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2023년 여름, 카지노 게임가 마지막이었다. 그 해 여름 카지노 게임에서 무진 아팠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으로 가 보았던 카지노 게임를 다시 찾은 건 2020년이었다. 둘째가 태어난 뒤 나와 아내는 같이 육아휴직을 했다. 당시엔 주변에 아이를 낳은 친구가 없었고, 함께 육아휴직을 한 동료도 없었다. 더군다나 아침에 눈을 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아이만 돌보는 일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늠도 하지 못했다.
육아 휴직을 하겠다고 출근했던 날, 먼저 아이를 키운 선배에게 말했다.
"누나! 저 육아휴직하려고요. 1년이요."
"1년? 6개월씩 나눠서 신청할 수 있으니까, 일단 6개월 쓰고, 그 뒤에 괜찮으면 더 써."
나를 배려하는 선배의 말에 약간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 나를 6개월짜리로 보는 것만 같아서. 내 생각에 난 1년짜리였다. 그러나 6개월 뒤에 다시 6개월을 더하면 다시 일 년짜리가 되는 것이므로,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6개월씩 나눠 쓰는 것을 택했었다.
쉽지 않았었다. 육아휴직을 했던 그 6개월이 말이다. 하루하루가 나라는 사람의 속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잠들지 못하는 말도 못 하는 아이를 원망하며 잠들기를 매일, 아장아장 이쁜 짓 하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첫째 딸을 쌀쌀맞은 표정으로 외면했던 순간이 수십 번, 이 모든 상황의 원인 제공자이며 마음속으로 버푸었던 온갖 저주의 대상, 내가 뱉을 수 있는 가장 가시 돋친 말의 표적인 아내와의 다툼의 연속이었다.
그 육아휴직의 시작과 끝에 카지노 게임 여행이 있었다. 개학하는 시기를 맞춰 떠났던 3월의 카지노 게임는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육지보다는 따뜻했지만 바람이 차가웠다. 정말 바람이 차가웠던 건지 바람이 많이 불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던 건지. 아내는 3월의 카지노 게임 여행을 마치고도 계속 카지노 게임를 그리워했다. 발을 담갔던 3월의 바닷가가 계속 생각났는지, 이번에는 몸을 담그러 가보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6월에 다시 카지노 게임로 배를 타고 갔다. 6월의 제주는 더웠다. 조금만 걸어도 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물놀이하기에 너무나 좋은 날이었다. 3월에 맛만 보았던 카지노 게임를 온전히 만끽했던 두 번째 여행이었다.
그 후로도 매년 카지노 게임를 갔다. 2023년 여름이 될 때까지. 그 해 여름 카지노 게임는 나에게 아픔이었다. 큰 딸을 시작으로 아내와 나까지 아팠기 때문이다.
2023년 1월, 내 인생에 큰 사건이 있었다. 나는 죄를 저질렀고, 벌을 받았다. 벌은 죄를 사해주지 않았다. 내가 순수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순수한 사람으로 세상에 남겨지고 싶었다. 내가 찾은 방법은 완벽히 달라지는 것이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다른 사람보다 한 걸음 더 걷고, 달리고, 일찍 일어났다.
그 사건의 끝자락에 카지노 게임 여행이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카지노 게임 도로, 지명, 관광지를 지나며 다른 카지노 게임 여행과 같았다. 그러다 첫째의 구토가 시작되었다.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아이는 토를 했고, 열이 났다.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첫째가 괜찮아지니 그 바통을 아내가 이어받았다. 열이 나고, 음식을 먹지 못했다. 조금 기운을 차린 아내와 아이들을 뭐라도 먹이겠다며 찾아간 고깃집에서 내가 탈이 났다. 그렇게 병치레로 점철된 카지노 게임 여행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육지로 돌아왔다.
나는 그 여행 이후로도 두 달을 꼬박 아팠다. 장염으로 앓았다가 나으면 일 주 뒤에 감기가 왔다. 감기가 물러갔다 싶으면 다시 장염이 찾아오기를 두 달.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 내가 너무 무리했나?"
그래서 푹 쉬었다. 이듬해 2월까지. 운동도 줄이고, 달리기도 하지 않았다. 내가 순수하다는 거짓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았다. 몸에 힘을 빼고 흘러가는 시간을 내버려 두었다.
일주일을 아팠다. 코로나도 아니고, 독감도 아닌데 일주일씩이나 아프다니, 너무나 억울하다. 겨울 내내 열심히 달려온 시간들이, 거리들이 모두 날아가는 것만 같아 아쉽고 분하다. 매일, 집중, 글쓰기를 일주일이나 쓰지 못해 이 매거진을 마무리하는 날이 일주일 연기된 게 약속을 어긴 것만 같아 아쉽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내 몸이 나에게 주는 신호임을 안다.
가장 아팠던 이틀은, 심지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항암을 하며, 말라가는 엄마에게 뭐라도 먹으라며 짜증 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정말 아프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계속 누워만 있고 싶었다. 주사를 맞고, 수액을 맞아 몸이 조금 회복되자 가장 먼저 살아난 감각이 허기였다. 허기가 찾아 도니 곧이어 하품도 뒤따랐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생각한 사람이 맞나.
잘 쉬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기였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다. 욕심 좀 내려놓고, 몸도 마음도 정신도 좀 아껴 쓰며 하루하루를 보내라는 것이겠지. 나의 분수는 여기까지이니. 다시 천천히 조금씩 달려보고, 즐겁게 조금씩만 글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보려 한다.
2025.3.15 365개의 글 중 36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