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독서모임을 계기로 다시 읽은 소설은 여전히 차갑고 하얀 이미지로 다가왔지만 첫 번째 읽었을 때보다 좀 더 아름다웠고 따스했다. 작가의 말에 이 책이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 했던 것이 이제야 선명해졌다고나 할까.
제목의 현재형은 '작별하지 않겠다'보다도 더 낯선 의지로 느껴진다. 개인적인 다짐이 아니라 우리를 주어로 하고 있구나 번역 제목을 찾아보고 알았다. 프랑스어로는 'Impossible Adieux(불가능한 이별)'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We Do Not Part'가 될 거라 한다. 두 세계의 단절이 아닌 연결을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인선은 목공 일을 하다가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다. 수술 후에 봉합한 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마다 상처를 바늘로 찔러 딱지가 생기지 않게 하는 치료 행위를 받는다. 그냥 포기하면 안 될까 묻는 그에게 의사는 포기하더라도 환지통이 온다며 견디라 한다. 그 생생한 고통은 인선에게도 고문과 학살의 괴로움은 얼마나 컸을까를 떠올리게 한다. <소년이 온다에서 고문 장면을 읽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이 의료 행위 역시 독자를 진저리 치게 한다. 제주 4.3 사건은 그동안 숨겨져 있던 진실이며,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역사였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손가락을 통해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고통스럽지만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입원해 있는 자기 대신 새에게 가 물을 주라는 인선의 부탁으로 서술자 경하는 폭설에 인선의 집, 제주로 간다. 눈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온몸이 얼어 겨우 찾아간 인선의 집에서 그를 반기는 건 차갑게 식은 새. 몇 해 전 인선네 집에서 앵무새 둘을 마주하던 기억이 회상된다. 새가 어깨에, 손에 오르면 너무나 가벼웠다고. 그 연약한 새는 소설 속 아버지를 비롯한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폭력 앞에서 무력하고 연약한 인간 말이다. 새의 양쪽 눈에 대해 이런 서술이 있다. 한쪽 눈으로는 이쪽을 보고 다른 쪽 눈으로는 저쪽을 볼 수 있는 새.
"그렇게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싶었다. 저 엇박자 돌림노래 같은 것, 꿈꾸는 동시에 생시를 사는 것 같은 걸까."
소설 전체가 두 개의 세계를 연결하는 듯하다. 생과 사, 무너진 세계와 온전해 보이는 세계, 외면받은 세계와 현실 세계. 고문 피해자인 인선의 아버지 또한 두 세계를 살았다. 이쪽에 살고 있으면서도 멍하니 저쪽을 생각하는 삶. 고문 피해자의 삶을 감히 상상하지는 못하지만 그 점에서 새와 아버지는 연결된다.
경하와 인선은 영화를 찍고자 했다. 경하가 꾼 꿈에서 비롯한 이미지. 하얀 눈밭에 검은색 나무 기둥이 심겨 있다. 묘지인가 싶었는데 곧 바다가 밀려와 그 기둥을 삼킨다. 그러나 둘의 작업은 한없이 미뤄지는데 경하는 둘의 작업을 멈추자 했으나 인선은 이미 나무를 준비해 말려두고 먹칠을 해두었다 한다. 무엇이 인선을 움직이게 했을까, 무엇이 경하를 제주까지 가게 했을까. 그것은 사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어떤 마음 탓일 텐데. 인선에게는 자신이 다큐로 만들었던 베트남 민간인 피해자, 무엇보다 자기 가족들 이야기와 연결될 것이고, 경하에게는 자신이 집필한 도시의 학살을 다룬 소설과 제주에서 일어난 대규모 학살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제 인선의 이야기가 경하에게 전달되어 연결된다. 작품을 만들자는 동기가 나중에야 이어진 셈이다.
제주에서 경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새에게 물과 먹이를 주고, 자신도 먹고, 멀쩡한 손으로 돌아온 인선에게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읽게 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머니가 모아둔 자료를 촛불에 의지해 살펴보는데 이때 날아든 새의 그림자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림자와 불빛이, 눈길을 헤치고 걷던 그들을 감싸는 눈이 둘과 함께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심부름을 갔다가 가족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모두 죽는 사건을 겪는다. 해변에 누워있는 사람들 위로 눈이 내려 쌓였는데 얼굴 위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있더라는 이야기. 강렬한 이미지로 남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인선은 어머니가 오랫동안 자신을 귀애한 오빠를 찾으러 다녔단 걸 알게 된다. 무릎이 아파도 광산을 기어들어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던 어머니를 움직이게 한 것도 다름 아닌 사랑일 테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린 시절 폭풍이 지난 후 어머니와 바람을 헤치며 걷다가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다는 문장은 이렇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엄마가 너무 답답해 가출을 감행했던 인선이지만 치매가 찾아온 엄마의 낯선 언행과 죽음 이후 알게 된 일들로 인선은 나중에야 엄마를 이해했을 거다. 저 위의 돌림노래처럼 두 세계도 다른 듯했으나 결국은 커다란 원 안에서 만난다. 인선의 이야기를 통해 경하에게도 커다란 이야기가 전달되고 그다음은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눈 구덩이 속에 둘은 함께한다. 어두워도 아직은 성냥이 아직 남아있고 둘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되어 있다.
두 세계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 이승과 저승, 산 자와 죽은 자. 죽은 자의 혼이 나타난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이렇게 묘사된다.
"따스한 기체의 덩어리 같은 게 방을 채우는 게 느껴졌어. 솜이나 깃털, 아기들 살을 만지고 나면 손에 부드러움이 남잖아. 그 감각을 압착해서 증류하면 번질 것 같은......"
자간이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다시 읽으면서야 알았다. 저 부분도 다른 문장과 달리 글자와 글자 사이가 좀 더 벌어져있어 마음속으로 읽으면서도 속도를 줄이게 되었다. 천천히 읽으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연설로 더 유명해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이야기구나.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고,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다는 걸 우린 2024년 12월에 경험했다. 앞으로도 이 질문에 입 다물지 않고 답하기 위해 과거를 들여다보고 파헤치기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그 괴로움이 사랑을 지키는 또 다른 힘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될 것이고 사람다울 수 있으며 아름다울 것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