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프리드먼, 대니얼 로리슨, <카지노 쿠폰천장(2024)
그런데 최상층이 정말 부러운 것은 젊을 때 부유하다는 점이었다. 나처럼 야심 있는 중산층이나 시험 합격자 같은 사람들에겐 삭막하고 수고스러운 유형의 성공만 가능했다. 장학금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기어올라봤자 본국 공무원이나 인도 공무원, 아니면 변호사가 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해이'해지거나 '시들'해져서 사다리의 가로대를 하나라도 놓치면, "일 년에 40파운드 받는 사환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자신에게 허용되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다 해도, 정말 중요한 사람들의 부하나 측근이 될 수 있을 뿐이었다.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사, 2010, 413-414)
윤석열 파면 이후 샘 프리드먼과 대니얼 로리슨의 『카지노 쿠폰천장: 커리어와 인생에 드리운 긴 그림자』(홍지영 옮김, 사계절, 2024)를 다시 읽었다. 지난 북토크에서 세 권의 책(『랭스로 되돌아가다』,『상속자들』,『카지노 쿠폰천장』)을 추천했는데, 다른 두 책은 글을 썼는데 이 책에 대해선 쓰지 않았던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읽어둔 게 있으니 금방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과 쓰기 위해 읽는 것이 같지는 않다보니 결국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계급천장'이란 성적, 인종적 이유로 능력과 무관하게 가해지는 비가시적인 차별을 뜻하는 '유리 천장'에 빗대어,계급 차원의 비가시적인 차별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 낸 용어다. 노동 계급 출신이 엘리트 직군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이후, 다시 직업적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미시적, 비가시적 차별들이 있고 그것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일별한다. 그리고 통념과 달리, 영국 사회에서 계급의 그림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꽤 길고 진하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물론 우리의 통념은 '영국만큼 계급적인 나라가 어디있냐'겠으나)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많은 영국정치인과 학자들이 소위 '카지노 쿠폰의 종말'을 선포했다. 지난 70년간 사회 이동성은 증가했고, 소득 불평등은 점차 완화되는 중이었다. 영국의 경우 1920년에 비해 전체 노동 인구 가운데 전문직 및 경영직 종사자의 비율이 두 배나 늘었고, 그 자리의 상당수는 노동 카지노 쿠폰 출신의 고학력자들이 채웠다. '능력'만 있다면 노동 카지노 쿠폰 출신도 전문직 및 경영직과 같은 소위 '엘리트 직군'에 취업할 수 있기에, 카지노 쿠폰은 더 이상 중요한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도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도 이에 대해 직접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정반대였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부의 집권 이후 영국의 소득 불평등은 다시 심화되기 시작했고, 사회 이동성도 둔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자기 계발/능력주의 신화는 그 뒤를 이은 신좌파 정부에서도 별다른 도전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까지도 카지노 쿠폰 재생산을 방지하고 사회 이동성의 증대를 위해서 더 확실하게 '능력주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이러한 수사의 최신 버전은 영국이 "가장 훌륭한 능력주의 국가"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사회의 "시급한 불평등"을 해결하는 주된 수단이라는 것이다."(24)
저자들이 보기에 이러한 주장의 맹점을 파악하려면 '엘리트 채용의 사회학' 전통을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선망되는 직군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 확인한다면, 사회이동성과 능력주의 신화가 가리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이를 위해 둘은 연구 직전 새롭게 발표된 영국의 노동력조사(LFS) 데이터를 분석한다. 이 조사에는 응답자의 카지노 쿠폰 배경 정보를 포함하는 새로운 '사회 이동성 모듈' 데이터가 담겨 있었다. (우연이 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엘리트'란 "명망, 자율성, 소득의 상대적수준이라는 측면에서 뚜렷하게 구분"(31)되는 직종을 뜻한다. 즉 회계사, 학자, 건축가 든 전통적인 전문직, 경영직, 그리고 언론인, 영화, 방송, 공연예술, 광고업계 종사자와 같은 문화 및 크리에이티브 직업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지배 엘리트나 권력 엘리트가 영입되는 주요 '공급원 또는 채용 시장'을 구성한다".(31) 이 데이터는'신화'와 달리영국 사회에서는 오늘날에도카지노 쿠폰 태생과 카지노 쿠폰 도착지가 여전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자가 노동자가 되고, 경영자가 경영자가 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무엇이 카지노 쿠폰 재생산을 낳는가? 