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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좌절이 융단폭격처럼 내렸다. 하필 지붕이 뚫릴 듯 요란한 빗소리로 인해 고요해야 할 아침이 더 부산해졌다. 휴대전화 대화창을 바라보는 내 눈에 불안이 일렁였다. 큰마음 먹고 용기 내서 맡은 성경 공부 그룹 리더였는데 한 달도 안 되어 사고를 친 것이다.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총괄 리더에게 이 사태에 관해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어쩌죠, 교회 밖에서 모여도 되는 줄 알았어요. 내 말에 총괄 리더는 되레 자신이 모임 규칙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며 사과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리고 이번엔 이미 공지가 나갔으니 계획대로 진행하라고 덧붙였다.
전년도에 내가 속했던 그룹엔 아이를 데려오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같은 시간에 그들만의 모임을 갖는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랬기에 첫 친교 모임 일정을 보자마자 교회 밖, 적당한 장소를 예약하고 공지를 돌려버린 것이다. 내 그룹엔 아이를 데려오는 이가 한 명 있기 때문에 그 점을 고려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후에 그녀의 아이가 아파서 둘 다 참석하지 못했고, 그래서 더 큰 문제로 번지진 않았지만, 부족함과 경솔함이 드러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잘해 보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불안하다. 그래도 실패한 리더는 되고 싶지 않다.
이해하지 못한 문제집 첫 장은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피아노 위에 놓인 두 액자는 45도로 서로를 비스듬히 바라봐야 한다. 리모컨들은 모두 앞으로, 신발들은 주인과 용도에 따라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수십 가지 항목이 적힌 ‘오늘의 할 일’ 메모는 임무를 마치고 장렬히 생을 마감해도 수백 번은 더 무고하게 부관참시 되거나 정확한 마무리를 위해 확인 사살당한다. 실수와 실패를 용납지 못하는 주인을 만난 탓이다.
강박적 완벽주의. 그건 내 몸에 새겨진 또 다른 이름이었다. 강요받거나 훈련받지도 않았는데 어릴 적부터 뭐든 줄 세우길 좋아했고, 크기 별로 쌓지 않으면 불안했다. 생각과 행동도 철저히 관리했다. 어른들은 그런 날 보며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애라고 칭찬했다.
그 질긴 칭찬의 뿌리는 시간속에서 키와 개수를 더하며 어느새 내 발목부터 목까지 단단히 똬리를 틀었다. 땅 위로 솟아야 할 본디 모습이 땅 밑에서 퍼렇게 질식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느 순간부터 흰 우유에 초콜릿 시럽을 섞지 않았고, 음악회나 연극은 집중하기 위해 혼자 즐겼다. 본질을 흐리는 것에 거부감이 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지면에 선을 긋고 그 위로 올라오는 건 무엇이든 단번에 가위질해 버렸다.
완벽주의라는 겉보기에 근사한 옷은 입었지만, 그 패션의 완성을 위해 불안을 액세서리로 달았다. 본질을 흐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치렁치렁하게 불안이 감겼다. 그렇게 또 내 본디 모습은 퍼렇게 질식했다. 한계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의 관계가 크게 틀어진 적이 있었다. 공들여 가꾼 내 일상이 무너지자, 사방에서 지면을 뚫고 올라오는 것들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부모님께 전학을 요청했다. 어머니는 동의했지만, 아버지는 반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실패도 겪어봐야 해. 서운함과 서러움이 내 마음의 마지노선을 넘어 훅 밀려들었다. 방어할 겨를도, 저항할 힘도 없이 난 항복했다.
시간이 흘러 적당주의를 외치는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덕분에 내 몸에 새겨진 또 다른 이름, 완벽주의는 점점 옅어져 흔적만 남았다. 솔직히 남편이 지면을 넘어 올라올 때마다 가위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매번 잘리고도 더 많은 싹을 땅 밖으로 밀어냈다. 적당주의의 승리였다. 그러고 나니 그와 같이 살아도, 나와 같이 살아도 하루가 똑같이 지나가는데 난 왜 그동안 그렇게 선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썼는지 과거의 내가 참 안쓰럽게 여겨졌다.
이해하지 못한 문제집 첫 장을 넘길 수 있는 힘, 피아노 위에 놓인 두 액자가 어느 각도로 바라보고 있어도 넘어갈 수 있는 힘, 리모컨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있다 해도 괜찮고, 신발들이 주인, 용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뒤엉켜 있어도 아무렇지 않는 힘.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의 할 일’ 메모를 부관참시하거나 확인사살하지 않는 힘은 완벽주의보다 더 큰 힘을 요구하는 용기였다.
스페이스X의 대형 우주선 스타쉽이 발사 후 8분 30초 만에 궤도비행에 실패하고 예기치 않은 급속한 분해 수순을 밟았다. 이것은 비행경로를 벗어날 경우 안전을 위해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설계된 비행 종료 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인이 함께 그 실패의 순간을 바라봤다. 우주선의 잔해는 마치 별똥별처럼 쏟아져 내렸다. 신문 기사 밑에 내 실패도 이렇게 아름다웠으면, 이란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스페이스X는 성공은 이런 테스트를 통해 우리가 배운 것에서 비롯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케는 아이들이 실패하면 이렇게 복창시킨다. 실패는 배울 기회다. 또 다른 집 아이는 실패할 때 행복하다고 한단다. 오늘도 하나 배웠다는 기쁨에. 내 어린 시절은 실패하지 않으려는 완벽주의의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말이다.
존 에이커프는 완벽주의의 반댓말이 목표 달성이라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난 그동안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실패하지 않으려고 완벽주의의 불안을 붙들었을까. 그래서 이루지 못한 것들에 지금이라도 허리 숙여 정중히 사과한다. 뿌리는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야 그 열매를 통해 본질이 드러난다. 거기에 실패는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내가 걱정됐던지, 총괄 리더에게서 문자가 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는 당신이 실패해도 되는 안전한 곳이에요. 그리고 난 모임에서 그룹원들에게 이 사실을 밝히며 죄송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다들 오히려 이렇게 좋은 곳에서 모임을 할 수 있게 장소 잡느라 애썼다고 위로해 줬다.
이제 머리 위로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던 좌절이 사라졌다. 창밖으론 지붕이 뚫릴 듯 요란하게 쏟아지던 비도 그쳤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햇빛이 눈부신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에요. 다음번에 우리 또 나와요. 맞다. 실패로 하나 더 배운 오늘은 참 행복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