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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Apr 30. 2025

편견과 이해?

아니 에르노(2001).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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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를 더욱 알린 건 블라인드 테스트이다. 그걸 통하면 맛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평가한 것처럼 보인다. 원래 맛이란 것이 주관적이라서 혀가 느끼는 감각을 정확히 수치로 나타낼 수 없으니 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걸 우리가 사는 일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 우린 그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사전에 정보를 파악해서 읽게 된다. 바람직한 방법이지만, 우리가 어떤 책을 판단할 때 많은 기존 지식에 의존하기에 정말 객관적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일면 어쩔 수 없기도 하다. 그러니 든 생각.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각자 안대를 쓰고 책을 골라보면 어떨까? 아마, 세간의 평가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질 것 같은데. 우린 대체적으로 선유경향에 많이 의존하는 건 그것이 안전하기도 하고 안정적인 방법이라서 자연스러운 그 방법을 굳이 피할 필요는 없으니, 책을 선택해서 읽을 때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야 하기에. 만약에 블라인드를 해서 시쳇말로 날 것으로 소설을 읽고 판단을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라는 생각을 한 건 이 책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명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책이라는 말없이 이 책을 읽으면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외에서 출판된 책들이 국내에 소개되는 경우는 대체로 출판사를 통한다. 그걸 통해 국내에 소개되는 과정엔 그 책을 선택한 무언가의 기준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무슨 무슨 상을 받았다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것도 노벨상카지노 게임 사이트면.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카지노 게임 사이트면, 언어적 장벽은 출판사가 해줄 것이기 때문에, 보통 독자들카지노 게임 사이트면 이 방법이 쉽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카지노 게임 사이트서 좋지만. 결국엔 그 작품이 주는 어떤 성취(?)가 모든 걸 말해준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책 내용은 없이, 서두를 길게 말한 건 아니 에르노가 1991년에 쓴 《단순한 열정》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가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걸 모르고 이 책을 읽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책이 번역되어 소개된 것 같기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가 쓴 소설이란 걸 블라인드 해서 이 책을 독자들로 읽게 했으면 어떤 평가를 했을까? 책이 준 감동이 별로였으니 이렇게 질질 끄는 거라고? 하긴, 무슨 수로 이 책의 제목처럼 누군가에게 '열정'이었는데, 내가 무슨 수로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동물 병원에 집에서 키우던 개가 아파서 갔었다. 수의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발정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발정기가 되면 수컷은 사람이 넘지 못하는 벽도 넘는다는 우스개 같은 말이 기억났다. 욕망 혹은 욕정이 발휘하는 힘이 엄청난 것 같다고 했던 기억을 떠올린 건 역시나 책 내용 때문이다. 어느 날 아니 에르노가 노벨상을 받았고, 그에 대한 소식이 미디어를 넘어 내 귀에 들어오던 날,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란 그의 말이 기억나 별로 책에 대해 할 말이 없어졌다. 그냥 그가 어느 날 이런 경험을 했구나 정도.


선입견이 작동한 것이다. 이걸 도덕이라고 해도 욕하지 마시라!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라는 수식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이 책을 읽은 지금도 그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물론, 세간에 잘 알려진 다른 책 《세월》까진 읽어볼 테지만. 이 책이 준 장점은 역시나 짧아서 금방 읽었다는 것과 연하인 러시아 외교관과의 사랑을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反 감정 소설"이라고 써진 작가 소개 중에서 도대체 반감정소설이 뭘 말하는 걸까? 반감만 더 해졌다. 남자와 관계를 가질 때 감정 없이 했다는 건 당연히 아닐 테고, 그때 느낀 자기감정을 냉정하게 드러냈다는 말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별로 와닿지 않았던.


오히려 호기심이 동한 건 그가 1970년대 초반에 접했다는 피에르 부르디외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대목에 기초해서 생각하면. 부모가 농촌에서 살다 소도시 공장 노동자로 출발한 그의 출신성분으로 인해 그는 두고두고 자기 계급을 벗어나고 싶었을 거라는.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이 자연스럽게 그를 만들었을 거라는. 이건 작가도 인정하는 거지만. 그런 배경 때문에 바람난 러시아 외교관을 만난 건 아닌지. 그가 같은 계급 출신인 노동자와 열정을 나눠 이 책을 쓰고 《단순한 열정》이라고 제목을 붙였다면 고개가 끄덕여졌을까?


나아가 그가 50대 초반에 서른세 살 연하 남자와 다시 '단순한 열정'에 빠졌는데, 이번엔 그 남자가 '단순한 열정'처럼 소설 《포옹》을 썼다는데, 이 책은 《단순한 열정》처럼 세간에 알려졌는지, 이게 더 관심이 가니 난 속물임에 틀림없다. 다른 면에선 아니 에르노야 유부녀가 아니라서 그렇다 해도 그가 만난 러시아 외교관은 유부남인 건 확실한데, 유부남과 만나 가진 모든 것을 '단순한 열정'으로 표할 수 있다 해도, 이런 개별성이 어떤 보편성으로 문학적 성취를 이뤘는지 책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파악이 안 되니, 내가 안대를 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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