이들은 부르디외의 관점을 수용해 이 카지노 쿠폰 재생산을 설명하고자 한다. 즉 부모가 지니고 있는 경제 자본(자산과 소득), 문화 자본(학력, 지식, 기술, 취향), 사회 자본(연줄, 친구)이 카지노 쿠폰 재생산을 담당 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은밀하게 전수되는 문화 자본이 카지노 쿠폰 재생산을 방해하는 다양한 사회 제도 너머에서 재생산을 유발하는 핵심 기제라는 것이다. 문화 자본이 은밀하게 전수되는 건 상속이 다른 자본에 비해 복잡하고 간접적이기 때문이다. 억양, 어조, 자세, 옷차림, 예절, 몸가짐과 같은 신체적 행동거지는 부모의 교육을 통해 체화되고, 이렇게 체화된 습관 가운데 특권층의 습관은 문화적 탁월함의 신호, 타고난 지성과 교양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사회생활에서 그것이 정통성 있는 것으로 오인되는 경향"(36)이 있다는 거다.
이러한 신호들을 체화하지 못한 노동계급 출신은 엘리트 직군에 진입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고 미시적인 차별의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커리어 내내 반복되는 특권 계급의 '문화적 매칭'은 이에 익숙하지 않은 노동 계급 출신들에게 자기 삭제라는 수치심을 내면화하도록 만든다. 그들은 자신을 계급의 배신자로 느끼면서도 어느 수준에선 더 이상 특권 계급과 동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비교적 덜 성공적인 위치로 나아가는 선택을 하고 만다. 특권 계급 출신은 자신의 유리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자신이 '보통'이며, '평균적'이거나 '평범'하다고"(172) 여기는 동안, 노동 계급 출신은 자기 부정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임금'이다. 직업에 따라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 계급 출신의 엘리트 직군 종사자들은 특권 계급 출신에 비해 평균 약 16% 임금을 덜 받는다. 명문대를 나왔다 하더라도 격차는 여전하다. 이 격차를 무엇 때문이라 설명해야 할까? 인터뷰에 참여한 엘리트 직군 종사자들은 대부분 '능력'이나 '자신감'을 그 격차의 이유로 꼽았다."그러나 좀 더 깊이 파고들자 자신감이 지닌 설명력은 상당히 근본적인 면에서 한계가 있음이 곧 명백해졌다."(49) 능력이나 자신감은 기실 자기 서사의 완결성을 위해 사후적으로 소환하는 이데올로기에 가까워 보였다.
오히려 인터뷰 과정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건 '엄마 아빠 은행'이라는 부모의 지원이 그들의 성공에 끼친 강력한 영향력이었다. 부모의 재정 지원은 자녀가 경력 단절을 겪지 않고 성공에 필요한 경험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특히 방송, 연기 분야와 같은 문화 산업은 성공을 위해선 수입이 불안정한 시간을 견디기를 반강제적으로 요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 계급의 자녀들은 상당수 탈락하고 만다. 또한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부모의 인맥과 가정교육으로부터 비롯되는 사회, 문화 자본의 이전 또한 자녀들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다."실제로 사례 연구 전반에 걸쳐 우리는 엘리트 직종에서 가장 빨리, 가장 멀리 나아가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는 강력한 증거를 발견했다."(154)
사회, 문화 자본이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건 특권 계급의 '동종 선호'에 기초한 유대의 이점 때문이었다. 특권 계급 출신들은 상급자와 유머, 관심사, 취향, 언어 습관 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상급자들을 확보하는 데 훨씬 유리한 지위에 놓였다. 후원자의 여부가 성공을 결정하는 몇몇 업종에서 이러한 동종 선호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많은 엘리트 직종에서 중요한 진급 기회가 개인의 역량뿐만 아니라 카지노 쿠폰-문화적 유사성에 뿌리를 둔 '거울에 비친 능력'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184)습관들을 새롭게 익혀야 하는 노동 카지노 쿠폰 출신들에게 이는 쉽게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다. 이 습관은 어린 시절, 가정 내 교육으로부터 유래하며 변화가 더디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감과 같이 조직에서 선호하는 태도들, 행동의 규칙들은 특권 카지노 쿠폰 출신들에게 유리했다. 그들이 가정 교육 과정에서부터 고등 교육 과정에 이르기까지 익히는 모든 행동 규범들이 엘리트 직군의 행동 규범과 유사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특권 카지노 쿠폰 출신들은 자신이 행동하고 발언하는 데 있어서 불편함을 훨씬 덜 느끼고, 조직에 자신이 적합하다고 확신하는 데 거리낌이 덜했다. 이러한 문화적 구별짓기의 결과를 분석한 저자들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엘리트 직종에서 일상적으로 '능력'으로 분류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특권의 '순풍'과 분리될 수 없다."(54)
