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 봉쇄된 지 두 달쯤 되었을까.
하루 종일 기숙사 방에 갇혀
숨 막히는 나날을 버티던 어느 날,
겨울 방학 내내 붙잡고 씨름했던
페이퍼 결과가 떴다.
74점.
First Class는 물론,
반에서 제일 높은 점수였다.
교수님의 코멘트가 더 놀라웠다.
“오랫동안 철저하게 조사하고 고민한 게 보이는,
아주 잘 쓴 페이퍼라 읽는 게 즐거웠다.”
혼자 방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이런 기쁨,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과목은 선택과목 중 하나인 지적재산권법이었다.
전혀 경험도 배경지식도 없던 탓에
첫 수업 시간엔 교수님 말이 반쯤은 외계어 같았고,
딱 봐도 ‘전공자 전용’ 같은 분위기라
살짝 겁도 났다.
게다가 이 과목은 선택한 학생도 많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개념,
법과 기술이 얽힌 복잡한 이슈들로
다들 피하는 과목이었다.
그런데도 첫 수업이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혹시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저작권을
지켜주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뭐, 그런 가벼운 사심도 있었다.
페이퍼 주제는 다섯 개 중 고르는 형식이었는데,
나는 망설임 없이 Artificial Intelligence를 골랐다.
교수님이 이게 제일 어렵고 자료도 부족하니
신중히 선택하라고 했지만,
그 말이 오히려 자극이 됐다.
어차피 다 어렵잖아.
그럼 그냥 재미있는 걸 하자.
친구들은 왜 하필 그걸 골랐냐며 말렸지만
내게 언제 쉬운 길이라는 게 있었나 싶었다.
타고난 문과생인 나에게
AI란 단어 자체가 낯설었지만,
동시에 신선했고, 자극적이었다.
닥치는 대로 많은 논문과 기사들을 읽어가며,
어떻게 법이 기술을 따라잡고,
또 어떻게 규제라는 게 진화해 가는지,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연결고리가 생길 때마다
묘하게 짜릿했다.
그렇게 몇 주를 파묻혀 쓴 페이퍼.
내가 봐도 이건 좀 괜찮은데 싶었다.
그리고 정말 뜻밖의 보상.
무표정하고 날카롭기만 했던 교수님이 남긴
“읽는 게 즐거웠다."
그 한 줄에, 그동안의 피로와 답답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어렵고 생소해 보여도,
내가 진심으로 끌리는 길을 가는 게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더 깊게 성장시키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된 건.
AI라는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너무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려워 보였지만,
알고 보니 이제 막 열리고 있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에 더 탐구할 여지가 많았고,
모두가 어려워하는 그 ‘미지의 세계’에
점점 더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밖에는 봄기운이 완연했지만
난 여전히 기숙사 방 안에 갇혀 있었다.
목이라도 아프면 혹시나 코로나인가 싶어
겁을 먹고 기분이 가라앉는 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던 나날들.
그 와중에 받은 이 카지노 게임 성취는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였다.
노력은 통한다.
보답은 온다.
반드시.
그날 나는
정말 오랜만에,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