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에 맞는 대통령은 따로 있는 법이다.
김건희 윤석열 커플이 질퍽대고 있지만 결국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한덕수를 시켜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입김을 불어넣은 모양지만 윤석열의 지혜가 얼마나 모자랐는지만 확인해 줄 뿐이다. 자기 심복을 이제 와서 헌법재판소에 심어서 무엇할 것인가? 어차피 중앙지검에 끌려가 형사처벌을 받을 일이 남았는데.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대 법대씩이나 나왔고, 검찰총장까지 한 자가 이리도 머리가 안 돌아가나?
각설하고.
이제 새 시대를 열 이재명 대표의 출사표가 곧 나올 모양이다. 지난 대선의 출사표도 간결하고 아름다운 글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지 궁금하다. 들리는 말로는 이른바 실용주의를 내세울 모양이라고 한다.
사실 실용주의는 진보를 대표하는 민주당의 정신과는 결이 다른 사상이다. 자본주의의 타락한 형태인 신자유주의의 아성인 미국에서 나온 사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말한 대로 쥐를 잡는데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무슨 상관이겠나?
사실 트럼프가 현재벌이고 있는 관세 놀이도 따지고 보면 실용주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부동산 업자로 성공한 트럼프가 그 바닥에서 흔히 쓰던 거래 수법을 국제 정치에 응용하는 것뿐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과 맞설 유일한나라인 중국의 기를 꺾기로 작정한 트럼프의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기는 하다. 그러나 트럼프는 윤석열이 아니다. '관세 놀이'는 놀랍도록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행보이다. 계엄을 호수 위에 뜬 달 놀이쯤으로 여기는 윤석열과는 경지가 다른 차원의 사유를 하는 자다. 그런 사유의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실용주의다. 그런데 이 실용주의는 트럼프만이 아니라 현재 중국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덩샤오핑이 중국의 개방 개혁의 신호탄을 울린 것도 실용주의 정신에서 한 것이고 그 정신은 시진핑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두 고래가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그 싸움에 이데올로기는 전혀 개입되지 않고 있다. 오로지 국익 싸움만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과 그 패거리는 이데올로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시대정신을 전혀 잘못 파악한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무료 카지노 게임는 미국의William James와 John Dewey의 철학에 그 뿌리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선 학자인Charles SandersPierce가 실용주의라는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바가 있다. 실용주의는 한 마디로 유럽 철학, 특히 대륙 철학과 같은 관념주의를 배격하고 문자 그대로 실용을 중시하는 사상이다. 윤석열과 그 패거리처럼 이제는 사라진 빨갱이라는 허깨비를 쫓아다니기보다는 국익이라는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그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방안을 찾고 구상하고 실천하는 것이 실용주의다.
이재명 대표의 실용주의도 이런 기본 정신에서 벗어날 리가 없다. 순수 한국식 실용주의라고 볼 수 있는 조선 말기의 실학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도 보인다. 중화주의에 물든 성리학자가 지배하는 조선의 정치사상계에 실사구시를 내세운 실학 선각자의 정신을 이재명 대표가 계승 발전시키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이기일원론이든 이기이원론이든 백성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배부른 양반들이나 하던 지적 유희일뿐이다. 게다가 퇴계의 이기이원론이 율곡의 이기일원론에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세력화한 당파가 고집을 피워 사상도 비틀어버린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고 그 나라의 관리들이었다. 나중에 가서 퇴계는 자기 이론의 한계를 깨달았지만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진리보다 자존심과 파당적 이익을 앞세운 것이 바로 조선의 집권 엘리트였다. 그렇게 자기만의 리그 안에서 탁상공론이나 하고 있으니 조선이 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나? 물론 한국 성리학의 이론적 정밀함은 중국의 학자도 인정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다. 유학의 고향인 중국에서는 주희의 관념주의적인 성리학이 별로 대접받지 못하고 오히려 실용적인 왕양명의 양명학이 대접받았다. 그리하여 조선이 관념적 이데올로기 논쟁을 벌이는 사이에 중국은 실용주의의 싹을 피운 것이다. 그래서 그 실용주의는 공산주의 치하의 중국에서도 다시 꽃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허접한 이데올로기 논쟁의 전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은 건국 초기에 좌우 대립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같은 국민을 서로 죽이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다. 그런데 그런 '전통'을 다름 아닌 윤석열이 이어받아 맘에 안 드는 이데올로기적 적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하려고 계엄선포까지 하는 희극 같은 비극이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천운으로 윤석열은 쫓겨났다.
그리고 이제 이재명 대표가 등장하여 실용주의를 내세우게 되었다. 부디 그 실용주의가 미국의 짝퉁이 아니라 실학의 전통을 이은 순수한 한국의 실용주의이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에 토착화된 실용주의 말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재명 대표의 목을 노리는 자가 도처에 깔려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들 가운데 어떤 자가 지난번처럼 실제로 칼을 휘두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에 마음을 끝까지 놓을 수가 없다. 그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