저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엘리트 직군에 있어서 적용 가능한 카지노 쿠폰 천장의 공식을 찾아냈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조사 대상이 된 직군도 일부에 불과하고, 건축, 영화 및 방송 분야의 경우 출신 카지노 쿠폰에 따른 임금 격차가 비교적 미미했다. 이곳에는 '카지노 쿠폰 천장'이 있다고 말할 증거가 없었다. 왜일까? 저자들은 고임금으로 인해 출신 배경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가능성, 특정 회사의 경영진이 노동 카지노 쿠폰 출신이어서 기업 문화가 비교적 평등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방송국처럼 출신 카지노 쿠폰에 따른 임금 격차는 적으나 카지노 쿠폰 천장을 떠받치는 다양한 문화적 구별짓기의 요소들이 존재하는 회사는 분석의 한계로 지적할 만하다.
물론 계급 천장의 증거가 없다고 해서, 다른 문제도 없다는 건 아니다. 계급에 따른 임금 격차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조직의 상층부타 특정한 계급-인종-성별에 치우쳐 있는 상황은 동일하다. 이 책에서 계급 천장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건축 회사의 경우 백인 남성들이 조직의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몇 가지 구별되는 차이로 인해 계급 천장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성차별과 인종차별은 여전히 강고하다. 이러한 편향성이 이 조직에 진입하고자 하는 소수자들에게 강고한 압력으로 작용하는 건 동일하다. 또한방송국처럼 대중 영향력이 높은 회사의 경우 "제작되는 미디어 유형에 중요한 (그리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131)을 우려할 수 있다.
계급만이 유일한 '천장'은 아니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계급이 일종의 '마스터 카테고리'라고 암묵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다."(309) 두 사람이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계급 카테고리지만, 젠더, 인종, 나이, 장애와 같은 다양한 정체성은 계급과 함께 교차하며 복합적인 차별을 낳는다. 방송국만 해도 방송국에서 '정상'으로 여겨지는 업무 환경은 매우 비장애-남성-정규직 편향적이다. 밤을 새우고, 가정과 육아에 불성실하며, 출장이 잦고, 이동에 불편함이 없는 이들이 선호된다. 이에 문제의식이 없고, 마초적 문화에 익숙할수록 조직 내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 어쩌면 계급 천장이 덜 부각되는 건, 다른 유리 천장이 워낙 강고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저자들은 이러한 천장을 해소하기 위해 열 가지의 현실적인 제언을 던진다. 이 중 몇몇은 당장 한국 맥락에서도 적용해볼만한 부분들이 있다. 가령 비공식적인 것을 공식화하라거나 무급 및 미공고 인턴십을 금지하라는 제언은, 사실상 계급 세습의 공공연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인턴십'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는 한국에도 적절한 조치들처럼 보인다. 또한한국 정부 당국도 사회 이동성 데이터 세트를 정교하게 제작하여 발표하는 것이 한국 사회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회 이동성 데이터를 발표하라는 조언은 받아들일만 하다. 비판을 넘어서 현실적인 제언까지 이어지는 연구가 드물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러한 제언들 가운데 일부라도 실행할 수 있다면 책은 충분히 제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 대한 반응 가운데 가장 아픈 반응이라면 아마도 이 책이 결국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냐는 비판일 것이다. 이 책에서 주요 연구 대상이 되는 '계급 천장'에 직면한 이들은 매우 소수에 불과하며, 이들보다 노동계급 전반이 겪어야 하는 차별과 박탈감 그리고 그로 인한 내면의 상처에 대한 회복과 대안 마련 문제가 더 사회적으로 시급하고 중요하지 않냐는 거다. 어쨌든 그들은 성공한 소수이며, 자기 제거의 감각에도 불구하고 결국 특권 계급으로서 자기 재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 뻔하다. 그럴 기회조차 없는 이들의 분노가 오히려 더 중요한 게 아닌가?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분명히 사회적 지위 상승 과정에서 상처 입고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자의식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처지가 책을 고르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상속자들』이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단숨에 읽은 것 역시 내 경험에 직관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착각하지 않는 한에서, 카지노 쿠폰화된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소외감 혹은 주변화되는 감각(내가 '주변'이라고 자기기술지에 이름을 붙인 까닭이기도 하다)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인지하는 한에서 이 책을 읽어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자의식을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이를 보조할 다양한 문헌들을 동시에 읽어나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만 한다면 충분히 '카지노 쿠폰의 숨은 상처'들 가운데 하나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그것이 이 책을 읽고 소개하는 소박한 이유다.
