노 게임의 일정을 비워두는 건 꼭 누군가를 위한 준비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건, 나 자신이 몰래 짜놓은 여유의 그물일지 모른다. 비상사태로 인한 긴박한 동행도, 아무 일 없이 혼자 누리는 나태도
모두 즐거운 이유다. 카지노 게임이라는 시간 자체가 나에겐 이미 충분한 보상이다. 일상의 틀에서 하루쯤 벗어나 보는 일.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는 일. 그게 카지노 게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고백하자면, 이건 어디까지나 ‘마음’뿐이다. 현실의 카지노 게임은 여전히 일상의 연장선이다. 비상사태에 대비하며, 또 다른 일상을 준비한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처럼. 언제 닥칠지 모를 평일의 예기치 않은 일들에 대비하며
나는 또 카지노 게임을 보낸다. 이래저래 바쁜 카지노 게임. 할 일 없는 백수가 누리는, 바쁘게 준비된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