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도전 중이다.
카지노 게임로 이사 온 지 어느덧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라면밖에 해본 적 없던 요리 초보, 불어는커녕 영어도 서툴던 내가, 아내의 취직을 통해 3살 딸을 데리고 카지노 게임행 비행기에 올랐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겁도 없이 떠났던 그 순간, 어쩌면 너무 많이 계산했다면 절대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여느 해외생활과 마찬가지로 카지노 게임서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특히 '물가 쇼크'를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살아남기란 지금도 '적응 중'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사러 갔다가 배송비에 놀라 직접 운반했던 일, 딸과 함께 스키, 줄넘기, 자전거 등에 도전했던 모든 순간이 때로는 서툴고 부족했지만, 이 과정 자체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선물이되었다.
11년의 삶을 되돌아보면 다양한 감정이 든다. 내 인생의 4분의 1을 함께한 나라이기에 제2의 고향 같으면서도 아직도 어색하다. 그러나 또 한국을 방문할 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카지노 게임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느 한 곳에도 완전히 속해있지 않은 감정이 때로는 나를 떠도는 이방인으로느껴지게 한다. 마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기에 오히려모든 언어가 섞여 0개 국어자가되어가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다. (단어들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너무 유럽적이고, 카지노 게임에서는 여전히 아시아인인 이 묘한 경계에 서 있는 삶이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그 덕분에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된 것 같다.
딸은 3살에 카지노 게임로 이사와 이제는 14살 중학생이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누구로 태어나고 싶으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 질문에 주저 없이 "우리 딸!"이라고 답하고 싶을 만큼, 그녀의 삶은 내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물론 한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를 오가며 자신만의 정체성을찾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조차 너무나 멋지게 헤쳐나가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가족과 함께 카지노 게임에서 보낸 11년의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을 겪었다.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들이 아쉬워 브런치 북 작가 신청을 했다. 감사하게도 작년 10월 말의 어느 새벽에 승인을 받았다.
글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내가 글을 쓴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글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을 기록하는 작은 일기장 정도로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많은 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진심 어린 응원 덕분에 첫 브런치북이었던 "카지노 게임서 다시 꽃 피운 우리의 삶"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이번 시즌2에서는 11년간의 카지노 게임 생활에서 겪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보려 한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차이, 교육 시스템의 차이,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성장 이야기까지. 때로는 웃고, 울고, 분노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솔직하게 나누고 싶다.
여전히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나와 독자들의 시야와 마음이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되길 소망해 본다.우리 가족의 좌충우돌 카지노 게임 적응기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길잡이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새로운 도전의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