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피어오른 운무는 창문에 부딪혀 고요히 쌓여있다. 창틀에 매달린 물방울들은 창문을 연 나의 기척에 놀라 호드득 떨어져 내린다. 튀어 오른 물방울이 차갑지 않다. 봄을 부르는 비다. 빗물이 스며들어 잠들어 있는 생명을 깨우는 상상을 하니 조금은 설렌다. 깨어날 것들과 잠들 것들 사이의 경계에서 맞이하는 아침. 탄생과 소멸의 중간쯤에서 둘의 숙명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의 경이로운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카지노 쿠폰래빗을 4번째 본다. 처음은 아돌프 히틀러가 10살 소년의 상상 친구로 등장한다는 독특한 설정에 끌려서 두 번째는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에 빠져들어, 세 번째는 사용된 영화 음악을 듣고 싶어서, 그리고 네 번째는 어린 소년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영화를 보았다.
2차 세계대전 말기 엄마 로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카지노 쿠폰 베츨러는 독일 소년단에 합류해 히틀러의 경호대원이 되고 싶어 하는 열혈 나치당원이다. 어리고 겁 많은 카지노 쿠폰는 소년단의 여름캠프에서 토끼를 죽이지 못하고 도망치게 놔주려다 다른 단원들의 놀림감이 되어 카지노 쿠폰래빗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상상친구 히틀러가 나타나 그를 응원해 주자 다시 한번 자신의 용맹함을 소년단 앞에서 증명해 보고자 소년단 대장의 수류탄 투척 시범 훈련에 난입해 수류탄을 빼앗아 들고 자신이 직접 투척을 한다. 운이 없는 녀석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기 마련이라 던진 수류탄이 나무를 맞고 튀어 카지노 쿠폰의 발치에 떨어져 그는 큰 부상을 입게 된다.
다리를 절게 될지도 모르고, 얼굴의 흉터는 평생을 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 그는 스스로를 불구자라 여기며 절망을 하는데 이를 지켜보던 엄마 로지는 카지노 쿠폰를 데리고 소년단 사무실로 쳐들어가 그에게 합당한 임무를 부여하게 만든다. 사무실을 순식간에 점령하는 로지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
이후 카지노 쿠폰는 소년단의 특별임무 - 홍보물 부착, 고물(폐철) 모으기 등등을 이행하며 나치활동을 돕는다는 자부심으로 일상을 되찾아 간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카지노 쿠폰는 위층에서 들려오는 수상한 소리에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보게 된다. 그때 그에게 발견된 수상한 생명체! 귀신이라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쳐 보지만 결국 붙잡히고 압도적인 힘에 밀려 그만 굴복하고 만다. 숨어있던 생명체는 바로 유대인 엘사. 나치의 유대인 포획작전에서 도망쳐 나온 뒤 카지노 쿠폰의 엄마 로지의 도움으로 이 집에 숨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정보들을 학습받은 카지노 쿠폰이기에 그녀라는 존재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 사악하고 위험하며 자신의 집에서 사라져야 한다 생각하지만, 신고를 한다면 그녀를 도와준 엄마까지 위험에 처하기에 혼자만의 비밀로 이 일을 덮어주고 그녀를 감시하며 지켜보게 된다.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렇게 유쾌하게 접근한 영화는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밝고 경쾌한 배경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굉장히 스타일리시하며 화려해서 전쟁이란 상황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늑하고 따뜻한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카지노 쿠폰의 아빠의 부재, 죽은 누나 잉거에 대한 이야기, 광장에 한 번씩 걸리는 유대인들의 교수형 시신들, 하일 히틀러를 열광적으로 외쳐대는 게슈타포들의 등장과 점점 패색이 짙어지는 전쟁의 상황에 대한 암시들이 일상을 순식간에 바꿔버린 전쟁이란 존재의 비극성을 더 부각한다.
