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호프가 나의 곁을 떠나면서, 남아있던 달자에게도 큰 변화가 왔다.
사회를 통해서 늘 죽음을 배우고 있는 인간과는 달리,
아마도 ‘죽음’을 처음 경험하는 16살 푸들 달자에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노견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달하던 달자가 급노화현상을 겪고 있다.
보이지 않는 눈, 잘 들리지 않는 귀, 푸들의 뒷다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얇아지는 근육,
얇고 바래 버린 털들…
둘은 친하진 않았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
생명이 느끼는 빈자리의 쓸쓸함과 허무함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라면 아마 비슷한 가 보다.
호프의 죽음이 가져온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다.
늙은 카지노 게임를 돌본다는 것은 한창때의 카지노 게임와 함께 지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나도 절감하고 있으니까.
달자는 푸들이고 뛰는 것을 좋아했다.
힘이 넘치는 카지노 게임라 걱정하지 않았는데, 노화가 시작된 후로 잘 뛰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소파에도 올라카지노 게임 않는다. 계단이 있어도 마찬카지노 게임이다.
그저 안전한 바닥 위에서 드러누워 잠을 자거나
가끔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나의 생활도 변했다.
카지노 게임를 따라 나도 바닥에 이불 펴고 잠을 잔다.
침대에서의 삶은 이제 더 이상 늙은 달자에게 안전하지 않다.
거실 바닥을 늘 따숩게 그리고 폭신하게 이불을 깔아 놓아야 한다.
딱딱하면 아프니까...^^;
달자와의 바닥생활,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불편을 감내하고 있는가?
배려란 이런 것일까?
좋은 습관 하나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 이유가 바로 우리의 ‘뇌’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바 뇌는 변화를 싫어한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내 뇌의 천적은 달자가 아닐까?
달자에겐 휴일 따위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
마치 탑재된 시계가 있는 것처럼,
아침 7시면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어르신.
그 뒤로 화장실을 3번 왔다 갔다 하면서 소변을 보고,
나에게로 다가온다.
그리고, 툭툭!
일어나라는 신호다.
아무리 모른 척 눈을 질끈 감아도, 등을 돌려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달자가 갑자기 늙기 시작하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침마다 스트레칭을 시켜줬는데…
카지노 게임는 쉽게 습관에 물든다.
결국 카지노 게임의 스트레칭을 위해 나의 하루는 늦어도 7시에는 반드시 시작된다.
“우리 달자, 일어났어~~, 카지노 게임 요가 할까?”
앞다리 휘젓기, 뒷다리 뻗기, 마사지, 그리고 등을 쫙 편 후,
다시 화장실로 향하는 그녀.
거사를 치른 후 밥그릇 앞에 선다.
일단 사료는 대령시켜야 한다. 먹고 먹지 않고는 어르신 마음.
그리고 거실엔 폭신한 이불이 깔린다. 낮 동안 주무셔야 하니까…
개의 조상이라고 알려진 늑대는 사실 상당히 사회적이며 시스템 적인 동물이다.
정글북이란 책에서도 그들은 지혜로우며 배반을 싫어하는 동물로 표현된다.
어째보면 참 고지식한 생명체이다.
달자가 잠자리로 향하는 시간 저녁 9시 반. 그 또한 어겨지지 않는다.
9시 반에는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당장 멈추고 이불을 깔아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녀의 발바닥이 또수없이 나를 내리칠 것이다.
그리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숙면을 취한다.
그녀와 함께 하는 하루가 이토록 규칙적이라니…
만약 개가 인간처럼 언어를 구사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카지노 게임고 있었다면,
사람들을 절대로 개를 이기기 못 했으리라.
성공을 위한 7카지노 게임 습관, 아토믹 해빗, 미라클 모닝 따위 그들에겐 애초에 필요하지 않다.
반려동물을 키운 다는 것이 나는 꽤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토록 짧은 기간, 10년 혹은 20년 안에 한 생명이 자라고 또 지는 과정을 가까이서 보니까 말이다.
그 과정에서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을 나는 배우게 되었다.
어린 시절 달자는 특이하게도 미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칭찬은 예쁘다이며,
화창한 햇빛아래 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목욕하는 것조차 짜증 낼 정도로 싫어하고
햇볕아래 산책 보단 그 아래서의 노곤한 낮잠을 더 좋아하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녀의 뒷다리 근육도 영원할 것만 같았지만...
제행무상! 모든 것은 변한다.
아무리 훈련을 하고 간식을 줘도 우리 달자는 악수까지 밖엔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뛰지 말라고 혼내어도 꿈적도 하지않는고집이 있었다.
카지노 게임에게도 자신만의 개성과 자아가 존재한다.
슬기로운 공동생활을 위해 인간인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달자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녀의 장점과 단점,
우둔함과 영리함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
그녀의 떠날 시간을 위해 하기 싫다는 것 강요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뿐이었다.
요즘 달자에게 더 이상 미용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역대급으로 아주 엉망진창이지만,
남들이 내 반려견을 어떻게 볼지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달자야, 넌 지금이 제일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