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극의 합일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를 믿는 첫걸음은 바로 애통하는 것이다.
이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예전의 방식을 애통해함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깊은 정서적인 참여, 정신과 마음의 참여, 물질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정서적 참여라는 것은 이제 관계하는 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하나님 중심의 인간관계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술친구들과는 결별하고 신앙의 동지들을 만나면서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놀기 중심의 모임에서 믿음의 공동체로 모여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큰 변화 인가?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순식간에 삶을 바꾸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변곡점에 도달하면 깊은 고뇌와 묵상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모르다가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은, 그동안 세상을 향해 살다가 회심이 일어나 이제 삶의 방향을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세상을 살면서 누렸던 기쁨과 세상이 주는 즐거움, 죄를 지을 때 얻는 쾌락 등을 떠나보내야 한다.
즉 지금까지 온갖 즐거움을 누렸던 세상을 떠나보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로 바뀌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애도가 일어나게 된다.
애통함이라는 애도를 의미한다.
애통함이 없이 신앙세계로 넘어온 사람은 세상과 교회, 양다리를 걸치게 된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은 그러지 않았다.
사도카지노 게임이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뜨림을 당하면서 예수를 만났고, 회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된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가 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일을 위해서 부르셨던 것이다.
사도카지노 게임은 이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아예 관심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에서 예수를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남은 여생을 전도여행을 떠난 카지노 게임로 바뀐 부분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야 한다.
사람들은 사도카지노 게임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동안 핍박했던 예수와 그의 십자가를 마음속 깊은 곳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은혜는 순간적으로 임하였고, 하나님과의 만남은 순식간에 일어난 것이지만, 사도카지노 게임의 경우처럼 예수를 핍박하던 자가 예수를 전하는 자가 되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사도카지노 게임은 정치인이 아니다.
오늘날 정치인은 좌파에서 우파로 우파에서 좌파로 넘어가는 데에는 숙고 없이도 가능해 보인다.
그들에게 자신의 이익에 따라 사상을 바꾸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사울은 지금까지 자신이 누렸던 바리새인의 세계, 강박적으로 지켜 왔던 율법의 세계를 완전히 떠나보내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하는 기쁨과 고통이 공존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과거에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쥬이상스를 느껴 왔다면, 그 쥬이상스도 내려놓아야 한다.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누렸던 사회적 지위와 영광도 내려놓아야 한다.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십자가를 자신의 설 자리로 좌표를 정해야 하는 낮아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에 누렸던 모든 가치와 쾌락(여기서 쾌락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써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주었던 쾌락이다)을 떠나보내기 위해 이제 슬퍼해야 한다.
이러한 애도 과정 없이 순식간에 삶의 태도를 바꾸면 언젠가는 다시 바리새인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성경은 사도카지노 게임이 그런 고뇌와 묵상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서 곧바로 삶을 재정비해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의식전환이 너무 빠른 사람은 매우 위험한 사람이다.
사울이 카지노 게임이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고, 그가 거하는 공간도 예루살렘에서 아라비아로 바꿔야만 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 사도 카지노 게임은 아라비아로 갔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그는 자신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아라비아로 갔다"라고분명히 진술한다.
거기서 얼마 동안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기간은 3개월일 수도 있고, 3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라비아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카지노 게임이 거기서 조용히 칩거하면서 깊은 기도와 묵상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최근에 어느 주석학자는 카지노 게임이 아라비아에서 모든 인간적인 접촉을 끊고 하나님과 홀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이것은 새롭게 개종한 유대 바리새인이며 기독교 박해자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카지노 게임은 회심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에게 계시된 복음의 진리에 비추어 기독교에 대해 자신이 이전에 견지했던 입장을 반성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모든 기간 동안 카지노 게임은 성경(구약)을 읽고 기도하며 자신이 정통해 있던 구약과의 관련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생각했을 것이다
사울이 과거의 신앙과 삶을 떠나보내는 애도를 위해 아라비아 사막으로 갔다.
여기서 사울은 카지노 게임로 바뀐다.
사울은 여기서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체험을 한다.
