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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ye Grace Lee Apr 28. 2025

5-4. 사랑 없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차갑다

일에는 절차가 있지만, 사람에게는 온기가 필요하다

돌봄은 때로 너무 익숙해서, 감정없이 수행되기 쉽다.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고, 필요한 절차를 안내하고, 서비스 계획을 수립한다. 서류는 깔끔하게 정리되고, 필요한 사회적 자원은 연결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어쩐지 마음이 무겁고 공허한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자문한다. ‘나는 지금 사람을 돌본 걸까, 아니면 일만 처리한 걸까?’


돌봄은 기능이 아니다. 어떤 자원을 연결했느냐보다, 그 순간 내가 그 사람의 마음 가까이에 있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랑이 없는 돌봄은 예의는 갖췄지만, 정서는 남기지 않는다. 차갑지 않지만, 따뜻하지도 않은 돌봄. 그것은 일로서는 완벽했지만, 사람으로서는 부재했던 시간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은 행위, 노동, 작업으로 나뉘며, 그중 ‘행위’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가능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돌봄이 단지 노동과 작업에 머물 때, 우리는 효율적인 기능인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돌봄이 '행위'가 되는 순간,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있다. 그 핵심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이 없을 때, 돌봄은 관계가 아닌 반복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후기근대 사회의 돌봄은 점점 더 ‘계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무와 책임, 시간과 비용의 교환 속에서 돌봄은 시장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그러나 사랑 없는 돌봄은, 그 어떤 기술보다도 빠르게 관계를 고립시킨다. 서로의 삶을 나누지 않는 돌봄, 감정을 회피하는 돌봄은 결국 돌보는 사람도, 돌봄을 받는 사람도 고립시킨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인간의 존엄은 ‘감정의 표현’과 ‘정서적 교류’ 속에서 실현된다고 말했다. 돌봄이 제도로 정착되고, 행정으로 설계되더라도, 그 안에 감정이 없다면 그것은 ‘삶의 관계’가 아닌, ‘기능의 연결’에 불과하다.


진짜 돌봄은, 일의 목적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다. 나는 어느 날, 한 어르신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선생님은 참 잘 챙겨주는데, 가끔 너무 조용해서 조금은 서운해요.” 그 말은 내게 돌봄의 온도를 묻게 했다. 나는 예의 바르게, 책임감 있게,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지만, 그 사이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체온’을 놓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대화를 조금 더 길게 했다. 일 이야기만 하지 않고, 계절 이야기도 하고, 창밖의 꽃을 함께 보기도 했다. 서류보다 먼저 안부를 묻고, 절차보다 먼저 마음을 확인했다.그렇게 돌봄의 결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관계에 온기가 생기자, 나의 마음도 덜 피로 해졌고, 그분의 말투에도 눈빛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랑은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관계를 대하는 태도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고, 그 존재를 귀하게 여기며, 작은 말 한마디에도 진심을 담는 일. 그 작은 태도가 돌봄을 따뜻하게 만들고, 돌보는 사람 역시 고립되지 않도록 붙잡아준다.


나는 더 이상 ‘잘 돌보는 사람’이 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따뜻하게 함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돌봄이고, 그 안에서만 서로가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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