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폭설 후 안개비
미국 볼티모어로 발령을 받고 가장 난감한 일이 짐정리였다. 선승은 바랑 하나 메고 길을 나선다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트럭 하나로도 모자랄 듯 싶었다.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23kg 가방 두개 분량으로 짐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고버리고 버렸지만 끝이 없었다. 제의와 수단, 끌레셔츠와 성작만해도 가방 하나였지만 결국에는 모든짐을 두개 가방으로 만들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선 볼티모어 성당 사제관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온화한 미소로 예수님을 안고 나를 맞아주는 라파엘로의 성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과거를 과거로 여기고일기를 비롯한 사진, 물건을 모두 버렸지만 차마 신학교 때부터 책상 앞에 두었던 카지노 게임 상본은 버리지 못했는데 바로 그 카지노 게임이 계셨다.
나의어머니는 이역만리까지 동행하기로 하셨고, 상본 뒤에 적힌 성 베르나르도의 기도는 나의 기도가 된다.
"카지노 게임을 따르니 길잃지 않고,
카지노 게임을 부르니 실망치 않고,
카지노 게임이 이끄시니 지치지 않고,
카지노 게임을 생각하니 헤매지 않고,
카지노 게임이 붙드시니 뒹굴지 않고,
카지노 게임이 가리시니 두렵지 않고,
카지노 게임 덕을 입어 목표에 이른다."
그리고 상본 앞에는 훗날 성 요한 23세 교황이 되셨던 롱깔리 사제의 글이 포스트잇에 적혀 붙어있다.
신학생 때의 그 마음이 지금도 남아 카지노 게임 도우심으로 열매맺기를소망한다.
"너는 존경받기 위해서 사제가 될 것이 아니다.
돈을 벌거나 안락이나 명성을 얻거나 쾌락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너는 오직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해서 사제가 될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시오.
저 넓게 벌린 팔이 내 사제직의 이상이었소.
나는 겸손하고 소박하게 살려고 했소.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소.
카지노 게임, 나의 어머니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