여기서 묘사되는 계급 천장의 풍경이, 한국에선 동일하게 재현되진 않는다. 특히 연기자들에게 있어 용인 발음이 끼치는 영향에 대한 부분은 한국에서는 완벽하게 합치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경상도 사투리와 표준어의 권력이 있지만 그것을 계급적인 차원에서 결부짓기보다는 지역 차별의 차원에서 연결하는 게 일반적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세밀한 묘사들로 가득한 책이라, 차이가 더 두드러져 보일 수 있다. 이것이 책의 한계나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처럼 계급을 횡단한 이들의 내면에 대해 진지하게 파고든다는 점이 이 책을 읽어둘 이유가 된다. 계급 횡단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급 횡단자들의 내면에 깊게 새겨진 상처들이 어떻게 그들의 행동을 좌우하는지 가까이서 들여다 볼 기회다.
물론 한국은 현재로서는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문화적으로 동질한 '카지노 쿠폰'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식민지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짧은 시간에 극단적으로 여러 번 변화하고, 수백년 간 서구가 경험해야 했던 근대화 과정을 반세기만에 횡단해야 했기 때문에, 사회 카지노 쿠폰이 재생산될만한 시간이나 상황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이동성이 강한 동시에, 상위 중산층과 상류층 사이의 이동성은 둔화되는 상황에서 카지노 쿠폰이 형성될지 형해화될지 확답할 수도 없다. 다만 2000년대를 전후하여 사회 이동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화해 온 것 같다. 우연에 의해 부의 대물림에 성공한 집단이 스스로를 대중으로부터 분리해내려는 시도들을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이 사회 이동성을 활성화시키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인 공교육에 체계적인 사보타주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 사회의 특성상 대학 진학이 이후의 여건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왔는데, 대학 진학을 위해 필요한 것이 수능 점수에서 점차 다양한 외부 활동들로 변모하고 있다. 논문 작성, 인턴 경험 등 부모의 사회 자본과 문화 자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험들이 대학 진학에 중요하게 활용되는 상황에서 교육이 사회 이동성을 강화시키기보다 엘리트 충원을 더욱 폐쇄적으로 만들어 낼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이 책에서 지적하는 카지노 쿠폰 천장의 풍경과 한국의 풍경 사이의 불일치는 단지 데자뷔 사이의 시간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방송국 직원이기 때문에 독자로서 가장 눈여겨 본 부분은 6TV를 다루는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6TV는 한국의 방송국, 특히 내가 속한 곳과 몇몇 부분에서 다르다. 외주 전문이 아니라는 점 (그러나 외부 인력의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 후원자의 영향력이 영국만큼 도드라지진 않는 점 (그러나 여전히 상급자의 '양아들'이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 헤겔 철학과 같은 현학적인 이야기를 기획 회의에서 과시하진 않는 점 (하지만 자신의 특권적 시선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더욱 경박해지는 경우는 존재한다) 등이 그렇다. 또한 강한 자신감이 종종 '나대는 것'으로 여겨져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부분도 있다. 특히 어떤 프로그램이 성공할 지에 대한 신뢰할만한 지식이 없기에 상위 결정권자들이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포장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비공식적으로 동종 선호에 의존하는 부분들이 그렇다.