영화 속 정말 사랑스러운 장면이 있다. 엄마 로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강둑으로 소풍을 나간 카지노 쿠폰. 전쟁이 일어나기 전 많은 연인들과 가족들의 평온한 휴식처가 되어주었던 곳은 텅 비어 있고 그곳을 걷던 로지는 신발끈이 풀려있는 카지노 쿠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사랑의 감정에 대해 말한다. 한눈에 알아보게 되는 사랑은 뱃속에서 마치 나비가 춤을 추는 것처럼 속을 울렁이게 만든다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신발끈을 같이 묶어놓으며 카지노 쿠폰를 넘어뜨리는 장난을 치는데 천진함과 사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그 장면 속에서 로지는 카지노 쿠폰에게 이렇게 말한다.
로지:
넌 너무 조숙해.
10살짜리가 정치랑 전쟁 얘기만 하고
나무에 오르다 떨어지고 할 나이에
카지노 쿠폰:
승전하면 우리 청년들이 세상을 지배할 거래요, 총통님이.
로지:
제국은 망해가고 있어.
우린 전쟁에 질 텐데 그럼 넌 어떡할래?
삶은 신의 선물이야. 즐겨야지.
신의 축복에 감사하기 위해 춤을 추자.
카지노 쿠폰:
싫어요
춤은 실업자들이나 추는 거예요.
로지:
자유로운 사람들이 추는 거야.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주거든
엄마와 강둑에서 돌아오는 길, 부상당한 군인들을 태운 트럭이 그들 앞으로 지나가고 돌아온 걸 환영한다는 엄마 로지의 외침에도 공허한 눈빛으로 그들을 응시하던 군인들의 모습이 패색이 짙어진 상황을 암시한다. 곧 끝날 것만 같던 전쟁을 앞두고 그의 세상 전부였던 엄마 로지는 나치의 대항하는 비밀단체의 활동을 하다 발각되어 그만 죽음을 맞이하고, 홀로 남겨지게 된 카지노 쿠폰는 어느덧 첫사랑이 되어버린 다락방의 그녀 엘사와 종전의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를 여러 번 보니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엄마 로지가 자신이 불구자라 생각하며 밖에 나가기 꺼려하던 카지노 쿠폰의 신발끈을 묶어주며 현관문을 열어 그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는 순간과 교수형을 당해 매달린 엄마의 풀어진 신발끈을 묶어주는 카지노 쿠폰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숨어있던 엘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전 무릎을 꿇고 그녀의 신발끈을 묶어주던 장면. 세 개의 장면이 시간상 큰 축을 이루며 카지노 쿠폰의 성장을 보여준다. 스스로 신발끈도 묶지 못하던 소년이 다른 이를 위해 무릎을 꿇는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과 자신이 갖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난 걸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싶다.
한 가지 재미난 점은 히틀러를 연기한 와이티티 감독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코믹한 몸짓과 엄청난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외모까지 보여주는데 어린 카지노 쿠폰 옆에서 그의 행동을 통제하고 이끌어가는 모습에서 어린 소년들에게 자행되었던 나치의 세뇌교육을 엿보게 만든다. 이런 코믹한 부분이 영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는데, 홀로코스트의 당사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선. 그것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당시 시대를 바라보는 점은 굉장히 신선하고 반대로 또한 더 비극적이다.
어린 소년의 머릿속은 생각의 여과장치가 발달되지 않았기에 흘러들어오는 세상의 목소리들에게 순식간에 잠식당할 수 있는 텅 빈 캔버스와 같다. 유대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을 엘사로 인해 점점 바꾸어가고 자신이 바라보는 것들에 대해 물음표를 그려 넣으며 조금씩 자라 가는 카지노 쿠폰의 모습을 지켜보는 감동이 있어 좋은 영화, <카지노 쿠폰래빗. 클렌첸도르프라는 소년단 대위 역할을 한 샘 록웰과 엄마 로지 역의 스칼렛 요한슨, 유대인 소녀 엘사 역의 토마신 맥켄지. 그리고 카지노 쿠폰 베츨러 역을 한 로먼 그리핀 데이비스까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인물들이 폭력의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선,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거나 찾아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 아름답게 담겨있는 영화로 오늘을 닫는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카지노 쿠폰래빗 o.s.t 중 데이비드 보위 Helden
https://youtu.be/_-WpEelDQLA?si=CS9D4pQYHtqZBGW9
*사진 출처 : 다음 영화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