과거를 떠나보내는 애도와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는 것을 통해 그의 삶의 태도는 진정으로 바뀌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진정성을 가질 수도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카지노 게임은 모든 변화에 진정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혼자서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오직 하나님께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공급해 주시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동안에 자신이 높아졌던 삶을 내려놓게 된다.
특히, 다메섹 도상에서의 원형 체험을 신학화 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신이 걸어야 할 모진 앞날의 여정을 전망했을 법하다.
그는 그렇게 엑스터시의 체험 속에 뒤집어진 자신의 초상을 섣부른 열정으로 소진시키지 않고 자신의 내부로 깊이 침잠함으로써 그 영혼이 충분히 영글고, 그 자신의 소명에 대한 확신과 사명을 위한 기획이 적시를 만나 무르익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 점에서 아라비아는 카지노 게임에게 실험실이었고 수양관이었으며 훈련장이었다.
그러나 그곳이 마냥 안온한 감상의 온실이 아니었던 것은, 그가 그곳에서 앞으로 걷게 될 머나먼 선교적 여정을 채비하는 정중동의 몸부림을 보여주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은 아라비아의 피정에서 실종되지 않았다.
그 척박한 외지에서 고립될 겨를도 없이 마치 연어가 제 생명의 고향으로 회귀하듯 그는 회심의 고향인 다메섹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을 용납해 준 형제들과 더불어 3년간의 공동생활을 하며 또 다른 수련기를 거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 3년이 지나자 카지노 게임은 비로소 예루살렘을 찾아 자신보다 먼저 사도 된 베드로와 예수의 아우 야고보 등을 만나 15일간 교제한다.
그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오른손의 악수’를 나눈 그는 그들과 머무는 동안 예수의 살아생전 일화들을 전해 들으며 또 자신의 회심담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거기서 그는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으로 향하는데, 그 와중에 자신을 처음으로 파송하고 이후 선교 활동을 일정 기간 후원해 준 안디옥 교회에 일 년쯤 정착한다.
카지노 게임과 안디옥 교회의 이 인연은 아마도 바나바의 주선으로 트였을 것이다.(출처 : 들소리신문, http://www.deulsoritimes.co.kr)
다메섹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칼융은'에난치오드로미아'라고 불렀다.
이것은 바로 <대극의 합일을 말한다.
<대극의 합일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외면했던 삶, 마땅히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뤄왔던 삶을 살아야 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심각한 교통사고로, 누구에게는 암으로 에난치오드로미아가 찾아온다.
암이 온 것은 새로운 삶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암을 삶으로 받아들이면서지금까지 살아 본 적인 없는 삶을 새롭게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삶과 통합해 가는 것이다.
내 가까운 사람이 암에 걸린 후, 그녀가 행하는 이러한 통합을 보면서, 나는 어떤 대극의 합일을 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사도카지노 게임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되면서 눈이 멀게 되는 일이 먼저 왔다.
눈이 멀게 된 것은 상징하는 바가 있다.
지금까지 봐 왔던 삶을 이제는 암흑 속으로 떠나보내라는 뜻이다.
새로운 눈을 얻으면 그때는 세상을 다르게 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보여주는 성경을 살펴보면, 카지노 게임은하나님 존재의 깊이를 체험한 것 같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건은 마치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 같은 사건이라면, 그것만으로 카지노 게임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사건은 삶의 방향을 트는 사건이라면, 진정으로 깊은 원형체험이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후 12:1-5)
에난치오드로미아는 지금까지 살아 보지 못한 삶을 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잘 통합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사도카지노 게임도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과거의 삶과 지금의 삶을 통합하는 것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내는 방법을 바꾼 것이다.
과거에 바리새인이었을 때는 자기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살았다면, 이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을 전하며 살기로 작정하게 된다.
이를 위해 카지노 게임은 내가 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이 말은 내가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품을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요한 14:20처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사도카지노 게임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누구보다 먼저 체험한 사람이다.
우리의 삶의 변화는, 또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깊은 체험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 그다음에 변화된 삶을 살라는 것이다.