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프로그램을 즐겨보는이유는 고미술품에 대한 소양이 깊어서가 아니라, 출품된 고미술품에 대한 지극히 즉물적(卽物的)이고도 세속적인 관심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감정가가 매겨지기까지의 과정과 최종 결정된 감정가가 이전 기록을 깨트릴 수 있는가 하는것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것이다.전문가가 내리게 될 최종 감정가를 추정하면서 함께시청 중이던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늘 대화의 중심에는최고 감정가를 기록한 출품작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앞선 기록을 깨트리면서 방영을이어 온 최고 감정가Top5에 관한 것들인데, 이를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5위는 추정 감정가가 9억인 '선무공신(宣武功臣)권협 영정(影幀)2점'이고, 4위는 추사 김정희의 서화(書畵)인 '불기심란'과 동일 액수로 감정된'열녀 서씨 포죽도', '조선경국전 초간본'이 있는데 최종 감정가가 각각 10억으로 매겨졌다. 3위는 '청자상감 모란문 장구'인데 추정 감정가가 12억에 이르고, 그 뒤를 잇는 2위는 조선후기 화원(畵員)김희겸이 그린 '석천한유도'로써 15억으로 감정되었다. 1위는 추정 감정가가 물경 25억인데, 세계적으로 3점밖에 남아 있지 않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채색본'과 국보급 청자 매병인 '청자 음각 연화문 매병'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아예 감정가가 0원으로 감정가를 매기지 못한 출품작도 있었는데, 바로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찍혀 있는 유묵(遺墨)'경천(敬天)'이다. 진품으로 감정된 이 출품작은 감정위원 스스로 감정가를 매길 수 없다 하여 감정가를 0원으로 책정했는데, 아마도 작품 속에 깃들어 있는숭고한역사적 의미를 속물적인판단으로 훼손하는 것이 망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출품작 가운데서 특히 관심을 끈 것은,이전까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9억의 어마어마한 감정가를 기록한 2004년 4월 11일 자'선무공신 권협 영정'방영분과,두 달 뒤 12억으로 그 기록을 바로 깨트려 버린 '청자상감 모란문 장구'이다.감정을 위해소개되는 출품작들이 희소성이 있고, 방영될 때마다 앞선 기록들이 깨어지곤 했던이 당시가아마도 TV 진품명품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출품작으로만한정하자면 고미술품보다는 용처를 예측하기 힘든 일상용품 쪽에 더 관심이컸었다. 고미술품에 비할 바 아니지만TV를 시청하면서골동품으로서의 현재적 가치를 추정해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던 것이다. 하지만, 방영 횟수가 거듭될수록 프로그램 진행방식이 다소 진부해지고 출품작들의 희소성도 덩달아떨어졌다. 이제, 'TV 진품명품'은기다려진다거나 일부러 찾아보는 프로그램에서한 걸음씩 멀어졌고, 어느 때부턴 가는 머릿속에서도 까마득히 지워졌다.
오늘은 평상시와는 달리, 이른 시간을 택해 아파트 헬스장을 다녀왔다. 방학이 시작되면서 헬스장을 찾는 아파트 동민들이 많아져 이른 아침 시간대가 아니면 러닝 머신을 차지하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기분 좋게 운동을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거실에 켜 둔 TV에서 막 'TV 진품명품'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침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없었기에 얼른 땀만 씻고 나와 TV 앞에자리 잡고앉았다.
이날 방송 내용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것은 1962년 금성사에서 제작해서 시장에 내놓은 진공관 카지노 게임 A-504였다. 어릴 적 방 안 서랍장 위를 굴러 다녔던 기억 속 카지노 게임 형태그대로였다. 뒷면 칸막이 합판을떼어내니 안테나 선이 한쪽으로 둘둘 말려 거치(据置)되어 있었는데, '맞아, 당시카지노 게임 구조는저랬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진행자의 말에 따르자면, 당시 국내 기술로는 성의껏만든 최고급카지노 게임였지만 판매 실적이신통찮았다고 한다. 금성사 신입 직원 월급의 3분의 1에 달할 만큼 고가의 가격이 매겨진 사치품에 다름 아니었으니, 널리 대중화되기까지 단단히 발목이잡혔을 것이다. 이를 타개한 것이 바로 대통령령에 의한 정부시책이었다고 한다.1959년에 겨우 30만 대를 넘어섰던 카지노 게임는1961년 후반본격적으로 시작된 정부의적극적 시책에 힘입어 134만 대로 그 숫자가 크게 증가했는데, 폐업까지 고려했던 금성사의 전자사업 부문은이로 말미암아 극적으로 회생(回生)을 했다고 전해진다.
진행자가 출연자들에게 제시한 문제는바로 이 정부시책에 관한 것이었다. 퀴즈의 정답을 선다형으로 열거한여러 선택지 중에서 올바른선택지를답으로제시한출연자가 없었지만, 난 바로정답을 추측해 낼 수 있었다. 1960년대 초반 무렵이면, 고향에서 유년기를보냈던 나의어린 시절과정확하게 겹쳐져있었기때문이다.