다만 현재로서는 방송국 직원들의 출신 대학, 부모 직업 등을 조사한 국가 차원의 데이터가 없기에, 애초에 1대 1로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내 시야에서 관찰 가능한 풍경을 가능한 자세히 소묘하는 것 뿐이다. 사회적 평균에 비해 높은 비율로 '명문대' 출신으로 가득한 회사는 비교적 학력이 낮은 외부인력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을 드러낸다. ('열심히 했다면 공채에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학생도 이해할 만한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반복한다. 중요하지만 어려운 문제들을 단순화시키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거나 어려우면 말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들은 부끄럼 없이 자신들을 '대중적'이라고 지칭한다.흥미로운 엘리티즘인 셈이다.
동종 선호는 선발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블라인드 채용 과정에도 불구하고 '활동 및 경력'을 적는 부분에 있어서 은밀한 신호들이 감지된다. 해당 학교 출신들에게 익숙한 활동, 내용, 혹은 독특한 학과 이름 등은 비교적 공개적인 신호들에 가깝다. 그러한 신호들보다 은밀한 것은 인턴십이나 대외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부모의 사회 자본과 문화 자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누가 무급으로 인턴십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가? 누가 그런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학연과 혈연, 지연은 활동과 경력의 질과 양을 결정한다. 그것은 누구도 '차별'이라고 언급하지 않지만, 동시에 특권 계층끼리의 신호로 작동한다.
내게는 이런 특권의 돌풍이라는 게 있었나? 없었고 있었다. 좋은 학교를 나왔다는 것은 분명한 특권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나의 실제 능력을 더 돋보이게 하거나, 적어도 나에 대한 능력 검증을 상대적으로 게을리하는 데 유리한 지형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외부활동을 할 여력이나 빽은 없었다. 배가 고파서 빠르게 취직해야 했고, 더 많은 월급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택은 내가 했지만, 가중치는 있었다. 학창 시절에 경험을 위해 한국을 오래 떠난다거나, 무급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할 여력은 없었다. 취직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이직 과정에서 발생할 수입 공백을 견딜 수 있었다면,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위스키를 마시고, 골프를 치고, 룸살롱에 가는 이들과 섞이지 않은 건 그게 태생적으로 싫은 것뿐만 아니라, 그런 행위들을 계속 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것이 일종의 '능력'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자명했다.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던 내가 이럴 정도라면, 가계를 책임지거나 빚에 시달리는 이들의 경우는 어땠을까? 번 돈의 상당수를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다 써야 하고, 취향과 취미를 개발하는 데 돈을 투자할 수 없는 이들이 사람들과의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 사교 활동에 돈을 쓸 수는 있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검소함이 때로는 능력을 선보일 발판을 빼앗기는 데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까? 또한 여성 PD라면 마초적인 문화에 적응하지 않고서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 제한을 받지는 않았을까? 회사에서 이야기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정확히 뭘까? 회사 안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데 있어서 '능력'은 얼마만큼이나 중요했던 걸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골라내는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은 어떤 모습인 걸까? TV를 더 이상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이 단순히 재미없어서일까, 아니면 더는 자기 자신이 재현되지 않는다는 불편함 때문일까? 우리의 출신과 우리의 생산물 사이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게 되고, 나와 내가 속한 공간 사이의 거리에 대해 고찰하는 일이 잦아진다.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주변화되고 있는 감각을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절박한 시도는 아닐까. 냉소적으로 말하면, 이 모든 시도들이 결국 엘리트 사이에서의 불평등이라는 푸념으로 끝나버리지는 않을까 고민된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스케치들이 누군가에겐 중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본다...
그나저나 책을 읽는 도중에 참고문헌의 일부가 누락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판사에 급히 연락하니 누락된 것이 맞다고 했다. 다음 인쇄분 부터는 바로잡기로 했다. 출간된 후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독자들 가운데 참고 문헌을 뒤져본 사람이 없었던 건가 싶어 조금은 아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