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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Nov 24. 2024

혈혈단신 영국에서 카지노 가입 쿠폰남기(8)

해고...라구요?

2003년 12월의 어느 날


오늘 일하던 한국식당에서 잘렸다. 일 시작한 지 겨우 2주 만의 일이다. 내가 생각해도 훌륭한 아르바이트생은 아니었지만 2주 만에 잘릴 만큼 잘못한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젠 제법 한 사람 몫을 해 내고 있던 시기여서 갑작스러운 사장 아주머니의 통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런 한편, 마음 한 구석에 찜찜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이 식당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남자 사장은 주로 카운터에 있고 부인이 홀과 키친을 오가며 진두지휘를 한다. 그런데 이 부부는 결코 사이좋은 커플은 아니었다. 이제는 가끔 내게 한 두 마디 말을 건네주는 알바 선배들에 의하면 남자 사장이 바람기가 다분하다고 했다. 그녀들은 여사장의 의부증이 이해가 간다며짬만 나면 이런저런 가십으로쑥덕댔다. 허나 그 당시엔 나로서는 크게 상관할 바도 아니었고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무심히 흘려들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남자사장이 날 카운터로 불러대기 시작했다. 바쁜 점심시간에도 잠시 쉬는 시간에도 나를 불렀다. 그리곤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별 시답지도 않은 농담을해댔다. 손금을 봐준다며 내 손을 붙들고 있거나성냥개비로 모형을 만들고퀴즈를 내겠다며 자기 앞에 나를 오랫동안 세워놓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가할 때는 그나마 참을만했지만, 식당 홀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에 그의 기름진 웃음 앞에서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듣고 있자면 등줄기에서 식은땀이흘렀다. 그의 끈적거리는 눈빛이 싫은 건 당연지사고저만치서 내 뒤통수를 태울 것처럼 강력한 레이저를 뿜어내는 여자 사장의 눈초리 때문이었다. 차라리 날 불러서 일을 시켜주면 좋으련만,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는 나를 눈으로 욕하며 흘겨보기만 했다. 이제 그만 나오라는 그녀의 말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건 나의 부족한 업무 능력이 해고 사유의 100%를 차지하는 건 아닐 거라는 일말의 합리적인 의심 때문이었다.하지만 이유야 어쨌건 수습생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일한 기간만큼의 급여를 전부 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


난생처음 당해본 해고라는 두 글자는 생각보다 임팩트가 꽤 컸다. 황망한 마음에 휘적휘적 멍한 얼굴로 어학원에 가니 이를 본터키에서 온 Sarah가 무슨 일 있냐며 묻는다.

"I am fired from the Korean restaurant! They sacked me!" 영어공부를위해 해고라는 단어를 외울 땐 내가 이 단어를 이렇게 생생한 느낌으로 사용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월세에 대한 걱정보다 크게 스크래치가 난 내 자신감이 더 문제였다. 한껏 움츠려든 마음은 며칠이 지나도 도저히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Sarah는 맥주 한잔을 사주겠다며 저녁 나들이를 제안했다. 그녀와 펍 한구석에 앉아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Sarah는 중동 공주처럼 생긴 예쁜친구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마루인형처럼작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커다란 눈, 그 안에 호수처럼 자리 잡은 파란 눈동자, 거기에 갈색의 웨이브진 긴 머리까지. 그런 여성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남자처럼 시원시원한 성격으로짧은 시간에도 많이 친해진 그녀였다. 맥주 몇 모금에 알딸딸해진 나는,이곳에 온 처음으로 긴장을 풀어놓고 카지노 가입 쿠폰와 내 수준에서 최대치로 가능한 영어로 수다를 떨어댔다. 이런 것이 알코올의 순기능인 건가. 그녀에게 마음속에 담아놓은 분노와걱정, 억울함까지전부 털어놓아버리자 그것들이 자리 잡고 있던 빈 공간을 잠시갔던자신감이 다시 들어와 메우기 시작했다. 마치아주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을 뿐이라는 착각마저 드는 듯했다. 그렇게카지노 가입 쿠폰 덕분에 또 다른 하루를 버텨낼 힘이 생겼다.


그리고 며칠 후,생각지도 못한 연락이다.헤롯백화점 앞에 있는 맥도널드 첼시 지점에서 오후 근무자를 뽑는다며 전화가 온 것이다! 지난번 런던 시내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중 한 맥도널드에 무작정 들어가 지점장과 면담을 요청했었다. 그는 맥도널드는 각 지점에서 사람을 뽑지 않고 인력 수급을 맡고 있는 오피스가 따로 있다며 지원서 제출 방법을 알려주었었다. 그렇게 해두면 자리가 날 때 신청자에게 연락을 준다는 것이었다. 언제 자리가 날지 몰라 반신반의하며 제출했던 것인데 이렇게 간절한 타이밍에 연락이 오다니 이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인 것만 같았다. 역시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내 열심을 보고 하늘도 감동하신 것이 분명하다.


이곳에 온 지 이제 달 남짓인데 벌써 1년은 지난 것 같다. 그만큼 매일매일이 다채롭고 하루하루가 순탄치 않다. 하지만 오늘이후로 나는이제스스로 오뚝이라는 최면을 건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도 뒤뚱거릴지언정 절대 넘어지지 않는 오뚝이말이다.어떤 시련이 닥쳐도결국엔 다시 일어나고야마는오뚝이처럼나도꿋꿋하게 버텨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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