지금, 내 눈앞으로는 기억력이 미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고향마을이 그려지고 있다. 명당(明堂)까지는 아니더라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우리 고향집은 마당 왼쪽과 본채 뒤편을이웃으로둔 외딴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앞으로는 그리 넓지 않은 전답(田畓)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흐르는 실개천 건너편엔 예배당까지 있는 큰 마을이 터를 잡고 있었다.
가끔, 건너마을멀리에서 왕왕 울려대는 확성기 소리에가까스로마을 소식을들을 수있었으나, 카지노 게임를 통해서송출(送出)되는 나라 소식까지 세세하게 접할순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싸리문을 밀치고 들어오더니 사랑방 문간에다 소리통을 달고 길게 전선줄을 이어달았다. 그때까지 우리 마을에는 여전히 전깃불이 들어오진 않았으므로, 아마 신작로를 따라 매설한전봇대의 전기를문설주에다끌어놓았을 것이다. 이미 전기가들어와 있던 앞마을공동 카지노 게임로부터이어지고연결된소리통을통해 바로 그날로, 혁명 이후의 어수선했던나라 소식이나 이미자의 '열아홉 순정',최희준의 '우리 애인은 올드 미쓰'와 같은 대중가요를귀로생생히들을 수 있었다.바야흐로, 우리 마을에도 카지노 게임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물론당시의 어린 나로서는, 소리통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말소리가 신기한한편으로는무섭기까지 했지만.
사랑채에는 '이문이'라 불리는 머슴이 살았는데, 왼쪽 눈 주위로 물혹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어 이문이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를 몹시 두려워했다. 하지만 난, 평소마을 사람들이 부르듯"이문아. 이문아."라 부르며어미닭을 따르는 병아리처럼어디를가든 그의뒤를 쫓아다녔지만,단 한 번도 무섭다고생각해본적이없었다. 그보단, 한 번씩 나를 무등 태우고 소리통 가까이로 머리를 들이대곤 했는데, 그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리는 나를 보고 껄껄 소리 내어 웃는 것이밉기도 했다. 그럴 때면, 평소에는 거의 감겨있다시피 한 그의 왼쪽 눈이 가늘게 뜨였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무척 슬퍼 보였다.
이문이를 추억해 낸 것을 끝으로, 지지직유년 시절의 잡음 섞인 기억이 눈앞을 흐리더니 끝이 났다.'TV 진품명품'도 이제방송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는데, 과연 퀴즈의 정답은 내가 추측한 바 그대로 '농어촌에 카지노 게임 보내기 운동'이었다. 진공관 등 카지노 게임 부품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되어 생각한 만큼소리가 잡히진 않지만, 제품의 보관상태가 양호하여 감정가가500만 원으로 측정되었는데, 제품명인A-504에 착안(着眼)을 해서 추정가를504만 원으로적어낸 김구라의 아들 김그리가 최종 우승을 했다. 마침, 그가 해병대 입대를 앞둔 마지막 방송 출연이기도 해서 출연자들로부터 축하의 말이 쏟아진 훈훈한 순간이었다.
'시대'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어떤 기준에 의하여 구분한 일정한 기간'을 말한다. 오늘 난, 'TV 진품명품'을 보면서 나와 아버지가 카지노 게임 시대를 두고 구획(區劃) 되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지만, 글 속에서 카지노 게임 시대를 먼저 맞은 것은 당연히 아버지였다. 어느 순간, 내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즐겨 듣게 된 후로는 카지노 게임 시대를 공유한 적도 있었겠지만 분명 둘 사이에 카지노 게임적간극(間隙)은 존재했었다.
결국, 카지노 게임 시대가 저물면서 'TV 진품명품'을 한 자리에 함께 앉거나 누워서 볼 수 있는, 이를테면시대의 간극을 메워준 비디오의 카지노 게임가 도래(到來)했다. 아마, 비디오의 시대를 실감하는 강도는두사람 사이에서 서로차이가 크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이미아버지 못지않게비디오 카지노 게임를어려움 없이수용할 만큼 웃자라 있었으니까. 오히려이후의 인터넷 카지노 게임에 이르러서,카지노 게임 시대와는다르게입장을달리해서 구획의 정반대 편에서게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무리 잰걸음으로 쫒으려 해도따르지 못할 만큼이미문명의 발전이빛의 속도로 멀리 달아나있었기때문이다.
결국, 아버지는더 이상 뒤를 쫓지못하셨다. 벌써3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아버지가 떠나신빈자리만 홀로 남아 공허하다. 당신과 함께 듣고 보던 시대가 영영 시간 속으로 저물고 만 것이다.TV속 A-504가마지막까지 열과 빛을 태워가며 전해주려 했던 이야기들은이미 꺼져버린 화면속잔상(殘像)으로 남아 안타까운 그리움으로 채색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