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흙장난하듯 일을 한다. 매일 비슷한 방식으로 땅을 판다. 처음에는 땅을 헤집는 목적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목적마저 사라진다.지렁이도 만난다. 물기 흥건한 진흙도 만진다. 퍼석한 모래흙도 만난다. 손톱에 박힌 흙은 반달 문신이 되었다.
열개의 문신을 새긴 채일을 한다.일은내가매일펼치는퍼즐놀이이다.복잡하지만풀고싶게만드는게퍼즐이다.힘들지만흥미롭다는감정을가지고 노는 나를 발견무료 카지노 게임 건 어렵지 않다.
나는 매일 그 퍼즐을 또 하나의 연극 무대 위에 올린다. 매일의 무대 위에서 나는 배우이자 연출가이다. 몰입하며 삶을 창조하는 존재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다. 어제와 같은 무대인 듯해도 착각일 뿐이다.
무대 위에서 잠깐 내려와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본다. 내가 쌓아 놓은 모래성이 무대 위에 가득하다. 참 많이도 쌓았다. 그러나 쓰러질 게 두려우면 모래성을 쌓지 않았을까?쌓아 올리는 희열을버릴 수 없다.
매일의 무대가 끝나고 손을 털며 내려온다. 내게 새겨진 문신을 보며 미소 짓는다. 내일은 또 어떤 모양의 퍼즐 조각들이 나를 기다릴까?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내 무대 위에서 펼쳐볼까?
부서질지라도, 나는 멈추지 않고 흙을 만지고, 퍼즐을 맞추고, 나만의 연극을 계속 연출할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연출은 찰나의 예술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픈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기록이다.
삶은 순간의 누적이다. 찰나의 총합이다. 매일의 흙장난에서 순간적인 아름다움과 가치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불가역성의 영역이다. 흐름에 몸과 정신을 맡겨야 하는 이유다.
내가 하는 사고란 것은 실제로는 보고 듣고 느끼는 매우 정교하게 서로 얽힌 놀이일 뿐이다. 환상을 믿는 충동적 놀이는 나의 정신적이고 근본적인 삶이다. 순간 순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헤르쿨라네움의 골목 어귀에서도 누군가는 흙장난을 하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다, 누군가는 일을 하다, 누군가는 퍼즐을 맞추다, 누군가는 모래성을 쌓다, 누군가는 파피루스 위에서 몸부림치다 끝냈을 테니까.
모든 추상적 표현 뒤에는 대담한 은유가 깃들어 있는데, 이 은유라는 것이 실은 말을 가지고 하는 놀이이다. 이런 식으로 삶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의 세계 바로 옆에 제2의 세계, 즉 언어의 세계(시(詩)의 세계)를 창조했다(주1).
주1 요한 하위징아, 호모루덴스, 2018, 연암서가, p.38
모든 은유는 비유다. 하지만 모든 비유가 은유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둘 다 내 삶임은 분명하다. 나는 오늘도 부족한 사유를 채우려 은유할 대상을 찾아 다시 흙을 파 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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