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아름다운 4월의 밴쿠버
친구요? 없습니다.
좀 됐죠, 이렇게 된 지.
짧게 잡으면 한 12년?
띠 한 바퀴 돌았네요. 하하.
아유, 그럴 리가요.
일부러 기피하거나
있던 친구를 손절한 건 아니랍니다.
저요? 괜찮아요. 하하.
친구 없을 나이잖아요. 아, 아닌가?
미소를 띠고
예의를 갖춰서 만나는
지인들은 좀 있습니다.
솔직히 이젠
그 정도 거리가 딱 좋더군요.
아직도 만나면
이 새끼 저 새끼 할 수 있는
고향 친구들이 아니라면,
서로 존대하고,
혹시 민감할 수도 있는 화제는
알아서 피해 가는 그런 만남이 좋습니다.
친구는 없지만 취미는 좀 있습니다.
요즘은 카지노 쿠폰에 푹 빠져서
정신 못 차리고 있습니다.
겹벚꽃이 절정인 4월의 밴쿠버는,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습니다—네, 진짭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이
흐드러지게 만개한 벚꽃들로 가득 차
온 하늘이 다 가리어집니다—이건 과장입니다.
아침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비치는
진분홍의 바닷속에서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내딛는 발이 땅에 닿지 않고 살짝 떠올라,
마치 유영하듯 활공하듯, 미끄러지며 달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아, 이렇게 좋은 것을
혼자 누려서 정말 미안합니다—진심입니다.
UN 인권 헌장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성별과 인종과 국적 불문 누구나 차별 없이,
적어도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아침 햇살 아래 만발한 벚꽃길을
달릴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마땅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죠.
각국 정부의 심한 반발도 예상됩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밴쿠버행 비행기 표만 끊어서 오세요.
러닝화 꼭 챙겨 오시고요.
친구 없는 신 선생이 기쁜 마음으로
아름다운 꽃길로만 모시겠습니다.
달리기 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향이 좋은 아메리카노캐네디아노도 한잔하고요.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